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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성폭행을 시도하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74) 씨가 지난해 5월 6일 오후 56년 만에 부산지법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2021년 2월 17일 법원은 재심 기각을 결정했다.
 1964년 성폭행을 시도하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74) 씨가 지난해 5월 6일 오후 56년 만에 부산지법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2021년 2월 17일 법원은 재심 기각을 결정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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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해에는 모두가 눈을 감은 채 나이 어린 소녀를 가해자로 낙인찍어 감옥으로 보냈다. 우리나라 헌법은 남녀가 평등하고 공정하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 지금 판사님들에게 묻고 싶다."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징역형을 선고받은 최말자(75)씨는 56년 만에 용기를 내서 재심청구서를 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최씨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심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최씨측은 바로 불복 의사를 밝혔다. 여성단체도 최근 검찰이 황령산 혀 절단 사건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한 점 등을 언급하며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성폭행 저항 정당방위,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리다?
 
부산지방법원 5형사부는(권기철 부장판사)는 최씨가 청구한 재심청구를 기각했다고 18일 밝혔다. 지난해 8월, 12월 두 차례 심문을 진행한 재판부는 "청구인의 주장은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420조는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거나 수사기관의 불법성이 확인되면 재심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최씨는 여성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56년 만에 용기를 내서 재심청구서를 부산지법에 접수했다. 성폭행 시도와 강제 키스에 저항한 최씨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씨 측이 제출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원판결도 오류가 없다고 봤다. 검사의 불법체포·구금으로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했다는 최씨측의 주장 역시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에) 오늘날과 같이 성별간 평등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가치로 실제 받아들여졌다면 청구인을 감옥에 보내지도, 가해자로 낙인찍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반세기 전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고, 시대가 바뀌어 사회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청구인인 최씨는 이번 결정에 큰 실망감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순생 부산여성의전화 대표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마지막 심문에서 인용 여부를 결정해 공문을 보내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기각 결정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황령산 혀 절단 사건에서 검찰이 여성의 정당방위를 인정하면서 재심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청구인은 이번 결과에 말씀 없이 전화를 끊었는데 크게 낙담하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56년이 지나면서까지 재심을 하려 했겠느냐. 사법부의 체면 때문에 과거의 결정을 뒤집지 못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발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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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측은 항고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재심기각 판결을 송달받은 이후 일주일 이내로 즉시 항고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최씨 측 변호인단은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항고장을 접수하고 이어 항고이유서도 내겠다"고 말했다.
 
'강제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법원 100년사에도 소개된 재판이다. 18살의 나이였던 최씨는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당시 21살 노아무개씨의 혀를 깨물어 자른 혐의(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가해자로 뒤바뀐 삶을 살았지만 2017년 미투운동에 힘을 얻어 다시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부산지방법원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다.
 부산지방법원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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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폭행, #56년 만의 미투, #최말자, #황령산, #강제키스 혀 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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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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