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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문에는 4개의 치미 장식이 위풍당당하게 부여를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맞아주고 있다
▲ 부여의 관문 사비문 사비문에는 4개의 치미 장식이 위풍당당하게 부여를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맞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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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청 현관에는 부여를 대표하는 두 개의 백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는 백제 금동대향로이고 다른 한 가지는 '치미'이다.

치미란 장식 기와이다. 백제 시대 건물의 지붕재인 기와의 끄트머리를 장식했던 장식용 기와이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기와와는 전혀 다른 모양새이다. 솔개 치(鴟)자와 꼬리 미(尾)를 써서 치미라고 했지만 대규모 건축물에서 솟구치는 봉황의 깃을 형상화하여 왕가의 권위와 종교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장식이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뚜껑 윗부분을 장식하는 봉황의 꼬리도 치미 장식과 닮아 있다. 기와의 이음매 끝에 하늘을 향해 뻗은 한 마리 새의 날렵한 꼬리를 얹어 놓은 형상인 기와를 부여군의 상징처럼 현관에 전시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정교하고 깔끔한 마감처리 좀 보세요. 1400년 전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믿어지세요? 백제는 삼국 중 최고의 기와 제작 기술을 보유한 국가예요."

백제기와문화관 교육사 이상용씨의 말이다. 치미에 대한 자부심이 치미만큼 솟은 사람이었다. 삼국 시대에 궁궐이나 사찰 등의 규모가 있는 건축물에서 기와의 용마루 끝에 치미 장식을 올렸다. 백제의 치미는 삼국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기와라는 정보 없이 이 조형적 가치만으로 감상을 해도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어디에도 1400여 년 전의 골동품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현대의 어느 조형 작가의 전시장에서 있을 것 같은 작품처럼 보여진다. 백제의 미학은 6세기를 넘어 21세기에도 통한다는 것이다.
 
부여군 현관에 전시된 치미. 꼬리의 깃털이 섬세하고 역동적이다.  3D 기술이라해도 믿을 정도로 하이테크하다.
▲ 부소산 절터에서 발견된 치미  부여군 현관에 전시된 치미. 꼬리의 깃털이 섬세하고 역동적이다. 3D 기술이라해도 믿을 정도로 하이테크하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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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미는 기와 장식이라는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그 용도가 궁금했을 물건이었다. 작년 부여 장암면 정암리에 있는 기와문화관에 들렀을 때 치미를 만났다. 백제기와문화관 현관에는 왕흥사지에서 발굴된 거대한 치미가 실물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처음에 기와는 감을 잡을 수 없는 문화재였다. 기와문화관 마당에서 건축에 대한 식견이 없어서 이해를 할 수 없는 기와에 대한 고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가마터 앞에 시크하게 놓여 있던 치미가 눈길을 잡아당겼다. 그날부터 백제 치미에 꽂혀 버렸다. 백제 기와에 대한 모든 것이 그 곳에 있었지만 치미만 파고들었다. 어떤 문화재도 치미만큼 감흥이 오지 않았다.

치미는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날개만을 형상화 했어도 한 마리의 큰 새가 날아갈 듯이 앉아 있는 자태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지붕 위가 아닌 잔디 위에서도 잘 어울렸다. 1400여 년 전 작품이 전혀 촌스럽지 않고 모던하기까지 했다. 위대한 작품은 시공을 초월하고 전천후로 적용해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백제인들의 예술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신라에 '얼굴무늬 수막새'가 있다면 백제에는 '치미'가 있다.  2013~2014 년에 국립부여문화재청에서 왕흥사터를 발굴하면서 발견된 왕흥사지 치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대 규모의 치미였다. 왕흥사 치미는 백제 기와의 격을 높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이테크 백제인의 이미지를 견고하게 했다. 다음은 앞서 소개한 이상용씨의 치미 예찬이다.

"부여는 치미의 왕국이지요. 도처에 백제의 후손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치미의 세계가 부여를 빛나게 해주고 있어요."

백제 기와인 치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부여의 여기저기에서 치미가 눈에 들어왔다. 치미는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여 시가지 곳곳에 백제를 상징하는 건물이 있는 곳에는 다 있었다.
 
