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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
 요리
ⓒ 권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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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씨, 오늘 만둣국은 망했네요. 냉동실 떡을 썰어 넣었는데 떡이 사라졌어요."
"냉동실 떡? 냉동실 찰떡이요? 그건 떡국용 떡 아닌데 나한테 물어보죠."


오래전부터 주말이면 난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해왔다. 자주는 아니어도 주말, 휴일 이틀 동안 두세 번은 요리를 하는 편이다. 자주 해서 손에 익은 요리는 따로 보는 레시피 없이도 바로바로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내어놓는다. 이렇게 시작한 요리는 가짓수가 하나, 둘 늘어 할 수 있는 요리수만 해도 꽤 된다.

가족들을 위해 내어놓은 요리로 브런치에 매거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발행도 해봤고, 그렇게 늘어난 글로 브런치 북으로도 엮어봤다. 요리를 하는 게 재미도 있었고, 이렇게 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이 있어서 요리하는 내내 즐거웠다. 게다가 이렇게 만든 요리를 글로 발행해 조회수까지 오를 때면 일타 쓰리피 정도의 기쁨을 공짜로 가져가는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작년 브런치 북으로 요리 에세이를 하나 묶은 이후로는 더 이상 요리 관련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목표랄 것 까지는 없었지만 무언가 김이 빠진 느낌이 들었다. 조금의 핑계 같지만 기존 쓰던 매거진은 그대로 발행을 유지하며, 새로 시작한 매거진이나 외부 멘토 활동까지 가중되어 여유 또한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족을 위한 요리를 게을리 한 건 아니다. 내가 자주 하던 음식들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카레, 떡볶이, 된장찌개, 부대찌개, 순댓국 등 브런치에 발행했던 글에 있던 요리들은 여전히 가족들에게 조리해서 내어 놓고는 있었지만,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일에는 한동안 게으름을 피우던 나였다.

그렇게 3개월을 요리 관련 에세이를 쓰지 않았고, 당연히 새로운 요리도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2주 전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아내를 위해 저녁 준비를 직접 한다고 얘기했고, 갑자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즐겨 찾았던 중식당의 중국식 잡채밥이 생각나 식재료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냉장고를 뒤졌다. 다행히 대부분 재료들은 냉장고에 있었고, 잡채용 고기만 오후에 따로 마트에 가서 사 왔다. 그렇게 끌어 오른 텐션으로 브런치의 매거진에도 오늘 할 요리에 대한 콘셉트도 잡아봤고, 관련 에피소드 또한 생각해 봤다.

"철수씨, 저녁 메뉴는 뭘로 정했어요?"
"오늘은 중국식 잡채밥이요. 밥이랑 야채는 다 있고요. 오후에 나가서 잡채용 고기도 사 왔어요."
"잡채 손이 많이 가는데 내가 도와줄 거 없어요?"
"괜찮아요, 영희씨. 영희씨 해주는 잡채보다는 훨씬 수월하고, 손이 덜 가니까 영희씨는 쉬어요."


그렇게 열심히 야채(당근, 양파, 표고버섯, 피망)부터 썰기 시작했고, 파 기름을 내서 고기를 볶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일련의 과정을 브런치 매거진 발행을 위해 정성스레 사진까지 찍었다. 양념장도 굴소스를 베이스로 고춧가루와 간장을 사용해 준비를 했고, 당면은 미리 찬물에 불려 놓는 준비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고기를 어느 정도 볶고 나서, 양념장과 야채를 넣고 다시 볶은 뒤에 어느 정도 불려놓은 당면을 넣을 차례였다. 하지만 당면은 찬물에 30여 분 넣어서 불리기에는 조금 성급함이 있었고, 그렇다고 당면이 불려질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이미 거의 볶아진 고기와 야채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 끝에 고기, 야채를 볶던 팬에 물을 두르고 제대로 불지 않은 '당면'을 팬에 넣는 모험을 선택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당면'은 익기보다는 불어갔고,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중국식 잡채밥은 그렇게 가족들의 저녁상에 민낯을 보였다. 지금까지 아이들과 아내의 입을 즐겁게 했던 내 요리는 자취를 감췄고, 우리의 식사는 혹평도 호평도 없이 먹는 것 그 본연에 충실하면서 식사 자리는 끝이 났다. 기대에 찼던 아이들의 시선도 냉랭(?)했고, 잡채를 좋아하는 아내 또한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머금은 얼굴이었지만 많이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내가 한 정성을 생각해 아내는 별 말 없이 식사를 마치려다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담아 최대한 내가 상처받지 않게 내 요리에 대해 평했다.

