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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명) 어머님께.

메일 잘 받았습니다. 우선, 늦은 저녁 시간, 그것도 원격으로 진행된 제 강의를 경청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족히 A4 한 장은 됨직한 소감까지 적어 보내주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수업 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이 어머님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글을 세 번이나 정독했습니다. 진심을 담아 답장을 보내려면, 글의 이면까지도 잘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고 답했다가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 답장을 준비하며 썼다 지웠다를 수도 없이 반복한 이유입니다.

지나친 욕심일지 모르겠으나

어머님의 글 속에 올해 고등학생이 된 자녀에 대한 걱정과 대학 입시에 대한 불안,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느낍니다. 자녀의 중학교 시절 담임교사로 인해 겪은 상처를 담담히 적은 부분에선 같은 교사로서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제 강의가 위로되기는커녕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는 비단 준호 어머님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좁게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의 한결같은 고민일 테고, 넓게는 초중고 모든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겪는 고통입니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쾌도난마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풀어내야 할 '고르디온의 매듭'임엔 분명합니다.

하여 이곳 지면을 빌어 답장을 대신할까 합니다. 준호 어머님을 비롯해 우리 공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분들과 공감하고 싶어섭니다. 이 와중에 지나친 욕심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더불어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연대하면서 교육 현실을 바루는 데 힘을 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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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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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 교육은 희망보다 고통을 먼저 떠올리는 고약한 단어가 돼버렸습니다. 이전 교육과정이 정착되기도 전에 새 교육과정이 등장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대학 입시에다 코로나까지 덮쳐 교사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하물며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자녀 교육의 성공 비법은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어머니의 정보력이다." 어머님께선 여전히 이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고, 아니 믿는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알다시피, 이는 사교육의 도움 없이는 명문대에 진학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학교 교육은 대학 입시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로지 대학 입시에만 특화된 사교육을 공교육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거친 비유일지언정, 도박판에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도 돈 많은 상대방을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대학 입시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그것이 모두에게 교육의 최종 목표로 인식될 땐 공교육은 필패입니다.

2020년 학교의 원격 수업이 부실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수용합니다. 팬데믹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학교는 허둥지둥하며 수업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교실이라는 밀집된 공간에 밀접 접촉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학교는 교육과정보다 방역지침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를 헤아리지 않고 학원 수업과 단순 비교하는 건 조금은 억울합니다. 발 빠르게 원격 수업을 준비한 학원에 비해 학교는 왜 더디기만 한지 물으셨지만,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소형 보트와 수천 명을 태운 대형 여객선이 같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격차는 존재하겠지만, 올해는 작년과 분명 다를 겁니다.

진짜 서운한 건 따로 있습니다. 학부모님은 원격 수업의 부실을 은근슬쩍 교사와 학원 강사의 능력과 열정 차이로 단정하셨습니다. 성급한 일반화며 지나친 억측입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교육의 지향점이 다르고, 또 달라야 합니다. 교사가 학원 강사처럼 가르치면 된다는 주장은 학교더러 '학원이 돼'라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머님 말씀마따나 코로나로 원격 수업이 보편화됐고, 그로 인해 학교의 존재 이유를 묻게 된 건 맞습니다. 다만, 수업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학교가 필요 없다고 단정하기보다 공교육의 역할은 무엇이며, 나아가 교육의 본령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할이 바뀔지언정 학교가 사라질 리는 없습니다.

사람과 제도의 혼동

어머님께선 정부가 2025학년도 전면 실시를 못 박은 고교 학점제에 대해서도 마뜩잖게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데 방해가 될 거라고 덧붙이셨습니다. 모르긴 해도, 수시와 정시가 혼재된 현행 대학 입시 제도가 그대로 존속된다면 학부모님의 예측이 그리 틀리진 않을 겁니다.

