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도 없는 텅빈 거리에 혼자 있어. 
태양이 하얗게 빛나고 있는데 절대 틀릴 리 없는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어. 
나는 궁금해져. 
지금은 낮일까 밤일까?

지난해 11월 30일 첫 선을 보인 tvN 월화드라마 <낮과 밤>은 이 모호한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문구로 서막을 열었다. 28년 전 온통 불바다가 된 하얀 밤 마을. 사람들이 죽고, 서로 죽이며 마을 사람 전체가 몰살되는 상황에 놓였다. 거기서 살아남은 한 소년이 독백처럼 저 문구를 되뇌인다.

연쇄살인사건과 함께 소환된 '하얀 밤 마을 사건'   
 <낮과 밤>

<낮과 밤> ⓒ tvN

   '낮과 밤'이란 상징적인 문구가 결국 드러낸 건,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실험체로 쓰인 아이들에게서 나타난 해리성 인격 장애, 즉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들이다. 그 시작은 28년 전 하얀 밤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28살의 젊은 사회사업가 손민호(최진호 분)가 일군 하얀 밤 마을은 언론에 '성공적인 재건 사회 사업'으로 조명받은 집단공동체다.

하지만 그건 드러난 일면에 불과했다. 내부에선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모든 다 괜찮다는 맹목적 신념을 가진 과학자 조현희(안시하 분)와 공일도(김창완 분) 등을 중심으로 정부와 군의 지원을 받은 국가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프로젝트는 일찍이 진시황의 염원이기도 했던 '불사영생'의 공식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얀 밤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 실험의 실험체로 희생되고 있었다. 

그 프로젝트는 하얀 밤 마을 참사의 날 이후로 수면 아래로 사라진 듯 보였다. 28년 후 의문의 사망사고 6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때까지는. 수수께끼 같은 암호가 적힌 살인 예고장이 이지욱 기자(윤경호 분)에게 전달되고, 그 살인 예고에 맞춰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살인이라지만 죽은 사람들은 미소를 띠며 스스로 옥상에서 떨어지고, 물에 뛰어들고, 차로 뛰어들어 '자살'과 같은 죽음을 자처한다. 과연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건 무엇일까?

그 수사에 연쇄은행강도 수사를 맡았던 도정우(남궁민 분)를 팀장으로 한 서울 경찰청 특수팀이 뛰어든다. 그리고 그들의 수사를 돕기 위해 FBI출신 범죄 심리 전문가 제이미 레이튼(이청아 분)이 합류한다. 이후 청와대 비서관 오정환(김태우 분)까지 나서 빨리 범인을 잡으라며 독려인지 협박인지 모를 압력을 행사한다. 오정환만이 아니다. 이제는 내로라하는 사회사업가로 사회 유력층이 된 손민호까지 정보 관리부장 이택조(백지원 분)와 내통하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백야 재단이 된 하얀 밤 마을의 주도 세력 
 
 <낮과 밤>

<낮과 밤> ⓒ tvN

 
드라마는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지도층으로 머물고 있는 28년 전 하얀 밤 마을의 배후 세력을 '백야 재단'으로 등장시킨다. 그들은 28년 전 마무리하지 못한 '영생불사' 프로젝트를 당시 연구원이었던 조현희와 공일도를 앞세워 진행중이었다.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던 중에 도정우가 하얀 밤 마을 출신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그는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뒤이어 참사의 날 이후 하얀 밤 마을에서 사라졌던 생존 아동 4명이 나타난다. 도정우, 제이미, 그리고 세 번째 아이였던 문재웅(윤선우 분), 거기에 대통령 비서관 오정환의 심복으로 움직이는 네 번째 아이 김민재(유하준 분)까지. 

이들은 모두 하얀 밤 마을에서 실험 대상이 되었던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실험 과정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고 동시에 그 실험의 부작용으로 '해리성 인격 장애'를 겪게 되었다. 그들의 해리성 인격 장애는 세 번째 아이에 의해 6건의 자살과 같은 연쇄살인을 낳았고, 그 연쇄살인을 해결하기 위해 도정우는 자신을 내던진다. 

도정우가 사건 해결을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은 건 바로 그 자신이, 아니 그에게 가해진 실험 부작용으로 그의 내면에서 튀어나온 '괴물'이 28년 전 하얀 밤 마을 몰살 사건을 벌인 주범이기 때문이다.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세 번째 아이를 찾고, 오랫동안 제이미 박사의 고통을 해결해주기 위해 뇌수술까지 받게 한 도정우. 그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을 막고자 한다. 

그렇게 스스로 괴물이 된 아이들이 자신을, 그리고 또 다른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든 백야 재단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 때, 그들의 맞은편에선 오정환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실험의 성공을 위해 아이들을 공급하는 데 전력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이들을 희생으로 삼는 실험이 인류를 위한 일이라는 몰가치적 신념을 가진 경찰 공혜원(설현 분)의 아버지 공일도와 도정우와 제이미의 생모 조현희가 있다.  

낮과 밤, 도정우와 아이들의 결자해지 

최종회에선 더 이상의 실험을 막고자 하는 도정우를 비롯한 아이들과 여전히 자신의 지적인 탐욕과 영생을 향한 욕심에 눈이 먼 무리들과의 마지막 혈전이 벌어진다. 특히 28년 만에 자식을 만나서도 반가움 대신 그들의 혈청을 탐하는 도정우의 생모 조현희와 경찰에 체포된 뒤에도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공일도의 모습은 아우슈비츠에서 실험을 한 과학자들을 연상케 한다. 

자식보다 자식의 혈청을 탐하는 생모 앞에서 결국 '낮'이었던 도정우의 선한 의지를 '괴물' 도정우가 먹어버린다. 28년 전 그날처럼 모두를 파멸로 이끌려는 상황, 동생 제이미와 공혜원의 간절한 목소리는 도정우를 '낮'으로 되돌리고 참사는 재연되지 않는다. 그리고 28년 전 그날부터 '괴물'이란 원죄에 시달린 도정우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어머니 조현희와 함께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폭발의 현장에 남는다. 

생체 실험으로 염력을 비롯하여 슈퍼맨과 같은 능력을 지닌 주인공, 그리고 그가 맞서 싸우는 권력과 부를 넘어 영생불사를 갈망하는 무리들, 무엇보다 아이들의 혈청을 기반으로 만든 약으로 100세가 넘어서도 자신을 숨긴 채 젊은 대통령 비서관으로 살아왔던 오정환이나, 아들의 혈청으로 늙지 않는 조현희의 모습,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악행이 또 다른 괴물이 되어버린 세 번째 아이의 살인으로 세상에 드러낸 스토리는 그 자체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특히 악의 무리들의 악행을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갖가지 능력으로 속시원하게 파헤치고 단죄하는 과정은, 16부작을 정주행한 시청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했다. 더구나 '죄'의 대가를 기꺼이 치르고자 하는 세 번째 아이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불 속에 남은 도정우의 모습은 인상깊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드라마 말미, 죽은 줄 알았던 도정우는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불속에서 살아 돌아온 것으로 그려진다. 시즌2를 향한 히어로의 재등장인 듯하지만, 그의 결자해지가 빛을 바래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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