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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된 국내 맥주 펍 링고.
▲ 서울대 링고 펍 22년 된 국내 맥주 펍 링고.
ⓒ 윤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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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새롭게 바뀐 주세법과 그 영향력에 대해 모두가 주목하던 한 해였다.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들은 50년 만에 바뀌는 종량세가 시장 활성화 및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 기대했다. 뿐만 아니라 주류 스마트 오더, 음식을 동반한 주류 배달 합법화, 주류 OEM 등은 시장 발전을 위한 기회로 여겨졌다. 하지만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맥주 소비 시장을 강타했고 시장 참여자들은 한 해 내내 성장이 아닌 생존을 강요받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정책은 사람들의 대외 활동을 극단적으로 줄여 유흥 시장의 맥주 소비를 감소시켰다. 특히 서울 수도권 펍이나 맥줏집이 주 매출처였던 생맥주 공급 업체는 유례없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가정용 맥주 소비는 폭증하여 마트와 편의점에 납품하고 있는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나마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비대면 문화가 만든 가정용 맥주 시장의 성장과 유흥용 시장의 침체, 그리고  그로 인한 유통 채널의 협상력 증가는 작년 한 해 코로나가 트리거가 되어 촉발시킨 현상이다.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올해 맥주 시장은 팬데믹으로 인한 불확실한 소비 시장의 연속이라는 복잡한 방정식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종량세가 가져 올 시장 양극화의 가능성

술 산업은 수 백년 동안 제도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왔다. 작년 맥주 주세법의 개정은 시장의 가시적인 성장을 바라볼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였다. 

2019년까지 맥주 세금은 종가세였다. 맥주 제조 원가에 72%의 정률이 붙는 방식으로, 제조 단가가 높으면 유통 및 판매 단가도 높아지는 구조였다. 같은 발효주인 와인이 기타 주류로 분류되어 30% 정도의 세금이 붙는 반면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맥주에는 소주나 위스키 같은 증류주와 동일한 세금이 부과되어 오랫동안 형평성 문제가 대두됐다. 특히 낮은 인보이스가로 수입 된 저가 맥주의 등장은 지난 몇 년 간 국내 제조 업체와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을 야기했다.

종가세가 시장 전반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자 국세청은 드디어 2020년 생산량에 일정한 세금을 붙이는 종량세를 도입했다. 맥주의 경우 제조 단가와 상관없이 리터 당 약 830원 정도의 정액을 부과했다.

종량세는 종가세에 비해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었다. 재료비가 높아져도 세금이 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맥주 출시가 가능해졌고 마케팅 비용이 제조 단가에 산입되지 않아 공격적인 마케팅도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또한 규모의 경제에 따른 생산비 부담에서 벗어 났으며 장비 감가 상각도 제조 단가에서 제외시킬 수 있어 긍정적인 투자 유치 환경을 조성했다. 고급 인력 확보와 서류작업의 단순화도 보이지 않는 혜택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우려되는 면도 있다. 시장 진입 장벽 역할을 했던 종가세의 철폐는 시장 참여자의 증가와 이에 따른 경쟁의 심화를 초래했다. 자본력이 약한 업체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본격적인 자본 경쟁 시장이 열린 것이다.

더구나 종량세로 인한 맥주 판매 가격의 하락은 시장 확장성에 대한 기대와 달리 수익성 약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가격 탄력적인 상품이 아닌 대중 맥주의 경우 자본력이 높은 쪽으로 과실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4캔 만원' 프레임이 강력하고 다양한 맥주를 소비하는 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한국 시장에서는 규모의 경제와 대규모 마케팅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에 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약화된 유흥 시장, 반전 모멘텀이 있을까
 
종량세는 모든 맥주 업체의 성장에 기여할까?
▲ 안동 브루어리 종량세는 모든 맥주 업체의 성장에 기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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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가정용 맥주 매출이 유흥용 맥주를 역전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맥주 시장은 마트와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가정용과 음식점과 주점에서 마실 수 있는 유흥용 시장으로 나뉜다. 그동안 맥주 시장은 유흥용과 가정용이 6:4 정도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1인 가족 증가와 회식의 감소로 인해 가정용 맥주 매출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코로나로 인한 홈술과 혼술 문화는 이 시장을 단숨에 끌어 올려 4:6 정도로 역전시켰다.

