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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교육부가 발표한 고려대와 연세대 종합감사 결과를 꼼꼼히 살펴봤더니 그 안은 강자가 판치는 세상이었다. 자신의 자녀에게 A+ 학점을 줘도 됐고, 가족을 연구원으로 등록시켜 연구비를 받아가도 됐다. 유흥주점이나 골프장에서 법인카드를 마구 써도, 참석하지도 않은 해외 세미나 특근 수당을 챙겨가도 됐다. 모럴 해저드, 그 한편에는 인건비가 60만원 정도 밖에 안 되는 연구원들이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해가 바뀐 지금, 그 후 상황을 확인해봤다.[편집자말]
코로나19 확산으로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발표되기 하루 전,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 in에 한 질문이 올라왔다.

"5인 이상 집합 금지의 경우, 9인의 대학원 연구실도 포함되나요? 회사라고 보기도, 학교로 보기도 애매해서요..." (2020년 12월 21일, 네이버 지식 in)

자조 섞인 답글이 따라붙었다. 

"노예는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전직 대학원생-" (Peter***)
"알아본 결과 대학원생은 사람으로 취급 안 하고 교수님의 도구로 취급한다고 합니다." (ID 비공개)
"대학원생은 도구라서 5인 집합 금지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덕분에 코로나에도 안 걸립니다. 병 걸리는 도구가 있나요?" (ID 비공개)

교수 갑질에 노출된 대학원생의 열악한 근무·학습 환경을 반영한 블랙 코미디다. 대학원생의 노동이 제대로 된 근로로 인정받지 못하며 정당히 받아야 할 임금마저 전액 받지 못하는 일이 현실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대학원생 월급, '연구실 공동비용'으로 유용 

작년 교육부는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개교 이래 단 한 번도 종합감사를 받은 적이 없었던 학교들이었다. 그 학교들이 연구비를 어떻게 쓰는지 그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연구에 참여한 대학원생 인건비 일부는 '연구실 공동비용' 명목으로 공동관리됐다. 연구 책임자인 교수들은 배우자·자녀 등을 연구원으로 등록해 연구비를 받게 했다. 모두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다.

교육부는 2020년 7월 연세대 감사결과를 공개하며 "연세대학교 A는 2014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한국연구재단 등이 지원하는 16개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참여한 연구원 15명이 지급받은 인건비 중 석사과정은 월 평균 60만원, 박사과정은 월 평균 80만원 정도만 실제 연구원들이 사용토록 하고 나머지는 연구실 공동비용으로 관리하도록 지시하였다"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검찰에 이 사안을 고발했다. 
 
교육부의 연세대 종합감사 결과, 연세대 CA 교수는 대학원생들의 인건비 가운데 일부를 '연구실 공동비용'으로 관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의 연세대 종합감사 결과, 연세대 CA 교수는 대학원생들의 인건비 가운데 일부를 "연구실 공동비용"으로 관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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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인 A 교수는 연구원들이 지급받은 인건비 4억3674만원 가운데 1억1875만4000원을 '연구실 공동비용'으로 관리하도록 선임연구원에게 지시했다. 인건비의 27.2%가 '연구실 공동비용'으로 빠져나갔다.

구체적으로, 2014년 9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총 7개의 연구과제에 참여한 석사과정 대학원생 B씨가 자신 앞으로 책정된 인건비 2468만5000원 가운데 실제로 받아간 돈은 1108만5000원이었다. 나머지 1360만원은 '연구실 공동비용' 명목으로 사용됐다. 받아간 돈보다 연구실 공동비용 명목으로 전용된 돈이 더 많았던 것이다. 

B씨처럼 자신의 인건비 일부를 '공동관리 당한' 학생연구원은 15명이나 된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연구실 컴퓨터와 책상을 샀고, 프린터 토너와 A4 용지를 샀다. 연구실 홈페이지 관리비로 썼고, 공간 사용료를 냈다. 실험용 장갑과 비커를 샀으며 원심분리기 튜브를 샀고 실험실 시약을 구매했다. 

또한 A교수는 이른바 연구실 공동비용 일부를 현금으로 가져가 임의로 사용하기도 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A교수는 500만원을 현금으로 가져가 290만원은 연구원 4명에게 인센티브로, 나머지 210만원을 등록금 지원 명목으로 사용했다. 210만원을 받은 학생들은 연구원이 아니었던 것으로 교육부는 파악했다.