"당면은 미리 삶아놓고 요리했으면 맛이 괜찮았을 텐데. 나한테 물어보죠."

혹독하고, 따가왔던 시선이 오가던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저녁 시간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내 요리 잔혹사도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 잔혹스러운 요리 이야기는 시리즈처럼 이어졌다. 무엇에 씌었는지 휴일 아침 늘 하던 카레 대신 냉동실에 있는 만두로 만둣국을 끓여볼 생각을 하게 됐다. 야채를 모두 손질해 깍둑썰기 해야 하는 카레 조리보다는 판매용 사골육수에 만두와 파만 넣으면 되는 간단한 조리방법도 그런 결정을 하게 하는 데 한몫했다.

그렇게 만둣국 준비를 하던 중 만둣국에 들어갈 만두 숫자가 조금 애매하게 있는 것을 확인했고, 만둣국을 풍성하게 해 줄 다른 재료를 냉동실에서 찾던 중 발견한 것이 바로 문제의 '떡'이었다. 얼어있던 '떡'을 조금 해동한 뒤 먹기 좋게 썰었고, 끓어오르는 만둣국에 먹을 만큼의 떡을 집어넣었다.

아침 준비를 모두 마치고 가족들을 깨웠고, 잠이 조금 덜 깬 아이들과 아내에게 오늘 메뉴는 만둣국임을 자랑하듯이 말했다. 아내나 아이들은 늘 먹던 카레가 아닌 뜨끈한 국물의 만둣국이라 더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개인 그릇을 준비하고 끓여놓은 만둣국 냄비 뚜껑을 열고 나서야 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영희씨, 오늘 만둣국은 망했네요. 냉동실 떡을 썰어 넣었는데 떡이 사라졌어요."
"냉동실 떡? 냉동실 찰떡이요? 그건 떡국용 떡 아닌데 나한테 물어보죠."


그렇게 냄비 바닥에 녹아 눌어붙은 떡은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만두만을 내놓았다. 부족한 만두 숫자 탓에 아이들에게 만두를 몰아주고, 아내와 난 만두를 한 개씩만 넣은 조촐한(?) 만둣국을 영접했다. 전날 저녁부터 잔혹스러웠던 내 요리는 아침까지 이어졌고, 나의 무계획과 과욕이 부른 요리 대참사가 있었던 날로 어제, 오늘을 기억할 듯하다.

계획하지 않은 일들은 종종 의도하지 않게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다. 물론 운이 따라서 생각지도 않은 성공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패라는 딱지를 붙이는 결말을 맞는 일이 일반적이다. 목표를 갖고, 준비를 철저히 한 일들에 대해서도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가 쉽지는 않은데 준비되지 않은 일에 대한 결과가 '성공'이길 기대한다면 너무도 큰 과욕임을 알아야 한다.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 인생에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 결정이라는 것이 가지는 무게가 저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쉽게 내린 결정이 가끔은 태산 같은 '실패'의 이름을 가진 무게로 우리를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무겁게 짓누를 수도, 끊어지지 않는 긴 꼬리표처럼 우리에게 '아픔'의 이름으로 평생을 쫓아다닐 수도 있다.

단순한 요리조차도 준비 없이 달려들면 기대했던 가족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앞으로 내놓을 요리들에 대해 의심을 하게 하고, 끝내는 더 이상 요리를 하지 못하는 생각하기 싫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준비가 필요하듯 우리가 자주 접하는 일상에서도, 업무에서도 계획과 준비는 꼭 필요하다. 난 오늘 내가 만든 불은 당면과 눌어붙은 찰떡에서 그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개인 브런치에 함께 실립니다. 기사 내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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