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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멜라스라는 부유하고 안정된 도시가 있다. 주민들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이들에게 행복의 근원을 묻는다면, 이들의 웃음도 곧 사라질 것이다. 오멜라스의 행복에는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오멜라스의 행복의 비밀은 어느 건물 지하에 감금된 아이다. 이 아이는 학대받으면서 방치되고 있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저 아이를 구하면 도시의 행복이 무너진다고 믿는다. 그것을 좋은 삶에 대한 계약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은 이를 합리화하거나 내면의 갈등을 겪다 오멜라스를 떠나버린다. 

하지만, 결코 그 아이는 구원받지 못한다. 오멜라스 주민들은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이는 1973년 어슐러 K. 르 귄이 발표한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내용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 희생이 은폐되었거나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무시되고 있는 것을 오멜라스라는 극단적인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쿠팡 "핫팩 지급했다"
 
수도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2020년 12월 9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신선물류센터 내 하역장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이 센터는 전날 직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폐쇄됐다.
 수도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2020년 12월 9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신선물류센터 내 하역장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이 센터는 전날 직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폐쇄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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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오멜라스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필수 노동자'로 불리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 말이다. 보건, 의료, 택배, 미화 노동자 등을 필수 노동자라고 한다. 한국 사회가 코로나19라는 재난에 직면했지만,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크다.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이들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오멜라스의 학대받는 아이처럼 많은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택배 업계의 대표적 노동 현장인 물류창고를 보자. 

최근 쿠팡의 한 물류창고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사망했다. 노동자 최아무개씨의 사인은 심장 쇼크사였다. 그녀가 일한 현장은 난방시설은 찾아볼 수도 없고, 지급받은 핫팩도 하나뿐이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공운수노조와 쿠방발 코로나19 피해자지원대책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5월 이래 사망한 쿠팡 물류창고의 노동자는 5명이다. (관련 기사 : "새벽 5시, 쓰러진 채로 발견" 쿠팡 야간노동자 사망 http://omn.kr/1rrm4)

쿠팡 측은 모든 직원에게 핫팩을 지급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며칠 뒤면 흐지부지 된다" 

실제로 쿠팡 물류창고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쿠팡 측에서는 이전부터 핫팩을 지급해 왔다. 그러나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미처 쓰지 못한 핫팩을 내일 다시 쓰려고 해도 회사 측에서 수거해갔다. 어느 날은 창고 전체에 있는 핫팩이 다 떨어져 핫팩을 받지 못한 날도 있었다. 쿠팡 물류창고에서는 이런 일이 흔했다.

쿠팡이라는 회사가 불만을 아주 듣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불만사항을 익명으로 접수했고, 덕분에 끊임없이 무언가 개선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쿠팡 측에서 내려오는 대책은 시행되어도 별 효과가 없었다. 몇 명의 관리자가 수백명의 노동자의 안전, 편의 모두 살펴야 했는데 관리자 수가 적다 보니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감독도 되지 못했다.

간혹 위에서 점검이라는 것을 나오기도 했다. 점검자들은 긴 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들며 무언가 열심히 체크했는데, 사실은 보여주기식으로 그날만 안전 사항을 잘 지키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의 대책이란 유명무실화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책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문도 현장에서 계속 나왔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확산 때 쿠팡 측은 의무적으로 창고에서 거리두기를 시켰다. 이는 식사 때는 잘 지켜졌지만, 물건을 날라야 하는 작업 현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19 방역 대책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코로나19가 확산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상한 방역 대책이었다. 쿠팡 노동자들은 이런 말뿐인 대책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했다.

창고에서 노동자에게 지급되어야 할 장갑이나 핫팩이 부족한 날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차라리 장갑이 없었다면, 누가 버린 거라도 주워서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이러니 내가 쿠팡을 그만둘 때쯤에는 무언가 개선한다고 하면 더 믿지 않았다. 모두의 반응도 같았다. "며칠이면 흐지부지되겠지." 실제로 그랬다.

한국 사회가 오멜라스와 달라야 하는 점
 
수도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2020년 12월 9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신선물류센터 내 하역장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수도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2020년 12월 9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신선물류센터 내 하역장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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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멜라스처럼 한국 사회도 이들의 희생 속에 다수의 행복을 유지하고 있다. 조금 불쌍하다 싶으면 약간의 빵이라도 던져주는 것이 약간의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차이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상황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계속 과로하거나 다치거나 죽어가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 한국에서는 '덕분에 챌린지'라는 것이 유행했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료진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일종의 사회적 응원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고맙다고 말한 이후에 무엇이 남았는가 살펴보자. 

여전히 힘든 노동과 열악한 대우만이 남는다. 이를 개선해달라고 외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허공에만 울려 퍼질 뿐이다. 오히려 필수 노동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다시 이번에 사망한 쿠팡 노동자 최아무개씨를 떠올려보자. 그녀는 본래 사회복지사였다. 불안정한 노동과 사회안전망 속에서 최아무개씨는 돈이 필요했다. 그 결과 쿠팡이 선택됐다. 한때 그에게 쿠팡에서의 노동은 한 줄기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해야 했던 최씨의 마지막 소식은 그녀의 사망이었다.

다른 필수 노동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악화한 고용시장에서 어쩔 수 없이 쿠팡 행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을 경험한다.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조치가 이루어지지만, 곧 흐지부지된다.  

이제 더는 이래서는 안 된다. 선심성 감사 챌린지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처도, 있으나 마나 한 대책도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학대당한 아이를 구출하면 자신들의 행복이 깨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고된 작업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의 처우가 좋아진다고 해서 우리의 행복이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단순히 감사하다는 말을 넘어, 죽이지 말라고, 더 나은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외쳐야 한다. 그리고 사회 각계 계층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오멜라스와 다른 사회가 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태그:#쿠팡,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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