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갤러리 현대 신관 입구 대형 홍보판. 김민정 작가의 '거리'(2020년) 도시의 우산풍경에서 영감을 받는 작품.
 갤러리 현대 신관 입구 대형 홍보판. 김민정 작가의 "거리"(2020년) 도시의 우산풍경에서 영감을 받는 작품.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갤러리현대에서 새봄 전시로 한지 작가 김민정의 개인전 '타임리스(Timeless)'이 3월 28일까지 열린다. 2017년 '종이, 먹, 그을음 그 후' 전 이후 2번째 개인전이다. 최근작 중심으로 총 30여 점 선보인다. 전시명이 '타임리스(timeless)', 즉 '영겁회귀(영원성)'를 은유한 말인가?

한지 위 현대추상으로 동서 경계 허물다

김민정 작가는 애들 이름 붙이듯 작품명 붙이기를 좋아한다. 이번에도 '물(Water)', '산(Mountain)', 영원(Timeless)', '거리(Street)', '조각(Sculpture)', '이야기(Story)', 색즉시공(Pieno di Vuoto)' 등 다양하다. '사실적 풍경'이 '추상적 패턴'으로 전환된 작품이 많다. 이번 전시 글을 쓴 권영진 미술사학자는 김 작가가 동서 회화의 구분을 없앴다고도 말했다. 
 
김민정 작가가 색이 들어간 한지를 태우는 모습' 갤러리현대 전시용 영상 촬영
 김민정 작가가 색이 들어간 한지를 태우는 모습" 갤러리현대 전시용 영상 촬영
ⓒ 갤러리현대

관련사진보기


그녀가 한지로 작업을 하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어려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인쇄소 추억이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종이는 그녀에게 가장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었다. 그 촉감도 좋지만, 종이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상상력을 발동시킨 것 같다.

그런 경험이 그녀를 자연스럽게 서예, 수채화 등과 접하게 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권유도 있고 미술 대회에서 다수 상을 받으면서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 한지는 그녀에게 자신의 유한을 극복하고 영원을 추구하는 도구가 된 모양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에 몰입하는 가운데 더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나 보다. 

김민정 작가(1962년생)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해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녀는 유학을 선택할 때 유행을 따르지 않고 서구미술의 원류를 꽃피운 르네상스 발상지를 동경했다. 그래서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에 입학한다.
 
김민정 I '타임리스' 한지에 잉크와 복합매체 104×73.5cm 2020. 부분화
 김민정 I "타임리스" 한지에 잉크와 복합매체 104×73.5cm 2020. 부분화
ⓒ 갤러리현대

관련사진보기


위 '타임리스'는 작가가 한지를 일일이 태워 손작업으로 완성한 콜라주 작품이다. 단순하고 평이하다고 보이는데도 오히려 관객을 홀리면서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게 한다. 먹의 농담처럼 그런 파동이 일고 시각적 착란증도 일으킨다. 작가가 가장 한국적인 자료인 한지를 가슴에 끌어안고 그것을 가위로 자르고 매만지고 다듬고 태운 그런 지극함의 결과인가.

한지는 그녀에게 자신의 분신 같은 살결 같은 원초적이고 태생적인 것으로 보인다. 유학 때도, 그녀에게 서양식 캔버스도 중요했겠지만, 그보다 한지의 멋과 수채화의 번짐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더 애착을 가진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10년이 지루했는지 2000년대부터 작업에서 대변신을 꾀한다. 한지로 촛불이나 향불로 태우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한지는 우리가 알다시피 닥나무나 뽕나무 껍질로 만든다. 이런 재료가 요즘 환경친화시대에 더 맞는지 모른다. 김민정은 20세기 중반 피카소가 시도한 신문이나 잡지 등을 오려 붙이는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를 능가하는 한지를 태워 만든 '콜라주'를 개발한 셈이다.

한지를 태우는 방식은 2가지다. 평이한 재료는 촛불로 태우고, 더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재료는 향불로 태운다. 이런 그을림에서 신비하게도 수백까지 색이 나온단다. 게다가 이 작업은 현대미술의 속성인 '몸의 개입'과 '우연성의 원리'가 작용해 시대성을 획득한다.

작가의 호흡이 들어가는 이런 반복 작업은 노동집약적일 수밖에 없다. 비대면 시대에 이런 작업이 오히려 더 즐거움을 준단다. '타임리스'이라는 제목은 천년 간다는 한지 속성을 대변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런 방식은 예술을 수신으로 보는 동양전통과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예술가로서 심신의 단련으로 우주원리를 깨닫고 무아의 경지로 갈 수 있다는 말인가.

참선처럼 명상적이고 구도적인 이런 방식은 작가의 마음을 오히려 맑고 가볍게 해 준단다. 작가는 미약한 한지와 뜨거운 불이 연금술처럼 작용할 때 뭔가 신비함을 느끼나보다. 그러면서 작가는 후배들에게 재료의 차별성과 독창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다. 그런 재료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 뭔가 새로운 게 나올 수 있게 한다는 메시지다.

