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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감동OO' 문 닫은 거 알아?"

아들 녀석이 호들갑스럽게 뛰어들어와 하는 말이었다. '감동OO'은 우리 집에서 500m 거리에 있는, 동네 국숫집 상호명이다.

"정말? 아이고,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되었나 보다. 어쩐다니!"

외출을 못 하니 바깥 음식은 배달앱을 통해서만 시켜 먹었다. 그제야 나는 국숫집이 문을 닫은 것이 내 책임이라도 되는 양 미안한 생각이 몰려들었다.

이사 와서 3년... 정든 동네 밥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칼국수에는 바지락조개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곳은 동죽이란 조개를 썼다.
 칼국수에는 바지락조개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곳은 동죽이란 조개를 썼다.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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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숫집은 배달앱에 상호를 올려놓지 않은 음식점으로, 머리가 희끗하신 노부부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아마도 배달앱에 상호를 등록할 생각을 못하셨거나, 동네에서 운영하는 작은 음식점인데 배달에 따른 별도의 비용 쓰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전에는 배달앱이나 배달 사원을 쓰지 않더라도 크게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음식점으로부터 200m도 안되는 지점에 중형 교회가 있어서 주말이면 교회 주차장에 들어가지 못한 차들로 주변 일대가 항상 북새통을 이뤘기 때문이다. 주말 오전 예배를 본 신도들은 그 국숫집에서 가볍게 국수 한 그릇을 먹거나, 다른 식사 메뉴를 시켜 먹었을 테다.

게다가 국숫집 일대가 '먹자골 골목'으로 나름 이름이 알려진 곳이라, 금요일 저녁 시간부터 그 일대에 차를 대려면 몇 바퀴를 돌아도 허탕 치기 일쑤였다. 주점과 음식점을 결합한 형태의 음식점들 사이에서 술 손님, 흡연 손님 없는 유일한 청정(?) 지대 같았던 음식점이 그 국숫집이었다.

3년 전 이 동네로 이사 온 날, 그날은 1월 초순 한겨울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이었다. 이삿짐센터에서 다 처리해 준다고는 하지만 막상 이사 한 번 해보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리모델링까지 마쳐 새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설레던 마음도 그날만은 빛을 잃을 만큼 정신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스럽게 짐을 옮기기 시작해서 점심 때가 되니 대강 큰 짐은 다 옮기게 되었다. 점심 먹고 두어 시간 정리하면 얼추 이삿짐 옮기기는 마무리될 성싶었다. 업체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우리 식구들은 어디서 점심을 해결해야 할까, 경황 없는 날 가볍게 먹을 만한 주변 식당을 찾다 보니 발견하게 된 곳이 감동OO이었다.

간단히 먹기로 하고 들어선 국숫집에서 그날 우리가 시켜 먹었던 음식은 '동죽조개 칼국수와 떡갈비 세트', '주꾸미 덮밥', '해물전'. 그 이후 우리 식구들이 가끔 함께 가서 먹을 때마다 시켜먹는 고정 메뉴가 되었다.

평소에 칼국수에는 바지락조개만 쓰는 줄 알았는데, 해감 안 된 바지락조개를 씹을 때와는 다른, 깔끔한 맛을 내는 동죽조개라는 어패류 식재료를 알게 된 것도 반가웠다.

국수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밥을 먹고 싶어 하는 나, 고기가 빠지면 섭섭한 남편의 입맛까지 고루 만족시켜 주던 이곳은 가족이 함께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말로만 '함께 살기'를 말했나 봐요
 
소상공인 10명 중 8명 이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여론조사기관 이노베이션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13일~11월 3일 소상공인 1천 명(일반 소상공인 700명·폐업 소상공인 300명)을 대상으로 '소상공인 사업 현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이날 서울 을지로 지하상가 내 한 음식점에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소상공인 10명 중 8명 이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여론조사기관 이노베이션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13일~11월 3일 소상공인 1천 명(일반 소상공인 700명·폐업 소상공인 300명)을 대상으로 "소상공인 사업 현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이날 서울 을지로 지하상가 내 한 음식점에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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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학교에서 급식이 없던 날, 내가 출근해서 집에서 챙겨줄 수 없을 때는 미리 부탁해 이곳에서 점심을 챙겨 먹일 수 있어서 감사한 곳이었다. 현금, 카드 없이도 외상으로 아이 밥을 먹일 수 있던 곳.

패류독소(유독성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조개류의 체내 축적된 독) 위험 철에는 동죽조개를 식재료로 사용할 수 없어 메뉴에서 동죽조개 칼국수를 뺐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 아들 녀석이 너무 먹고 싶어 하자 조개 대신 계란과 김을 부수어 끓여내 주시던, 친정 엄마 마음 같던 사장님이 계시던 곳.

지나보니 우리 식구가 받은 정은 많았는데, 돈을 내고 먹는다는 오만 때문이었는지 우리 쪽에서 돌려준 마음이 없었다. 배달앱에서 두 번 시켜 먹을 때 한 번이라도 그곳에 들러 가져다 먹었다면, 그곳 사장님이 조금은 버틸 수 있었을까. 아니, 배달앱에 식당을 왜 올리지 않으시냐고 한 번이라도 여쭤볼 걸 그랬나.

동네에서 소규모로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이분들만은 아닐텐데.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딸아이 단골 안경집 사장님도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안경 망가뜨리는 아이들이 없어서 장사하기 힘들다 하셨는데. 주변을 둘러보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지, 그렇게 하기 위해 난 무엇을 했단 말인가.

국숫집이 자리 비운 지 2주가 다 되어 간다. 그 자리에 다른 음식점이 아직 들어서지 않는 것을 보니,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이 엄혹한 겨울이 얼마나 더 추울지 감히 섣부른 짐작도 못하겠다. 코로나 백신 접종과 함께 따뜻한 봄바람이 불 때쯤이면 그분들의 길었던 겨울이 끝날 수 있을는지.

이 힘겨운 시기가 끝나면 그 시절, 우리 가족이 사랑했던 '감동OO' 같은 동네 국숫집이 다시 들어설 수 있을까. 감동스러운 떡갈비 한 조각이 함께 나오는 동죽조개 칼국수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자영업자, #동네음식점, #동죽조개국수, #먹자골목,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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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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