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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안동네 마을 벽화
 역곡안동네 마을 벽화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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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역 북부 광장에서 까치울역 방향으로 비좁은 2차선 도로를 한참 걷다 보면 역곡 초등학교가 나오고 그 뒤로 작은 마을 하나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은 역곡 안동네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원래 이곳 지명은 벌응절리였다. 벌응절리는 ‘벌언저리’의 한자 표기로 ‘벌’은 ‘벌판이나 구릉지’, ‘언저리’는 ‘가장자리’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바로 뒷산인 멀뫼(원미산)도 그렇고 까치울, 고리울, 은데미, 조마루 등 부천에는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이 제법 많이 남아있다.
 
그런데 괜히 아는 척을 했나 보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지명 유래 표지판을 들여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많이 다르다. 표지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벌응절리(伐應節里) 지명유래

말에 자리잡은 마을이란 의미의 이두식(吏讀式) 지명표기이다. 부천 향토사의 효시인 <부천예총>이나 <부천의 흐름>에서 벌응절리는 “시의 동쪽 관문인 이 마을은 서쪽에 있는 안마을이 ‘벌골’이라 불린다”라고 하였고, <한국지명총람>에서는 “벌언저리가 되므로 ‘벌언저리’, ‘벌은저리’, ‘벌응저리’, 벌응”이라 하였다. 따라서 벌응절리는 본 마을인 벌골/벌말에서 유래한 것임을 이로 알 수 있다. *이칭 : ‘큰말, 안마을, 안동네’

 
첫 문장부터 알쏭달쏭하다. ‘말’과 ‘마을’은 같은 뜻일진대 ‘마을에 자리잡은 마을’이란 도대체 뭘까? 요지인즉, 벌응절리 서쪽에 벌골인지 벌말인지가 있었고, 그 마을 언저리에 있는 마을이어서 벌응절리라고 했다는 것 같은데, 참 어렵다. 좀 쉽고 간결하게 쓸 수 없나? 참견하기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고쳐본다. 요렇게... ㅎㅎ!
 
'벌응절리(伐應節里)는 벌말(벌) 동쪽 언저리(응절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벌말은 벌응절리 서쪽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올해 말쯤 지구계획 승인절차가 완료되면 보상에 들어간다.
 올해 말쯤 지구계획 승인절차가 완료되면 보상에 들어간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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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걱정을 했나 보다. 이곳은 지난 2019년 12월 부천 역곡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어 오는 2026년까지 3천여 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어 있다. 이제 얼마 후면 마을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주민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었기에 그나마 옛날 마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몇 년 후면 이곳도 번듯한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여 옛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게 됐다.
 
고향을 잃어버린 도시의 실향민들은 원미산 등산을 마치고 이곳 역곡 안동네로 내려와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실향의 슬픔을 달래곤 했다. 비좁은 골목과 낡은 집들, 그 사이사이로 빼곡히 들어선 작은 텃밭들이 자꾸만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 모았다. '지금쯤 내 고향에도 복사꽃이 활짝 피었을 텐데…' 지난봄 백령도 손두부 집에 앉아 고향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새롭다.
 
 
마을 곳곳에 크고 작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마을 곳곳에 크고 작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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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마을 곳곳이 현수막 천지다. 아직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라 그런지 현수막 문구에는 주민들의 격앙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LH공사 사장이라면 주민들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고 어디든 가서 편히 사시라고, 아무리 큰돈인들 고향을 잃어버린 슬픔만 하겠냐고, 주민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위인이 못된다.
 
130년 고택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어, 물어물어 고택을 찾아가 보니 집은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고 대문은 굳게 닫혔다. 궁금한 마음에 LH공사에 전화를 걸어 조심스럽게 문화재 지정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안타깝게도 경기도 지정문화재 신청이 부결되었단다. 올해 말쯤 지구계획 승인절차가 완료되고 보상이 이루어지면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텐데,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역곡 안동네의 산증인인 130년 고택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역곡 안동네에 있는 120년 고택
 역곡 안동네에 있는 120년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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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130년 고택을 나서자 벌응절리 경로당이 눈에 띈다.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없는지 셔터문은 굳게 잠겼고 국기게양대의 태극기만 무심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지붕 위로 우뚝 솟은 확성기에서는 금방이라도 “주민 여러분~” 하는 이장님의 정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데 골목엔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마을은 폐허처럼 쓸쓸하기만 하다. 길 건너편 쇠사슬에 묶인 개 한 마리가 공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역곡안동네에 있는 경로당
 역곡안동네에 있는 경로당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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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에 묶인 개 한 마리가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쇠사슬에 묶인 개 한 마리가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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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통의 백령도 손두부집도 이제 곧 폐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가는 등산객을 상대로 식당을 하던 할아버지는 병환으로 드러누웠고, 할머니도 병수발을 드느라 따님이 도맡아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고향이 황해도인 할아버지가 백령도로 피난 가서 할머니를 만났고 이후 부천으로 이주해 이 두부집을 열었단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싼 가격이 등산 후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기에 더없이 좋은 집이었는데 이마저도 1~2년 후면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역곡 안동네에 있는 백령도 손두부
 역곡 안동네에 있는 백령도 손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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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통의 백령도 손두부
 27년 전통의 백령도 손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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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두부에 막걸리 한 잔 마시고 길을 나서니 아직 바람이 차다. 식당 앞에는 겨울을 지난 매화며 벚나무 등이 한창 기지개를 켜고 있고, 경작을 앞둔 밭에는 기름진 흙이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밭모퉁이에 앉아 원미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흙 한 줌을 집어 들자 손 안에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한없이 애처로운 대지의 감촉이 느껴진다. 젊은 시절, “안녕!”하며 뒤돌아서 가던 그녀의 손길 같은.

 
역곡 안동네의 봄을 기다리는 들녘
 역곡 안동네의 봄을 기다리는 들녘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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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콩나물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역곡안동네, #부천, #콩나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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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기행 작가. 콩나물신문 발행인. 저서에 <그리운 청산도>,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느티나무와 미륵불>,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주부토의 예술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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