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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식 박사가 펴낸 <내가 사랑한 진주> 표지.
 최임식 박사가 펴낸 <내가 사랑한 진주> 표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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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역사, 문화예술, 교육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자랑거리가 많다. 경남 진주가 우리나라 여행의 시작과 끝이라 말한 시인도 있었다. 진주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그 흔적을 찾아 정리한 책이 나왔다.

진주혁신도시에 있는 한국토지주택(LH)공사 지역상생협력단장을 지낸 최임식(58) 박사가 펴낸 <내가 사랑한 진주>(도서출판 스피드)다. 2017년부터 3년간 진주에서 지낸 그는 그야말로 발품을 팔아 곳곳의 역사 흔적을 찾고 그 의미를 짚었다.

'진주의 진주(眞珠)'를 30개 핵심주제로 잡아 쉽고 재미있게 펼쳐 놓았고, 특히 손목인, 이재호, 남인수의 친일에 대해서도 냉정한 시각으로 접근해 놓았다.

책에는 논개, 진주대첩, 진주성, 촉석루, 남명 선생, 진주 사직단, 지리산, 차 문화, 형평운동이 재미나게 소개되어 있다. 또 청담 스님과 내고 박생광, 춘당 김수악, 명창 이선유, 아천 최재호, 손목인, 이재호, 이봉조, 정민섭, 남인수 이야기도 있다.

논개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최 박사는 '함양 논개 묘'에 대해 "그야말로 확인할 수 없는 단순한 주장"이라며 리명길 박사와 김수업 교수가 논문과 현장 방문에서 '함양군의 주장을 배척했다'고 소개해 놓았다.

또 최 박사는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려 한때 의기사에 봉안되어 있다가 폐출된 '미인도 논개 복사본', 표준영정 제작(윤여환) 관련 이야기도 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허구에 찬 '논개 장사'는 그만하고 논개의 충절을 오늘날 어떻게 되살리고 실천할 수 있는지? 우리는 과연 논개영정 앞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써 나가고 있는지? 절절하게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론유린을 결정적으로 막아낸 진주대첩"이란 글에서 최 박사는 "진주대첩을 기념하고 공부하는 사업들은 여전히 목마르다"며 "진주대첩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고 오늘에 실천할 수 있는 사업을 많이 전개해야 한다"고 했다.

최 박사는 진주성을 '순결한 역사의 현장', 촉석루를 '영원한 남강의 숨결과 함께 한 민족의 공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보물'인 촉석루를 '국보'로 해야 한다고 했다.

진주 기생 산홍에 대해 그는 '진주정신의 상징'이라 했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나라를 팔아먹은 이지용(을사오적)이 1906년 천금을 가져와 산홍에게 첩이 되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산홍이 역적의 첩이 될 수 없다 거절하자 이지용이 화를 내고 산홍을 때렸다고 되어 있다.

최 박사는 "진주 기생의 기개가 오롯이 살아 있는 산홍은 선배 기생 논개의 순절 앞에는 고개를 숙였다"며 "촉석루 아래 절벽 바위에는 누군가가 산홍이라는 세로 글씨를 새겨 그를 기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 박사는 남명 조식 선생을 '위대한 스승'으로, 백정 신분 해방 운동인 '형평운동'을 '인권운동의 찬란한 역사', 청담 스님을 '속세의 번민을 불도로 승화시킨 큰 스승', 박생광 화백을 '떠난 뒤에 눈물로 보이는 작은 거인'이라고 했다.

또 "지리산 정원을 적신 명창 이선유", "전통예술에 청춘과 영혼을 바친 춘당 김수악", "문화예술의 계승자 진주 기생들", "진주교육의 큰 별 아천 최재호"라는 제목의 글에도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손목인, 이재호, 남인수의 친일행위도 언급

진주 출신 대중음악가 이야기도 재미있다. 최 박사는 작곡가 손목인에 대해 "명곡과 친일의 간극", 작곡가 이재호에 대해 "민족의 영혼을 달랜 음악과 친일의 그림자", "한국음악의 세계화 주역 이봉조, 정훈희 그리고 꽃밭", "남인수, 예술과 친일의 고뇌"로 소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진주 출신 손목인, 남인수, 이재호가 들어 있다. 손목인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노래를 많이 작곡했고, 이재호도 친일 찬양곡을 만들고 일제 말기 태평연주단을 이끌고 만주 일대를 순회공연했다. 남인수는 징병제를 찬양한 노래인 "혈서지원" 등을 불렀다.

최 박사는 손목인에 대해 "광복 후의 행적에서 지난 날 과오에 대한 반성은 보여주지 않았다"며 "그는 국민의 애환을 함께 한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고 음악인의 권익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친일행적으로 후손, 후학들을 매우 불편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최 박사는 "이재호가 천재성을 기반으로 서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친일행적은 상황논리를 불문하고 분명히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최임식 박사는 "해방 후 남인수가 민족과 역사 앞에 반성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며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미성을 마음 놓고 알리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진주시민들의 마음은 매우 무겁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 박사는 책에서 문교부 차관과 홍익대 총장을 지낸 이항녕(1915~2008) 박사가 일제강점기 때 하동군수 1년과 창녕군수 3년을 재임한 행적을 부끄러워하며 수시로 친일행위를 반성했다고 소개해 놓았다.

이항녕 박사는 "징병, 징용, 학병을 보내기 위해 많은 일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집을 떠나 목숨을 잃었다. 나는 일본의 앞잡이로서 그런 짓을 저질렀던 나쁜 인간이다. 사과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던 것이다.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는 추천사에서 "이 책은 온전히 그의 발품과 열정의 결과물이다"며 "민감한 문제도 비켜가지 않았다. 진주 출신 음악가들의 일제 강점기 친일행위에도 거침이 없다"고 했다.

최임식 박사는 책 마지막에 "엄청난 역사문화 자원을 가진 진주를 비교적 심도있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책을 서술하고자 노력했다"며 "이토록 귀중한 역사와 선조들의 고귀한 희생을 단순한 참배에 그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실천해 낼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진주에 있는 '가요황제 남인수 동상'.
 진주에 있는 "가요황제 남인수 동상".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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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진주, #최임식 박사, #진주성, #논개, #진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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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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