대통령령 제31251호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은 학생연구원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는 연구책임자가 공동 관리하여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연세대학교 연구비 관리 규정 시행 세칙 제 9조에도 인건비와 학생 인건비는 매월 연구원 명의의 개인 통장으로 지급하며, 연구원에게 지급된 인건비를 회수하여 공동관리할 수 없다고 돼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학생연구원들의 개인 정보 관리였던 걸로 보인다. 교육부는 "A교수가 학생연구원으로 하여금 인건비 중 일부를 사용토록 하고 나머지 인건비는 지급받은 계좌에 남겨놓도록 하는 방법으로 공동관리했다"면서 "선임연구원은 학생연구원 계좌 ID, 비번을 본인에게 알려주도록 하여 매월 연구원 계좌 입출금 내역과 잔액 등을 확인하면서 A에게 보고했다"고 지적했다. 학생연구원들의 월급통장이 비밀번호가 다 노출된 채 '공용 통장'처럼 쓰인 것이다. 

교수 '특수관계자'가 가져간 인건비... 연세대 6억6500만원, 고려대 1억6000만원

연구책임자인 교수들이 아들과 배우자·동생 등을 연구원으로 참여시켜 인건비를 받게 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그렇게 받은 인건비 규모만 연세대 6억6520여만 원, 고려대 1억5900여만 원에 달한다. 

교육부 감사 결과에 따르면, 연세대 B 교수는 대학생이던 자녀를 연구원에 등록해 240만원의 인건비를 한 번에 받아가게 했다. 그 자녀가 석사과정을 밟자 또다시 연구원으로 참여시켜 세 번에 나눠 630만원을 인건비로 받게 했다. 또 다른 교수는 대학생 아들을 연구원에 앉혔고, 매달 마지막 주에 50만원씩 지급받게 했다. 연구가 종료되는 시점에는 한꺼번에 200만원이 지급돼 총 500만원을 인건비로 받았다.

교육부 소관 이공분야 연구 개발사업 처리규정 제 11조 1항 및 연세대학교 윤리기본규정 제 11조에 따르면, 주관연구기관의 장은 자신이 수행하는 직무가 본인·배우자·직계존속 비속 및 4촌 이내의 친족 등에 해당되는 자의 이해와 관련되는 경우 해당 업무에 대한 참여 및 의사결정을 회피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회피'는 없었다. 교육부는 연세대 감사에서 '직무 미회피 특수관계자 연구과제 참여'를 지적하며 "2016년 3월부터 2019년 7월 감사일까지 26명이 본인의 연구과제에 자녀 및 배우자 등 특수관계자를 참여시키고 인건비 합계 6억6519만3000원을 지급받게 하는 등 직무회피를 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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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9월 고려대 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한 교육부는 '연구원 이해관계 신고 제도 미비'를 지적하며 "2016년 4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외부로부터 수주한 연구과제에서 교원 13명이 자신이 책임연구원인 과제에 자신의 배우자를 연구원으로 참여시키고 인건비 등 합계 1억5890만원을 지급하고 있었음에도 사전신고 제도 등 이해관계를 사전에 밝히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고려대학교 연구윤리규정 제 43조 및 제 47조 2항에 따르면 연구자는 연구와 관련한 모든 이해관계를 사전에 밝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발생할 수 있는 상충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돼있다. 그럼에도 고려대는 별다른 '연구원 이해관계 신고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고, 이 같은 사항이 감사 결과 적발된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김태현 부지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학원생 연구비 유용'에 대해 "대학원생은 연구를 수행하는 동시에 교수의 지시 관계에서 '노동'을 수행하는데, 학생이라는 이유로 일한 대가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더 악질적인 교수는 '연구실 공동비용'으로 대학원생 인건비를 가져가 개인 비품을 사는 등 유용한 경우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김 부지부장은 "자녀와 배우자 등 특정 인물을 연구 프로젝트에 등록시키는 것도 '교수 권한'이라 제한이 없는 상황"이라며 "두 사안 모두 대학 사회 내에서 교수 권한이 너무 막강하고 이를 제대로 제재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 본질"이라고 짚었다. 

그는 "인건비 편취가 위중한 범죄라는 사실을 교수들이 인지하는 게 우선이다, 또한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연세대에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된 '대학원생 연구비 유용'과 '직무 미회피 특수관계자 연구과제 참여'와 관련해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 여부, 미지급 인건비 지급 여부,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를 물었으나 "진행 중인 사항이라 답변하기 곤란하다"라고만 밝혔다. 고려대에도 '연구원 이해관계 신고 제도 미비' 관련 후속 조치를 물었지만 "감사 결과 처분통보에 대해서는 현재 학칙과 규정에 따라 절차가 진행 중이므로 자세한 사항은 공개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태그:#고려대, #연세대, #종합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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