당장 아이들마다 선택 교과가 달라 시간표도 일과도 다를 텐데, 학급 담임교사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느냐고 따지듯 물으셨습니다. 학년 구분 없이 선택 교과를 수강할 경우, 선후배가 뒤섞이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적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가의 공정성은 차치하고라도 학교생활부터 어수선해질 거라는 점을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순회 교사 제도의 맹점을 거론하셨습니다. 요일마다 학교를 떠돌다 보면 소속감이 약해지고 수업이 부실해질 거라고 우려하셨습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라는 인식이 희미해지면 수업에 대한 열정도 덩달아 약해질 테고, 결국 애먼 아이들이 피해를 입게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고교 학점제에 대한 어머님의 불만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학교와 교사가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겁니다. 뒤집어 말하면,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고교 학점제가 정착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그러나 고교 학점제는 '사람'이 아닌 '제도'의 문제입니다. 대학 입시든 뭐든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은 지금껏 잘 되면 제도 덕이고, 안 되면 교사 탓이었습니다. 교사 집단이 불신을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고 해도, 우리나라 교사는 온존한 '철밥통' 이미지에다 무시로 여론의 뭇매를 견뎌야 하는 '동네북' 신세입니다.

단적인 예 하나만 들겠습니다. 이태 전부터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데 있어서 고교 학점제 시행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학교 지정 선택 교과를 대폭 축소하고 학생 스스로 선택하도록 개설 교과 수를 늘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최종 편제된 교육과정은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교사의 수급 불균형 문제도 없진 않지만, 더 큰 이유는 아이들의 선택이 예상만큼 다양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상치 교과를 없애기 위해 순회 교사를 초빙하는 등 교육청으로부터 다양한 지원도 받지만,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과연 그들의 적성과 흥미가 획일적인 탓일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이미 수시와 정시 모두 놓칠 수 없는 '두 마리 토끼'인 데다, 그마저 선택 과목과 응시 과목이 다를 수밖에 없다면, 고교 학점제에서 아이들의 선택은 불 보듯 환합니다. 수능 응시 과목에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맞출 게 분명합니다. 시작도 전에 고교 학점제는 껍데기만 남고 취지가 무력화된 겁니다.

만시지탄이지만, 고교 학점제의 전면 시행을 발표하기 전에 대학 입시 개혁의 로드맵이 나왔어야 합니다. 대학 입시가 고등학교는 물론, 초중학교의 교육과정까지 쥐고 흔드는 현실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몸통'은 숨긴 채 '꼬리'부터 내민 모양새입니다. 설마 교사와 학부모 등 여론의 반응을 떠보자는 심산일까요.

조만간 대학 입시 개혁에 대해 정부의 발표가 있긴 할 겁니다. 중요한 건, 현행 대학 입시 제도, 특히 수능과 고교 학점제가 두 바퀴로 함께 굴러가지는 않으리라는 점입니다. 그 둘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제도입니다. 거칠게 말해서, 둘 중 하나는 끝내 만신창이가 될 '러시안룰렛' 같은 상황이 전개될 겁니다.

어머님께선 여론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수능을 '굴러온 돌'인 고교 학점제가 밀쳐내진 못할 거라고 장담하셨습니다. 수능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도, 학종도 결국 수능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느냐며 반문하셨습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을 봐선 저 역시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도 고교 학점제의 취지에는 십분 공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지레 포기하기보다,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하고 나부터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 이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우리는 전가의 보도처럼 '시기상조'만 되뇌어야 할까요.

언제까지 '시기상조' 해야 하나요

준호 어머님께서도 보셨을 테지만, 강의 도중 채팅 창에 저더러 '낭만주의자'라며 댓글을 다신 학부모님이 계셨습니다. 강의가 현실과 아예 동떨어진 내용이라는 지적이셨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이미 고등학교 전 과정을 두세 번 반복하고 입학하는 게 관행이 된 현실에서 무슨 허깨비 같은 이야기냐는 뜻입니다.

그분께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이가 무슨 죄입니까. 기성세대인 우리가 아이들을 그런 고통의 수렁에 밀어 넣고선,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학부모님 자신도 주범은 아닐지언정 공범입니다. 대체 언제까지 현실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아이들의 고통을 방관할 작정이십니까. 이는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님 자신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여기에다 그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몇 마디 덧붙일까 합니다. 고교 학점제든 뭐든 이 땅의 교육이 바로 서려면, 우리 모두 내 자녀만 잘되면 된다는 인식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교육은 내 자녀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도는 태양계가 아닙니다. 남이 불행하면 나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유기체입니다.

어머님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을 미루어 보건대, 준호의 고등학교 생활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의 성적에 관심을 두기보다 준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게 무엇인지 묻고 응원하고 기다려주십시오. 무릇 교육이란 아이의 꿈을 스스로 발견하고 발현시키기 위한 기다림의 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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