먼저 종량세가 가정용 맥주 시장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종량세로 바뀐 후 국내 맥주 가격 하락과 '4캔 만원' 행사 실시에 대한 압박이 심해졌다. 대형 맥주뿐만 아니라 여건이 갖춰진 수제 맥주 업체들부터 맥주 4캔 만원 시장에 가세하기 시작했고 편의점 채널이 이 흐름을 주도했다. 마트에서만 시작되던 4캔 만원 프레임이 편의점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수제 맥주는 대중 시장으로 전이되었다. 이 과정에서 마트와 편의점은 가정용 맥주 판매 채널의 쌍두 마차로 굳어졌다.

반면 코로나 팬데믹은 유흥용 맥주 시장의 하락을 가속화시켰다. 회식과 모임이 사라지고 영업 시간에 제한이 걸리며 많은 주점들이 폐업했고 유흥용 채널에서만 거래가 가능한 생맥주 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이는 유흥용 맥주 채널에 무게를 두고 있던 업체에는 큰 충격이었다. 캔 맥주 라인을 갖추지 못한 작은 업체들, 특히 생맥주 중심으로 영업 라인을 구축했던 소규모 국내 수제 맥주 양조장들은 판로가 사라졌다. 작은 업체들은 이런 급격한 시장 충격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주류도매사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유흥용 채널에 주류를 공급하는 도매사들은 소비 둔화로 현금 흐름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수제 맥주에 관심을 갖던 도매상들은 그나마 꾸준한 매출을 보이는 대기업 맥주 판매와 소주와 와인 채널에 영업을 집중했다.

하지만 캔입 라인을 구축하고 있던 업체들은 편의점과 마트의 4캔 만원 수제 맥주 출시에 대응할 수 있었다. 웹툰의 캐릭터나 레트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 접근성을 높인 맥주들은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수제 맥주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대기업 맥주들도 유흥 시장의 부진을 가정용 시장에서 만회하기 위해 움직였다. 기존의 맥주잔 패키지뿐만 아니라 캠핑용품, 가방 등 굿즈를 결합한 상품을 선보였다.  

2021년에도 이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이 소강되면 유흥용 시장이 어느 정도 활성화 되겠지만 예전만큼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음식점과 프랜차이즈들에서 판매되는 카스나 테라 같은 대형 맥주들이 유흥용 시장을 어느 정도 회복시킬 가능성이 있으나 주점이나 펍을 재창업하는 자영업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채널에 공급할 수 있는 대형 맥주 회사나 자본력이 있는 수입 맥주, 국내 수제 맥주 회사들은 유흥용과 가정용 맥주 간 매출 균형을 맞추겠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들은 매출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주류도매사의 경우 일반음식점 시장이 회복되면서 나아지겠지만 매출이 떨어지는 수제 맥주에 대한 포션은 상대적으로 줄일 가능성이 크다.

심화되는 유통 채널의 독점력

혼술과 홈술, 코로나 팬데맥으로 마트와 편의점 맥주 매출이 증가하면서 채널 독점력이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5년 간 맥주 공급은 증가했으나 새로운 판매 채널과 소비 문화 확대가 정체되어 마트와 편의점으로 협상력의 추가 넘어오던 상황이었다.

2021년은 대형 유통사의 협상력이 더욱 강해짐에 따라 이들의 요구를 맞추지 못하는 업체들은 판로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맥주는 온라인 채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유통 채널 협상력을 분산시키기 어렵다. 4캔 만원 가격 프레임, 광고비 집행, 굿즈 패키지와 같은 유통사의 니즈를 맞출 수 없는 공급사는 가정용 채널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종량세로 인해 편의점 채널에 새롭게 진입한 국내 수제 맥주사들 또한 마케팅 비용에 대한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공급사들 간의 경쟁이 심해짐에 따라 실적과 공급가에 따라 입점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채널 독점력은 중장기적으로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맥주의 다양성이 떨어지게 된다. 유통사의 입맛에 맞는 맥주들로 편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격이 저렴하고 진열과 보관 용이성이 높은 500미리 캔 맥주가 진열대를 채울 것이며 그 중 대중 맥주인 라거가 더욱 선택을 받을 것이다.

국내 수제 맥주의 경우, 유통사의 마케팅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3~4개 업체들 간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대기업 수제 맥주들과 동일한 공간에서 만나게 될 것이며, 차별적인 가치를 어필해야 만 진열대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이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바로가기 :
대기업 진출한 수제맥주 시장, 재정의 필요한 '수제'의 가치 http://omn.kr/1rsr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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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맥주, #맥주시장, #종량세, #주류스마트오더, #시장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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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에서 작은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며 맥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맥주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사)한국맥주문화협회를 만들어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beerg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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