눈이 오는 날에 대종각에 내려 앉은 봉황같은 치미
▲ 부여 군청 앞 대종각의 치미 눈이 오는 날에 대종각에 내려 앉은 봉황같은 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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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앞의 백제 대종각의 지붕 끝에도 날렵한 치미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자태로 백제인들의 후예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여의 관문인 사비문에도 부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동문 로타리 육교를 덮고 있는 기와 장식의 양쪽 끝에도 거대한 새 두 마리로 앉아 있었다.
 
육교 위에 내려앉은 치미. 두 마리의 봉황이 백제의 후예들을 굽어보고 있는 것 같다
▲ 부여 동문 로타리 육교 육교 위에 내려앉은 치미. 두 마리의 봉황이 백제의 후예들을 굽어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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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중심가, 정림로에 있는 백제 왕가의 사찰이었던 정림사 터 건물에도 치미가 있었다. 1400여 년 전 봉황이 백제 땅을 박차고 2021년의 부여로 날아와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백제의 후손들이 사는 부여 시가지 곳곳에서 백제 부활을 도모하는 모양새로 오래전부터 앉아 있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치미들이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옛 건물 앞에서 미스터리가 풀린 것처럼.

군청 현관을 장식하고 있는 치미는 부소산 절터에서 발견된 치미로 꼬리의 깃털이 바람에 날릴 것처럼 입체적으로 만들어졌다. 경주의 수막새에서는 구현하지 못한 3차원 입체 기술력이 이미 백제에서 실현되었다. 그 치미를 지붕의 용마루 끝에 얹으면 건물은 그대로 한 마리 봉황이 되는 것이다. 치미는 신과 인간들이 함께 사는 곳에서 용화세계를 추구했던 백제인들의 열망인지도 모르겠다.
 
백제역사를 한 눈에 볼수 있는 재현 단지에는 치미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 백제 역사 재현 단지는 치미의 왕국 백제역사를 한 눈에 볼수 있는 재현 단지에는 치미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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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를 추적하듯이 치미 장식을 찾아다니다가 백제 치미의 결정판을 보게 되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흘끔 돌아본 그곳에 거대한 치미가 있었다. 한 마리 봉황이 양 날개를 한껏 모은 모습을 형상화한 치미가 연꽃 향기 가득한 궁남지에도 있었다. 지붕 끝에서 꼬리 깃을 활짝 펴고 비상을 기다리던 날개가 드디어 날아오르는 듯했다.
 
백제 치미의 결정판. 치미의 왕국 부여에서 가장 빛나는 치미
▲ 부여 궁남지의 오천결사대 충혼탑  백제 치미의 결정판. 치미의 왕국 부여에서 가장 빛나는 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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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블로거들이 궁남지에 있는 백제 오천결사대 충혼탑에 다녀갔고 계백장군의 결연한 의지에 대해서는 칭송하고 있지만 백제의 치미를 형상화한 뒷배경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계백과 군사들이 기개가 한층 빛이 나는 것은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백제의 장식 기와 치미를 형상화한 배경화면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백제다운 모습을 백제를 대표하는 인물과 아름다운 백제가 있는 곳에 세워놓은 것이었다. 백제의 치미를 섭렵한 후에야 오천결사대 충혼탑이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부여에서 백제를 찾는 일은 쉽지만 지적 감수성이 열려야 비로소 백제가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로 가장 적절한 말이 치미를 통해 적용되었다. 부여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부여 여행의 묘미를 한껏 즐기는 방법으로 백제의 치미를 찾아가는 미스터리한 여정을 추천한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백제의 치미를 찾아가는 미스터리한 여정의 꿀팁

1. 사비문→부여 동문 로터리 육교→부소산 절터→정림사지→궁남지 충혼탑
2. 백제 역사 재현단지(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롯데 아울렛→백제기와문화관(부여군 장암면 의자로)→서동요 드라마 세트장(부여군 충화면 가화로)

태그:#백제 치미 , #부여 여행, #백제 기와, #왕흥사터 , #치미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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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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