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9 07:51최종 업데이트 21.02.0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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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피어오르는 노르웨이 정부청사 수도 오슬로 인근 우토야섬에서 발생한 청소년 캠프 총기테러에서 69명, 이 사건 발생 두 시간 전쯤 발생한 오슬로의 정부청사 폭탄테러에서 8명 등 모두 77명이 사망했다. ⓒ EPA=연합뉴스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 오슬로의 정부 청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폭발로 8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이 폭발은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을 뿐입니다. 범인은 경찰이 폭발 현장을 수습하는 동안 오슬로에서 60km 떨어져 있는 섬 우퇴위아로 갔습니다. 집권당인 노동당의 청년동맹 여름캠프가 열리고 있었는데 범인은 거기에 모인 청년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도착하는데 걸린 한 시간 동안 범인은 도망 가는 청년들을 쫓아다니며 총을 쏘았고, 죽은 척하며 누워 있는 이들을 향해 확인사살까지 자행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69명이 학살당했습니다.

범인은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라는 이름의 32세 백인이었는데, 그는 무슬림이 유럽을 이슬람화 하고 있다고 믿는 '유라비아' 음모론의 신봉자였고, 집권당인 노동당이 이민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노르웨이의 이슬람화를 방치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노동당 청년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테러를 저지른 것입니다. 브레이비크는 21년 형(노르웨이 최고형)을 선고받고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이민 이슬람 여성 위로하는 뉴질랜드 총리 이틀전 모스크(이슬람 사원) 총기테러 사건이 발생한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헌화를 위해 17일 수도 웰링턴 소재 킬비르니 모스크를 방문, 한 이슬람 여성을 안고 위로하고 있다. ⓒ 웰링턴 AP/TVNZ=연합뉴스

 
그로부터 8년 뒤인 2019년 3월 15일, 이번에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에서 비슷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28세 청년인 브렌튼 태런트가 한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 중이던 신도들을 대상으로 총기난사를 한 후 인근의 다른 사원으로 가서 또 다시 총기를 난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모두 51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범인은 이 과정을 카메라가 부착된 헬멧을 쓴 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해서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극우 반이슬람주의자인 범인은 노르웨이 테러의 범인인 브레이비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단일 범죄가 된 이 사건의 범인에게 뉴질랜드 법원은 가석방없는 종신형을 선고했습니다. 브레이비크도 그렇고 태런트도 그렇고 자신들이 가진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극단적인 테러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같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6세 학생이 뉴질랜드 테러가 발생한 날에 맞춰 무슬림에 대한 테러를 계획하다 적발됐다는 싱가포르 국가보안국의 발표 ⓒ 싱가포르 국가보안국 (ISD)

 
그로부터 2년 후인 2021년 3월, 하마터면 앞서 소개한 사건을 모방한 범죄가 싱가포르에서 벌어질 뻔했습니다. 싱가포르 국가보안국(이하 ISD)은 지난 1월 27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기념일에 무슬림 공격하려고 한 싱가포르 청년 체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ISD에 따르면 태런트의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싱가포르의 16세 청년이 뉴질랜드 테러 발생 2주년이 되는 3월 15일에 맞춰 동일한 수법으로 테러를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인도계 싱가포르인이자 개신교도인 이 청년은 태런트의 테러 동영상을 시청하고 그가 작성한 선언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국가(ISIS)의 홍보 비디오를 본 후 ISIS의 폭력과 잔혹함이 이슬람을 대표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청년은 2020년 10월, 프랑스 니스의 한 성당에서 벌어진 이슬람주의자에 의한 민간인 참수 사건을 접한 후 이슬람으로부터 개신교도들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슬림의 출산율이 높아서 싱가포르가 결국 이슬람의 통치에 굴복할 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태런트의 테러와 같은 날인 2021년 3월 15일에 테러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 대상도 태런트 사건과 동일하게 집 근처 두 개의 이슬람 사원으로 정했습니다. 테러 수법도 총기를 이용하려고 시도를 했으나 싱가포르에서는 총기를 구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포기한 후 폭탄 제조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폭탄 제조 역시 16세 청년에게는 쉽지가 않아서 결국 칼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범행을 위해 구입한 전투용 조끼 (좌)와 구매를 하려고 했던 칼 (우) ⓒ 싱가포르 국가보안국 (ISD)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용 조끼를 구입했고, 중고물품 거래사이트인 캐로셀(Carousell)에서 칼을 구매하기 위해 구매목록에 올려 두었습니다. 칼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유튜브에서 관련 비디오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태런트가 했던 것처럼 테러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할 계획도 세웠습니다.

테러를 저지르면서 배포할 두 개의 문건도 미리 작성했습니다. 첫 번째 문건은 민간인 참수 테러를 당한 프랑스 국민에게 복수와 전쟁 등의 "옳은 일을 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번째 문건은 이슬람 세력을 대할 때는 절대 평화적인 방법은 안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태런트가 저지른 뉴질랜드 테러가 "무슬림에 대한 정당한 살인"이며, 태런트를 두고 '성인"이라 부르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테러 관련 국가보안법(ISA) 위반 혐의로 구금된 사람 중 최연소자인 청년은 계획만 세웠을 뿐 실제로 테러를 저지른 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ISD는 청년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및 종교 관련 재활 프로그램을 실시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 전체가 발칵 뒤집어진 건 당연한 일입니다. 싱가포르는 인종적으로는 중국계 74%, 말레이계 13%, 인도계 9%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불교 33%, 기독교 18%, 이슬람교 15%, 도교 11%, 힌두교 5% 정도로 민족이나 종교 관련한 화합이 체제 안정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나라입니다.
  

싱가포르 주택가의 평범한 이슬람 사원의 모습 ⓒ 이봉렬

 
사건 발표 다음 날인 1월 28일, 싱가포르 교회 협의회(NCCS)와 싱가포르 이슬람 종교위원회 (MUIS)의 최고 지도자들이 테러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유소프 이삭 사원에서 모임을 갖고 이번 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자리에 정부 측에서도 내무부 장관과 국무부 장관이 참석하는 등 관련 기관 모두가 화합을 위한 향후 대책에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 기독교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필요하다는 걸 보여 준다며 향후 보다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테러가 뉴질랜드의 테러에 영감을 주고, 그 테러가 또 싱가포르의 16세 어린 청년에게까지 영감을 줘서 또 다른 테러를 준비하게 만들었습니다. 타 종교에 대한 근거 없는 불안과 맹목적인 증오가 종교 내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 혹은 조장되는 한,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이 같은 테러는 어느 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이번 사건은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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