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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떡볶이.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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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학교'를 다닌 거의 마지막 세대다. 내가 5학년 때였나 6학년 때였나, 그즈음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의 간판이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이십 년도 훌쩍 더 지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국민학교'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그 시절, 그 몽글몽글한 추억을 더듬다 보면 매콤하고 달달한 냄새를 폴폴 풍기며 침샘을 자극하던 학교 앞 '떡볶이집'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앞 떡볶이집은 재밌게도 그릇의 색깔에 따라 가격이 정해졌다. 아무 무늬 없이 새하얀 플라스틱 사발에 푸짐하게 담아주던 떡볶이는 한그릇에 1000원, 초록색 바탕에 흰 무늬가 알록알록해서 친구들과 내가 '개구리 접시'라 부르던 그것에 아주머니가 인심 좋게 퍼주시던 떡볶이는 700원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떡볶이집의 꼬마 손님들은 대개 학교가 마치는 시간에 한꺼번에 들이닥치기 마련이었으므로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나름대로 좀 더 수월하게 계산할 수 있는 법을 고안하셨던 것 같다. 탁자에 놓인 그릇의 개수와 모양만 확인하면 셈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충분히 절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도 문제없었다. 종이컵에 담아주는 떡볶이, 일명 '컵볶이'는 작은 컵이 삼백 원 큰 컵이 500원이었다. 작은 컵에 담긴 300원짜리 컵볶이 하나만으로도 어린 우리들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대략 이십 년이 지나서 떡볶이가 2만 원에 육박하는 날이 오게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엄마, 떡볶이 사 먹게 500원만 줘"라는 말이 더는 일상에서 통용되지 않는 옛날 옛적 추억의 대사가 되어버리라는 것을.

떡볶이 가게 메뉴판, 내 눈을 의심했다 

떡볶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재작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뒤 맛있는 떡볶이집을 찾기 위해 쉬는 날마다 어슬렁어슬렁 동네 탐방에 나서곤 했다. 덕분에 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흩어져 있던 총 다섯 군데의 떡볶이집을 찾아냈다. 그리고 재미 삼아 마치 '골목식당'의 백종원이 된 듯한 심정으로 각각의 떡볶이를 신중하게 맛본 뒤 나만의 기준으로 별점을 매겼다.

그 다섯 집 모두 떡볶이 1인분을 2500원에 팔고 있다. 그중 두 집은 밀가루 떡을 사용하고 나머지 세 집은 쌀떡과 밀가루 떡을 반씩 섞어 쓴다. 쌀떡을 좀 더 선호하는 나는 그 세 집을 번갈아 이용하는 편이다. 맛은 적당히 달고 매운 것이 비슷비슷하다. 양은 혼자 먹기에 딱 알맞거나 떡을 서너 개 남긴 상태에서 배가 꽉 찰 정도다. 떡볶이 일 인분에 고구마나 오징어 튀김을 하나 추가하면, 넉넉잡아도 4000원이면 기분 좋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처럼 날이 추울 땐, 떡볶이를 사러 밖에 나가는 것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재택근무을 하게 되면서부터 바깥 출입이 뜸해졌던 나는 그 핑계 삼아 요즈음 부쩍 배달 앱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배달 앱 검색창에 '떡볶이'를 치면, 근방의 수십 군데에 이르는 떡볶이집 명단이 주르륵 화면에 떠오른다. 그런데 메뉴판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번번이 내 눈을 의심하게 된다. 핸드폰 화면 속 떡볶이집들은 대부분 배달 가능한 최소 가격이 1만 원 이상이다. 튀김 한두 가지만 더 추가해도 1만 원짜리 한 장 가지곤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예전엔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건 떡볶이의 배반이다 

또 배달이 되는 떡볶이집은 따로 1인분을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엽기적인 매운맛을 지향한다는 한 프렌차이즈의 떡볶이는 기본 사이즈가 한 가지인데 두 명에서 세 명 정도가 먹기 적당한 양의 떡볶이를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아주는 것이 1만4000원이다. 기본 떡볶이에 몇 가지 사이드 메뉴를 추가하면 순식간에 2만 원을 넘게 된다. 이쯤 되면 나도 주문이 망설여진다. 그런데 겉옷을 챙겨 입고 분연히 떨치고 나가기엔 바깥은 너무 춥다. 결국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손가락은 벌써 결재 버튼을 누르고 있다.

떡볶이 사 먹으라고, 엄마가 준 500원을 뿌듯하게 손에 쥐고 함박 웃던 날들이 진짜 있었나 싶게 까마득하다. 물론 시대가 변했으니,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떡볶이는 이상하게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훅 값이 올라 버린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오랜 세월 서민의 간식이라 불리던 떡볶이의 배반이 더욱 씁쓸하다.

문득 이러다가 세월이 더 흐르고 나면, 결혼기념일이라든지 첫 아이 돌잔치, 십 년 만에 장만한 집에 양가 어른 모시는 날, 이런 뜻깊은 날이면 상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올라가야 할 귀한 음식으로 갈비나 잡채 말고 배달시킨 떡볶이가 거론되는 날이 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떡볶이가 맛있는 건 사실이지만, 글쎄 이건 좀…

태그:#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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