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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밀개발은 투기 판돈 키우기, 서울 난장판 될 것"

[논쟁 / 서울 역세권 고밀개발 - 반대]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21.03.03 12:15최종 업데이트 21.03.0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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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부 정책은 기존 서울시 도시계획의 틀을 깨겠다는 거다. 기존 도시계획 틀을 무시하면서 주택을 공급한다면 서울은 완전히 난장판이 될 것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금 상황에서 공급을 늘리라는 건 투기 판돈을 키우는 것"이라며 서울의 고밀개발을 반대했다. ⓒ 유성호


"어느 도시도 초고층 아파트를 지으려고 개발하지 않아요."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의 도심 고밀 개발이 지금 서울이라는 도시에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밀개발정책을 '개발시대 회귀'라고 정의한 정 교수는 "기존 도시계획 틀을 무시하면서 주택을 공급한다면 서울은 완전히 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선진국 어느 도시도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초고층 개발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정 교수는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라는 방향도 "틀렸다"고 본다.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은 서울에 사람이 몰리기 때문인데, 주택 공급은 오히려 사람을 더 끌어 모은다는 이유에서다. 정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공급을 늘리는 건 투기 판돈을 키우는 것"이라며 "지금은 오히려 지방으로 사람이 가도록 투자해야 하는데, 수도권에 인프라가 몰리면 사람은 더 몰리고 집값은 더 올라간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고밀개발이 전체적인 국토 운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도권에 신도시를 만들어 계속 아파트를 공급하고 GTX도 뚫어주고 인프라에 투자하면 사람들은 계속 수도권에 올 수밖에 없다"며 "사람이 몰리면 집값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바람직한 도심 개발 방식으로 소규모 단위, 재생사업 형태를 제안했다. "도시 내 빈집 등을 잘 고쳐서, 살 사람들이 모이고 집도 함께 설계를 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도 형성할 수 있다"라며 "오래된 곳을 고치고 갱신하면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동네도 젊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래는 지난달 22일 서울시립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정석 교수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도시계획 틀 무시하면 서울은 완전 난장판 될 것"

-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발표한 역세권 등 도심고밀개발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정부 정책은 기존 서울시 도시계획의 틀을 깨겠다는 거다. 도시계획은 세계 어느 도시에나 있고, 계획의 단단한 틀 내에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건설과 주택 공급은 도시계획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도시가 장기적으로 유지 될 수 있다. 매번 공급 때문에 이 계획을 뒤엎을 순 없다. 용적률 등 도시 밀도 관리를 위한 틀이 있는데, 그걸 풀어주고 35층 높이 제한도 풀어준다면 서울은 온통 초고층 아파트 일색이 된다. 기존 도시계획 틀을 무시하면서 주택을 공급한다면 서울은 완전히 난장판이 될 것이다."

- 고밀개발 계획을 보면, 지구단위계획을 지정해 대규모로 개발한다는 방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구체적인 개발지역도 발표될 예정인데, 이런 개발 방식이 적절한가?

"정부의 이번 공급 정책도 서울 전면 개발정책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과거에도 아파트 단지식 개발을 했다. 이명박 때 뉴타운은 단지식 개발이다. 개발 단위가 크다.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기존에 있던 골목길까지 다 묶어서 개발한다. 그렇게 지어진 아파트 단지는 하나의 폐쇄된 성채가 되고, 외부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한다. 도시에 바람직한 개발이 아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설명해준다면?

"정부가 저층 주거지와 준공업지, 역세권을 개발한다고 했다. 준공업지역도 손 대면 안된다. 성수동·구로구 등 공장지역은 여전히 산업 기능이 남아 있다. 세운상가에도 오랜 시간 축적한 산업 생태계가 있다. 동대문은 드라마에서 본 옷의 시제품이 바로 나온다. 원단·부자재·봉제 등 패션 관련 기능이 다 몰려 있어 가능하다. 이게 큰 힘이다. 오랜 공장 지역은 임대료도 저렴한데, 젊은 사람들이 집도 구하고 창업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아파트를 지으면 임대료부터 다 올라갈 거다. 저층 주거지도 작게 작게 고쳐서 골목길도 남겨서 동네를 기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부 다 아파트로 한다? 그건 사람 몸의 암세포와 같다. 폐쇄된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자기만의 공동체)이고, 외부 사람들은 돌아가야 한다. 그런 방식의 도시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말 개발이 필요하면 '작작고'여야 한다"
 

정부가 25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난달 4일 서울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공인중개사가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정부는 서울 등 대도시의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2025년까지 서울에만 32만호 등 전국에 83만6천호의 주택을 공급을 목표로 한다. ⓒ 연합뉴스

 
- 모든 지역은 아니지만, 개발이 필요한 노후주거지들도 있다. 도시계획상 정말 필요한 개발도 있지 않겠나?

