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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환경, 노동, 소수자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10명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주제는 ‘코로나19가 남긴 과제’다.
▲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책 표지 인권, 환경, 노동, 소수자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10명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주제는 ‘코로나19가 남긴 과제’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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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를 간호했다는 이유로 빈집에서 자가격리를 한 간호사
코로나 의심 증상만으로 최종면접 기회를 포기한 취준생
생업을 걱정하기보단 완치 후 백신 개발을 위해 혈장을 기부한 부부
확진의 기로에서 확신으로 스스로를 멈춰준 사람들
고맙습니다.
당신의 확신이 수많은 확진을 멈췄습니다.
<한국방송광고공사 홈페이지 공익광고 자료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익광고다. 라디오에서 처음 이 내용을 들었을 때, '와 대단한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복해서 광고를 접할수록 점점 불편해졌다.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창비)을 읽다가 이유를 찾았다.
 
"누군가의 선의가 아니라 권리에 기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26쪽
 
공익광고에 등장하는 간호사, 취업준비생, 확진자 부부는 분명 '선의'를 가진 대단히 훌륭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 개개인의 훌륭함과 별개로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재난을 해결하는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재난이 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아직도 국가는 개인들의 선의와 희생을 앞세우고 있다. 공익광고는 의도치 않게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보건의료 노동자,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모두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 이들이다.

왜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의사, 재벌 기업 대주주가 아닌, 사회적 약자들이 희생의 주인공이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과 선의에 기대 재난을 건너려고 할 것인가? IMF 구제 금융 위기 때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벌였던 '금 모으기 운동'과 코로나19 공익광고 속 내용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서로 다른 위치에서 돌아본, 코로나가 남긴 '과제' 

책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지난 1년 동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누군가는 희미하게 또 다른 누군가는 '너무나 분명해서 날카롭게' 품었던 질문과 대답을 담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의 그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인권과 환경, 노동과 소수자운동 등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필자들에게 글을 부탁했다."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기획한 창비 관계자가 책 머리에서 밝힌 출판 의도다.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10명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주제는 '코로나19가 남긴 과제'다.

"놀랍게도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한 이들의 결론은 하나로 만난다"라는 기획자의 말처럼 글쓴이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로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8쪽).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쓴 김지혜는 추천글에서 "코로나19 이후 만들어야 할 '새로운 일상'은 무엇인가"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202쪽).

인권운동가 미류는 뜻하지 않게 겪은 자가격리 경험을 통해 "가장 취약한 곳에서 재난이 재생산되는"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질문한다(22~23쪽). 그는 '감시, 처벌, 단절'이 아닌 두려움 없이 서로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연결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불평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인류학자 서보경은 이태원 클럽에 다녀간 사실을 숨긴 성 소수자 사례를 실마리로 우리 사회가 강조한 '엄격한 처벌'은 감염병 예방과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가 "서로의 고통에 감응할 수 있을 때",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애쓸 때" 비로소 코로나 이후 새로운 세계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45쪽).

플라스틱 프리 활동가 고금숙은 우리가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마스크로 대표되는 일회용품 사용 문제를 다룬다. 함께 "일회용품을 거절하고 줄이고 재사용하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66쪽).

배달 노동자인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 박정훈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법 울타리 밖으로 내쫓긴 '플랫폼 노동자'들의 삶을 말한다. "배달은 필수적인 산업이 됐지만 배달을 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그의 말은 뼈아프다(74쪽).

구술생애사 작가인 최현숙은 '집이 없는데' '집에 머무를 것'을 강요받으며 한 해를 보낸 거리 홈리스들 문제를 다뤘다. 그는 "대한민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UN의 코로나19 지침을 조목조목 거꾸로 집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101쪽).

"너희는 겉차림새대로, 너희들의 머릿속에 짜여 있는 잣대대로 값어치를 매겨 모든 것들을 대접하고 있다"라는 한 노숙인의 글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수의 목소리에만 익숙한지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102쪽).

