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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에서 '광주백서'를 기록하다

1980년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어두웠다.

나는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수배돼 서울 봉천동 산동네에서 쌀과 연탄 배달일을 했었다. 정작 제대로 먹지도 못 했고, 연탄도 때지 못 해 극히 쇠약해진 상태였다. 1979년에 내가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알게 된 광주 출신 조봉훈 전 광주시의원을 따라 1980년 11월에 광주로 내려갔다. 당시 조 선배는 광주항쟁 기록을 추진하고 있었다. 전남대 앞 신안동에 방을 얻고 기록 작업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집필을 담당하게 돼 조 선배가 수집한 관련 자료들을 정독하고, 또 직접 항쟁 참가자들을 만나 증언을 청취했다.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박몽구 선배를 비롯해 고 신영일, 고 노준현, 김상집, 조혜란 등 10여 명이 스스로 목격하거나 경험한 사실을 내게 증언했다. 항쟁의 발단이 된 전남대 정문 앞 계엄군과의 충돌에 대해선 당시 정문 현장에 있었던 박몽구의 자세한 증언을 청취했고, 시민들의 무장 및 이후 중요 과정에 대한 집필에는 김상집, 전용호 등과의 증언과 토론이 큰 도움을 줬다.

나는 사실성이 결여된 것으로 여겨지는 내용은 최대한 배제하고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을 기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당시의 광주시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취재 보도한 <동아일보> 등 각 신문 기사도 정독해 참조했다.

이 무렵 나는 복막염과 장결핵을 앓는 등 거동조차 어려운 매우 쇠약한 상태였다. 극심한 통증으로 아픈 배를 움켜쥐고 하루에 몇 페이지씩 조금씩 손으로 써나갔다. 내 평생 처음으로 써보는 장문의 글이었지만,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1년 5월에 들어 집필을 완성했다. 내 나이 스물이었다.

본래 '광주백서'라는 제목이나 이름은 없었다. 훗날 이 팸플릿이 비밀리에 배포되고 사람들이 몰래 바람 새는 골방에서 읽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광주백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광주백서' 원문 중 일부.
 "광주백서" 원문 중 일부.
ⓒ 소준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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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인 '미국 문제'

그간 '광주백서'에 대해서는 몇 차례 여러 지면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오늘 이 글에서는 '광주 문제'의 중요한 핵심 문제 중 하나인 '미국 방조의 문제'에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해방 후 미군정 시기를 기점으로 '미국화'하기 시작한 우리 사회는 6.25를 거치면서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종속적 관계가 형성됐다. 이는 박정희 유신정권을 통해 더욱 심화됐다.

'미국 문제'야말로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였다. 그러나 유신정권 이래 반공 이데올로기가 압도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더구나 전두환 군사독재의 서슬 퍼런 탄압 속에서 '미국 문제'를 입 밖에 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 '미국 문제'에 대한 제기 자체가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바로 연결됐다. 동시에 미국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우호적 태도라는 높다란 벽을 쉽게 넘어설 수가 없었다.

따라서 '미국 문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기할 것인가는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이 안고 있던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였다. 추상적인 주장과 이론만을 내세워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러한 주장이 아니라 반드시 '구체적인 증거, 사건'을 사실 그대로 기술해야 했다. 오직 그러한 방법만이 가장 효과적이고도 동시에 군사정권의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의 마수를 뚫을 수 있는 무기였다.

'광주백서', 반미운동의 결정적 기폭제가 되다  

사실 광주 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은 전두환 일당의 잔인무도한 학살을 미국이 막아주기를 기대했고, 그래서 미국 항모가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에 모두 너무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사실 미국 항모는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해 파견됐던 것이고, 결국 전두환 보호에 그 목적이 있었다. 나는 '미국 방조'의 구체적인 증거를 찾고자 했고, 며칠 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1980년 당시의 신문 조각에서 아주 작고 작게 나온 기사를 발견해 '광주백서'에 기술했다.

'광주백서'에 '미국, 광주 시위사태 진압 동의'라는 소제목으로 기록된 미국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편 이날 미국무성은 성명을 내고 '모든 관계자들이 최대한도로 자제할 것을, 그리고 평화적인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대화를 가질 것을 촉구한다. 불안이 계속되고 폭력사태가 확대되면 외부세력의 위험한 오판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같은 날 미국방성은 '광주 데모를 진압하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4개 대대의 한국군을 미국 통제 하에 풀어줬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날인 23일, 호딩 카터 미국무성 대변인이 카터 행정부는 '남한에서 안보와 질서의 회복을 지원하기로 하는 한편, 정치적 자유화에 대한 압력을 늦추기로 했다'고 기자들에게 발표했다. 이리하여 미국은 이제 공공연히 전두환 정권을 지원하고 나섰으 며 이로써 광주 대학살극의 공범자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광주백서'에서 미국 방조와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를 밝힌 것은 미국에 대한 반대운동이 대중적 동의를 획득해 대중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실제 이를 토대로 오랫동안 '반미운동의 무풍지대'로 불리던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반미운동이 발화했다. 1980년대 이후 학생들의 서울 미국문화원 농성 등 격렬하게 전개됐던 반미자주운동은 '광주백서'에서 밝힌 내용을 논리적 근거로 삼고 있었다.
 
2019년 5월 8일 촬영한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유영봉안소의 모습.
 2019년 5월 8일 촬영한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유영봉안소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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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훗날 '효순미선양 범대위'로 발전되는 조직

1990년, 오랫동안 빈민현장에서 활동하던 나는 고 김근태 선배의 거듭된 권유로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서 활동하게 됐다. 전민련에서 한 여러 활동 중 '미국 문제'는 내 중요 관심 사항 중 하나였고,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일을 실행했다.

먼저 '광주 방조' 문제와 관련해 나는 서울 미 대사관을 몇 차례 방문하면서 미국의 광주 방조에 관련해 미 대사관 측과 전민련과의 공개 토론회를 갖기로 했다. 그런데 전민련 내부에서 항상 북한 입장을 옹호하던 한 후배(훗날 뉴라이트로 변신했고, 이명박 정부 때 공직에 임명됐다)가 미국에 말려든다며 결사 반대해 토론회는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문제를 여론화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두 번째 일은 의정부를 비롯해 동두천, 평택, 군산, 대구 등 전국에 산재해 있는 '미군기지 문제'에 대응하는 조직을 만들 구상을 했다. 환경오염을 비롯해 기지촌, 사격 및 비행 훈련 소음 문제 등 미군기지로 인한 각종 문제에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내가 직접 각 지역을 방문해 지역 활동가들을 만났고 이어서 '미군기지반대 전국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자료집도 내고, 몇 차례 공동회의도 가지면서 성명서도 발표했다.

훗날 내가 중국 유학을 하던 2003년, '고 효순·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전국적 이슈로 부상됐을 때 그 운동을 이끌던 범대위(미군장갑차 여중생 고심미선 신효순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가 바로 1990년에 조직됐던 '미군기지반대 전국위원회'의 후신이었다.

한국은 언제쯤 '미국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분단된 한반도에서 해방 이후 '미국 문제'는 정치군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줄곧 우리 사회의 핵심적 문제였다.

일부 보수세력이 신념처럼 성조기를 모시고 있는 현상은 그 구체적인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가속화되고 있는 미중 양국의 대립과 충돌 구도에서 '미국 문제'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더구나 지금 대일 관계조차 미국의 영향력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인들은 언제쯤 이 '미국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태그:#소준섭, #광주백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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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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