"정말 공급, 개발이 필요하다면, '작작고'여야 한다. '작게 작게 고치는 방식'이어야 한다. 개발 단위를 작게 하고, 주거지를 갱신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역세권 가까이 상업용 건물이 많다. 그런 상업용 건물이 리모델링되거나 새로 지어지면서 주거기능이 들어올 수 있다. 단독주택도 헐고 원룸 등을 지어서 주택 총량을 늘릴 수 있다. 그런 소단위 방식은 좋다.

빈 곳을 활용하는 방식도 있다. 도시 내 빈집 등을 잘 고쳐서, 살 사람들이 모이고 집도 함께 설계를 하는 방식이다. 맞춤형 집을 설계하고 모두가 모여서 공유 공간을 이용하고 공동체도 형성하게 된다. 성미산 공동체주택이 그런 방식이다. 빈 공간이 있는 곳은 대부분 기성 시가지들이기 때문에 학교나 편의시설도 다 있다. 오래된 곳을 갱신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면 동네가 젊어진다. 카페가 생기고 공방이 생긴다. 옛 개발 시대에는 때려 부수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가면 안된다."

- 사실 고밀개발이라는 정책이 나오게 된 원인은 집값 상승이다. 정부는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 집값이 상승했다고 짚으면서 이런 정책이 나왔다.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상황에서 공급을 늘리는 건 투기 판돈을 키우는 것과 같다. 수도권과 서울에 주택 공급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편중과 불균형의 문제다. 수도권 집값이 올라가는 건 사람이 수도권에 몰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지방으로 사람들이 가도록 지방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수도권에 신도시 만들고 계속 아파트 공급하고 GTX도 뚫어주고 인프라에 투자하면 계속 사람들은 수도권 올 수밖에 없다. 사람이 더 몰리면 집값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판교 신도시 만들었는데, 오히려 강남 집값이 더 올랐다. 공급을 하면서 집값이 올라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전국적 측면에서 볼 땐 지역균형발전도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겠나.

"박정희 때 성장 거점론, 클 놈을 키워주겠다는 기조 때문에 지금 지역 편중 문제를 앓고 있다. 독일 같은 곳은 인구가 100만이 넘는 도시도 몇 되지 않는다. 독일은 저마다 도시들이 잘 살 수 있도록 경쟁력을 만들어준다. 지금 수도권·서울 고밀개발을 한다는 건 지방은 다 죽으라는 얘기다. 대한민국 국토 관리의 틀 안에서 도시 관리도 있어야 하고 주택 정책도 있어야 한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대한민국은 머리(서울)가 너무 커졌다. 머리가 터지기 직전인데, 손발(지방)은 피가 돌지 않아 괴사 직전이다. 이럴 땐 편중 문제를 푸는 게 근원 치유다. 그걸 하지 않고 대증 요법으로 가고 있는 거다."

"대한민국은 머리(서울)이 너무 커졌다, 터지기 직전"
 

"사람으로 비유하면 대한민국은 머리(서울)가 너무 커졌다. 머리가 터지기 직전인데, 손발(지방)은 피가 돌지 않아 괴사 직전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 유성호

 
- 집값 상승이 결국 고밀개발이란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국 주택 정책의 잘못된 점은 공공주택이 너무 적다는 거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기 집을 100% 가진 곳이 없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빚 내서 사라고 할 게 아니라, 집 안사도 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사회주택이나 공공임대 주택에서 편안하게 평생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해야 한다. (재생 방식의 개발을 통해) 굳이 집을 자가 보유하지 않고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 주택을 필요한 사람에게 빨리 제공해줘야 한다. 정부가 공공주택을 임대가 아닌 분양으로 풀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정 분양할 거면 보금자리 주택처럼 낮은 가격에 분양해야 한다."

- 지금 정부의 분위기를 보면, 우려하던 일들이 현실화될 것 같다. 서울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완전 개발시대로 돌아갈 거다. 서울 전역이 재개발 판이 될 것이다. 용적률 600% 이상인 초고층 아파트가 역마다 들어서는데 그게 바람직한가. 초고층을 고집하는 이유는 조망이다. 호텔이나 사무실이 아닌 주거 공간은 24시간 사람이 살아야 하는 공간이다. 일본에 그런 연구가 많은데, 높은 데서 계속 생활하는 것은 건강에도 안 좋다. 초고층이 조망은 좋겠지만, 도시 전체로 볼 때도 바람직한가. 초고층 보기 싫은 사람도 억지로 보면서 살아야 한다."

- 이런 방식으로 고밀 주거 개발 정책을 하는 도시들이 또 있나?

"어느 선진국 도시도 초고층 주거를 짓겠다고 개발을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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