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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가지 나물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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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힘들게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엄마, 음식 많이 안 하기로 했는데 많이 했어요?"


상차림을 보는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많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줄 수 있겠어? 앞으로 2~3년 지나면 해주고 싶어도 못 해줄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모두 잠시 조용하더니 "그럼 그땐 저희가 모셔야지요"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동네 미용실을 갔었다. 몇 명의 젊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절이 코앞인지가 명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손님 중 A는 "왜 지난해 추석에 '며늘아 이번 추석에는 오지 말고 내년에 만나자' 뭐 그런 내용의 현수막이 방송 나왔었잖아요. 그게 바로 우리 시댁 동네에서 했던 방송인데 방송이 끝나고 돌아서면서 노인네들이 애들이 진짜 안 오면 어쩌지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데요" 한다.

그 방송을 나도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언니는 안 갔어요?" "안가긴 갔지요. 우리 시어머니는 내가 가면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아요" 한다. 그 말에 내가 "어머니 연세가 몇이세요?" "80대예요" "80대면 노인이니깐 그럴 수 있어요" "그러네요. 80대이고 시골에서 계속 사셨으니깐 변하긴 힘들 것 같아요" 한다.

B는 "우리 시어머니는 젊어요. 나는 그 전날 오후 7시~8시까지 일을 하는데 계속 전화가 와요. 몇 시쯤 도착이냐? 언제 올 거냐고. 올해도  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코로나 때문에 5인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하니깐 정말 안 가고 싶어요.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가면 기진맥진 돼서 꼼짝도 못 하겠어요" 한다.

또 다른 젊은 여인은 내내 말을 듣고 있더니 "며느리는 완전히 남인데 시어머니들은 뭘 그렇게 바라는 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한다. 그 말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용해졌다.

요즘 젊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들대로 입장이 있으니.

음식이 부족해도 가족이 모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다

나도 나름대로 명절 준비를 시작했다. 그동안 가족대화방에 올렸던 명절 이야기도, 음식 이야기도 아예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며느리가 명절 3일 앞두고 전화가 왔다. "어머니 저희 명절 전날 언제쯤 갈까요?" "아무 때나 편한 시간에 와" "그럼 오후에 갈게요"하고 통화를 끝냈다. 이번에 너는 뭐 해올래? 하는 말도 묻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젊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생각을 좀 더 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음식도 각자 딸, 며느리 나누어서 사 오든지 직접 만들어 오든지 했는데, 이번에는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맡기고 싶었다. 사정이 있으면 못해와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정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이유가 무얼까?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생활이 있고, 부모는 부모 대로 각자 생활이 있어 자주 못 만나니, 그날만이라도 모두 모여 얼굴을 맞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동안의 안부와 소식을 듣는 자리. 편하고 화기애애한 그런 날이어야 하지 않을까?

음식이 부족하면 어떻고 조금 늦게 와도 상관없을 것이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시장과 마트에서 장을 봐온 식재료들로 음식을 2~3일 전부터 조금씩 준비했다. 갈비를 양념으로 재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볶고 매운탕 끓였다. 떡국을 끓일 준비도 끝냈다.

음식을 하면서 '그렇지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명절 음식을 해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앞으로 길게는 5년? 아니 2~3년? 그 이후에는 마음은 있어도 체력도 떨어지고  나이가 들면 미각도 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해줄 수 있을 때까지는 해주자. 그 대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준비하자'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깐 짜증이 나거나 힘든 줄도 몰랐다. 음식을 혼자 천천히 준비하니깐 그런대로 할만했다.

아이들이 도착했다. 아이들이 한두 가지 음식을 준비해왔다. 그러니 상차림이 푸짐하고 화려해진 것이다. 난 "상은 너희들이 차려라.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라고 말을 하고도 상차림까지 같이 하고 말았다. 설거지를 하려고 며느리가 주방으로 종종걸음을 한다. '설거지 같이하자"하니 며느리가 "괜찮아요. 얼마 없는데요. 제가 할게요" 한다.

조금은 피곤해진 난 "그럼 네가 해라"했다. 며느리의 설거지가 끝났다. "며느리 수고했다" "아니에요" 한다. 내 눈에 비친 며느리의 모습이 그 어느 명절 때보다 한층 환한 것 같았다. 이상하리만치 내 마음도 편했다.

태그:#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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