한국의 산 등 자연을 추상화
 
김민정 I '산(Mountain)' 한지에 잉크와 복합매체 136×173.5cm 2021.
 김민정 I "산(Mountain)" 한지에 잉크와 복합매체 136×173.5cm 2021.
ⓒ 갤러리현대

관련사진보기


위 작품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외지생활 30년을 한 후 갈급함이라고 할까. 그녀가 제일 선호하는 외국어는 'Sehnsucht(그리움)'이다. 특히 산은 그녀에게 조국 그 자체다. 그냥 산이 아니라 바다를 포함해 한국의 모든 것이다. 작가는 그런 상념을 단순화하고 최소화해 미니멀한 현대 추상을 만든다.

작가는 위 작품에 대해 "산의 흔적이 영원한 해류의 소리가 되듯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먹의 피가 만든 수평선은 시간을 초월한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돌연변이 현상을 시간으로 감지할 뿐, 나는 산을 '그리고, 자르고, 태워' 물의 흐름을 '가두고, 붙인다'"라고 해설한다.

기존의 산 그림을 더 추상으로 확대해, 산속에 바다도 있고 그 바다가 다시 산이 되고 하는 모든 걸 비빔밥처럼 융합시키는 한국적 발상이 서구인들에게 통한 것인가. 이런 독특함을 서구인들은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래선지 이 시리즈 작품은 지금 대영박물관에도 소장돼 있다.

이런 호응으로 그녀는 최근 유수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2018년 영국 런던의 '화이트 큐브', 2019년 독일 '랑겐 재단', 2020년 미국 뉴욕 '힐아트 재단'에서 연이어 개인전이 열었다, 세계적 출판사 '파이돈'에서는 '동시대 대표적 '드로잉' 베스트 작가로 선정됐다.

동양철학 도상화, 조각 회화 시도 
 
김민정 I '피에네 디 부오토(Pieno di Vuoto: 색즉시공 혹은 비움과 채움)' 한지에 잉크와 복합매체 145×200cm 2020 맨 오른쪽이 작가 김민정(1층전시실)
 김민정 I "피에네 디 부오토(Pieno di Vuoto: 색즉시공 혹은 비움과 채움)" 한지에 잉크와 복합매체 145×200cm 2020 맨 오른쪽이 작가 김민정(1층전시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김민정 I '조각(Sculpture)' 145×103cm 2020(지하전시실)
 김민정 I "조각(Sculpture)" 145×103cm 2020(지하전시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번 전시에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가 '색즉시공(Piene di Vuoto)'이다. '색(채움)'은 '공(비움)'이고 서로 같은 것(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불교 철학을 조형화했다. 종이를 동그랗게 자르고 가운데 구멍을 뚫은 후 양 옆면을 태우고 원 모양을 하나씩 쌓아가는 방식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종이를 만드는 구멍은 비움 즉 '공'을 상징한다.

이번 김민정 도록에는 스위스 출신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 U. Obrist, 1968년 출생)'와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그는 2009년 '아트리뷰' 선정 미술계 파워 1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작가는 그에게 이 작품에 대해 "비움과 함께 배치하여 이들은 채움이 되고, 비움으로 가득 찬 비움의 채움이 되어요. 이 세상이 색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나 사실 색 자체가 텅 빈 것이죠. 형상은 공이고, 공은 형상이다"라고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위 2번째 '조각(Sculpture)'은 좀 분위기가 다르다. 이 작품은 회화조각으로 그러나 흔히 보는 조각은 다르다. 평면 회화를 입체 미술로 바꾼 것이다. 한지를 쌓는 방식으로 3차원 '종잇조각'을 탄생시켰다. 작가의 꼼꼼하고 섬세한 손길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의 결론으로 권영진 미술사학자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 그는 캔버스 찢기와 구멍내기로 서양미술의 공간개념을 확 바꾼 이탈리아 화가 '폰타나(L. Fontana, 1899~1968)'와 한지를 불로 태워 현대 추상을 낳은 '김민정'을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루치오 폰타나'는 예리한 칼로 캔버스를 그어 서양예술전통을 종언을 고했듯, '김민정'은 한지를 촛불과 향불을 그을려 오랜 한국의 전통화에서 벗어나게 했다. […] 압축적 속도전으로 전개된 한국사회에서 김민정 작품은 익숙하듯 참신하고 오래 묵은 듯 새롭다. 현대미술 숨 막히게 숨 가쁘게 건너뛴 그녀의 30년은 이제 결심을 맺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

김민정 작가는 누구인가?
 
김민정 작가 작업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갤러리 현대 제공
 김민정 작가 작업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갤러리 현대 제공
ⓒ 갤러리현대

관련사진보기


김민정 작가는 국내보다 국외 전시를 많이 하다 보니 국내에서 덜 알려진 편이다. 광주 출신으로 1962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서예, 수채화 등을 공부했고,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1991년부터는 이탈리아로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에 유학했다.

지난 20여 년간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 영국, 미국, 이스라엘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2012년 로마 마르코 현대미술관, 2015년 '장-크리스토프 암만(J.-C. Ammann)'이 기획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카보토 궁에서 개인전 '빛, 그림자, 깊이'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이탈리아 유명 미술재단과 덴마크 '스비닌겐미술관', 영국 '대영박물관'에 그녀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17년 싱가포르 '에르메스재단', 2018년 '화이트큐브', 2019년 '랑겐'재단, 2020년 '힐아트'재단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 홈페이지 https://www.galleryhyundai.com/main
인스타그램 www.instragram.com/galleryhyundai


태그:#김민정, #루치오 폰타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한지의 현대화, #갤럴리현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