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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은 어떻게 무의식으로 전환되고, 무의식은 또 어떻게 자아의 의식세계로 인식되는 것일까. 뇌의 활성화 부위를 스캔하는 현대 과학의 이미징 기술은 이 과정을 재생해낼 수는 없을까?

뇌과학자 정재승에 따르면, 사고로 성대를 다치거나 선천적 장애로 발성 능력을 상실한 사람, 실어증 환자를 위해 뇌를 스캔하여 그들의 언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치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한 강연에서 정재승은 뇌를 스캔하는 장비로 촬영한 흑백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머지않아 높은 해상도의 컬러 영상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을 촬영해 이미지화, 언어화 하는 기술이 머지않았다면, 그 반대인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해서 특정 꿈을 꾸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아주 허황된 판타지만은 아니다.

그러나 첨단과학과 현실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때문에 '꿈이 거래되는 꿈 백화점'에 입사하려는 주인공 페니가 면접을 준비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소설의 도입부는 강한 흡입력과 매력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소설의 도입부는 신박한 소재만큼이나 강한 흡입력과 매력으로 독자들을 그 신비한 꿈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 이미예 장편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소설의 도입부는 신박한 소재만큼이나 강한 흡입력과 매력으로 독자들을 그 신비한 꿈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 팩토리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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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입니까, 허상입니까? ... '꿈'이라고 부르거라
 
"시간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다면 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중 어느 조각을 가져가겠느냐?" 18쪽
 
시간의 신은 세 제자 중 첫째에게 미래, 둘째에게 과거, 현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나누어주고, 셋째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포함된 잠든 시간을 맡긴다. 또 신은 사람들이 잠든 동안 그들의 그림자가 대신 깨어 있도록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라고 셋째에게 이르고, 그것을 '꿈'이라 부르라고 한다.

셋째 제자의 후손인 달러구트는 꿈 제작자들이 만든 꿈을 판매하는 5층짜리 꿈 백화점을 운영한다. 30년 경력의 웨더 아주머니가 매니저인 1층은 인기 상품, 한정판을, 대학에서 '꿈의 영상연출학과'과 '꿈의 뇌과학'을 전공한 깔끔쟁이 마이어스가 매니저인 2층은 평범한 일상에 관한 꿈을, 털털한 모그베리가 매니저인 3층은 획기적이고 액티비티한 꿈을, 놀라운 스피드로 일을 처리하는 스피도가 매니저인 4층은 낮잠용, 아기와 애완동물용 꿈을, 페니의 고등학교 동창 모태일이 근무하는 5층은 1~4층에서 팔다 남은 꿈을 할인 판매한다.

갓 입사한 페니는 달러구트와 웨니 아주머니와 함께 1층에서 일하게 된다. 페니는 입사 면접에서 꿈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고 입사의 꿈을 이룬다.
 
"꿈은… 숨 가쁘게 이어지는 직선 같은 삶에, 신께서 공들여 그려 넣은 쉼표인 것 같아요!" 32쪽
 
어떤 '꿈'을 사시겠습니까?

소설은 장을 달리하며 흥미로운 꿈 제작자들이 등장한다. 키스 그루어는 연애물 제작자다. 연애에 재주가 없어서 100번 넘게 실연을 당했는데 실연을 당할 때마다 상품의 퀄리티는 높아진다.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을 만든다.

아가냅 코코는 미래를 다스리는 세 번째 제자의 먼 후손으로 '태몽'을 만드는 유일한 꿈 제작자다. 그가 만드는 예지몽은 태몽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다.

막심은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암막 커튼을 드리운 어두운 제작소에서 주로 악몽을 만든다. 악몽을 왜 만드나 싶지만, 사람들은 과거의 어렵고 힘들었던 악몽을 통해 그것을 이겨냈던 자신이 그 시간들과 함께 존재했음을 상기함으로써 현실을 견딜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꿈 산업 종사자 협회장을 맡고 있는, 모두의 산타클로스 니콜라스는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이 꾸는 꿈을 만든다. 애니모라 반쵸는 동물들이 꾸는 꿈을 만들고, 와와 슬립랜드는 정말로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꿈을 제작한다. 야스누즈 오트라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는 꿈을 만들고, 레프라혼 요정은 하늘을 나는 꿈을 제작한다.

연말, 올해의 꿈 시상식에 두 명의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데 자유를 주제로 꿈을 만드는 킥 슬럼버의 '절벽 위에서 독수리가 되어 날아가는 꿈'과 야스누즈 오트라의 '역지사지 시리즈 7번째: 내가 괴롭혔던 사람으로 한 달 살아보는 꿈'이다. 누가 그랑프리를 수상하게 될까. 수상 수감은 다음과 같다.
 
"바다를 누비는 점고래는 땅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바다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정도와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생명은 제한된 자유를 누립니다. (중략)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합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215~216쪽
 
'꿈'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으세요?
 
"띵똥.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의 대가로 '자신감'이 대량 도착했습니다." 148쪽
 
달러구트 꿈 백화점 판매 방식은 후불제다. 꿈을 꾸고 자신이 꿈에서 얻은 느낌만큼 적정량의 감정을 지불하면 된다.

복권 번호를 알려주는 예지몽이나 영감을 주는 꿈은 없다. 현실의 고민과 노력이 쌓이지 않은 꿈은 그야말로 꿈일 뿐이다. 현재에 집중하면 그에 걸맞은 미래가 자연스럽게 따라 올뿐이다. 꿈은 현실의 의식이 반영된 무의식이고, 고단한 현실의 의식을 잠시 쉬도록 신이 만든 쉼표이다.

작가는 주인공 페니 입을 빌어 "모든 사람은 완벽하게 불완전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리석기 때문에 꿈을 꾼다"고 말한다.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꿈처럼 다소 허황되게 펼쳐지고, 깊이 있는 지점까지 궁리하진 못하지만, 자신의 삶과 꿈을 돌아보게 하는 탄탄한 서사 구조를 지녔다.

꿈을 향해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또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행복은 허무하리만치 가까이에 있다고. 소설을 읽고 이런 독후감이 지불되길 바란다. "띵똥. 현실을 헤쳐나갈 '창의적 상상력'과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존감'이 대량 도착했습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이미예 (지은이), 팩토리나인(2020)


태그:#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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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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