장애학 연구활동가 김동현은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뤘다. '코로나 블루'를 넘어 '코로나 블랙'을 경험하며 "내일의 삶을 이어갈 가능성과 희망을 상실한 채 암흑 속에 내던져지는" 장애인들의 이야기.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시설에 사실상 가둬두고 '죽게 내버려 두는', 푸코가 말한 '생명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라고 고발한다. "이 시대와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간주해온 삶의 양식을 전환하려는 총체적인 고민과 기획이 정치와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이길보라는 코로나19로 국경이 닫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지내면서 겪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우리 사회가 방역을 위해 우선시한 가치에 대해 다시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더욱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삶의 우선 가치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정부와 사회는 개인의 가치를 어떻게 보장하고 지킬 것인지, 자유와 사랑, 용기를 가르치고 선사하는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140쪽).

작가 이향규는 자신이 영국 생활에서 겪은 차별과 혐오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도 퍼져 있는 '인종주의 바이러스' 퇴치에 대해 논의한다. 그는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인종차별과 혐오범죄에 맞서는 최소한의 장치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제안했다. 법률 제정과 함께 "교육, 사회운동, 약자들의 연대, 마주 앉은 대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성찰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159쪽).

야생 영장류학자 김산하는 "코로나19 때문에 난리를 치느라 한참 뒷전으로 밀린, 그러나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을 다룬다(166쪽). 바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역시 "가장 뒷전으로 밀린" 자연 이야기다. 그는 코로나 이후의 삶이 '생명다운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삶의 태도를 바꿀 것을 강조한다.

정치학자 채효정은 "돌봄이 무너졌다"라면서 코로나19 이후 우리 앞에 닥칠 가장 큰 위험으로 '돌봄의 위기'를 꼽았다. 자본과 경쟁을 앞세운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로 인해 코로나19 속에서 돌봄이 절실한 계층과 돌봄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안적 개념으로서 '돌봄 경제'를 모색"한다고 밝혔다. '돌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근본적으로 성장주의에서 벗어나는 전환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뉴노멀'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코로나19는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었던 문제를 눈에 볼 수 있게 드러내는 리트머스지 역할을 했다. … 원래 있었는데 가려져 있던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159쪽
 
많은 사람이 코로나19로 인해 불평등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은 경제, 교육, 사회, 모든 분야에 해당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1900년대 용어인 '뉴딜'까지 소환됐다. 하지만 지금 쏟아져 나오는 각종 대책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new) 세상을 위한 사회적 약속(deal)이라고 보기 어렵다.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코로나19가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가려져 있던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고 힘주어 말한다. 노동, 인권, 환경, 소수자 등 다양한 분야에 넓고 깊게 퍼져 있는 차별과 혐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결코 새로운 '일상'을 만들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비대면' 기술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낸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돈과 경쟁에 기초한 우리 사회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코로나19가 끝나고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오더라도 수많은 누군가에게 재난은 계속될 것이다. '취약한' 계층으로 내몰린 '내가 아는 대부분 사람'들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일상'으로 다시 내몰리며 고통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섣불리 '뉴 노멀'을 이야기하기보다, 오히려 '통상/정상적'이라고 간주되었던 우리 삶의 질서와 일상에 깃들어 있던 차별과 배제를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106~107쪽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이제 일상 속에 깃들어 있는 차별과 배제에 대해 깊게 성찰할 시간이다. 그렇게 성찰의 시간이 모인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연대가 흐르는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 다른 설명 없이 숫자만 표시된 부분은 책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의 쪽수이다.
** 미류, 서보경, 고금숙, 박정훈, 최현숙, 김도현, 이길보라, 이향규, 김산하, 채효정. 2021.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창비.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 코로나19가 남기는 과제

미류, 서보경, 고금숙, 박정훈, 최현숙, 김도현, 이길보라, 이향규, 김산하, 채효정 (지은이), 창비(2021)


태그:#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코로나19, #새로운 일상,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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