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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심각해지자 요양병원과 모든 노인 복지시설은 면회가 금지되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사로 '요양병원에서 한 달 살기'하는 부모님이 걱정되었다(관련 기사 : 엄마 아빠가 '요양병원 한 달 살기' 하러 떠난다). 특히 엄마는 끔찍하게 가기 싫어했기 때문에 매일매일 전화를 해서 엄마의 기분 상태를 살피며 불편한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내가 우리 엄마 성격을 잘 안다. 나보다는 남들을 더 생각하는 엄마는 속상한 마음도 참고 상대방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조심스러워한다. 평생을 그렇게 사신 분이기에 엄마에게 더 큰소리를 쳤다. 함부로 막 대하는 사람 있으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요양병원이 지금 워낙에 위험하기도 했고 요양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기사도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내 마음은 복잡했다.      

설암으로 혀 절개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서른 번이나 한 엄마의 입속 상태는 말이 아니다. 조금만 매워도 못 먹고, 조금만 뜨거워도 못 먹는다. 일반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앗! 뜨거워!"
"아이고, 뭐가 이리 매워?"     


엄마가 이렇게 반응을 할 때 나는 그 음식을 먹어본다. 따뜻한 정도의 음식, 매운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음식인데 나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입속에 플라스틱 호스 모양의 마우스를 문 채 철로 만든 가면을 쓰고 방사선실에 누워 외로운 싸움을 했던 엄마를 떠올려본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환자 본인만이 아는 고통과 외로움.

"그래도 힘을 내!" 
"아프겠지만 끝까지 파이팅!"


이런 말 따위는 환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안 된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치료받고 나오는 엄마를 안아주며 '고맙다'와 '사랑한다' 이 말만 했고 마지막 치료를 끝내고 나오는 날 엄마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 힘들다고 하는 치료를 어떻게 견뎌냈어? 엄마는 정말 인간ㅍ승리야. 대단해. 우리 엄마! 정말 고생했어요."

그때는 엄마가 힘들어서 말을 못 했는데 요즘 날, 다 지난 얘기를 하는 엄마는 마치 모험담을 들려주는 사람 같다. 정말 정말 끔찍하게 아팠는데 처음에 암 수술하고 누워서만 지내며 죽고 싶었을 때를 생각하며 이 악물고 참았다고 말했다.

병원 생활이 궁금해서 전화를 해보면 역시 아빠는 잘 먹고 잘 주무신다고 한다. 엄마는 식사시간이 되면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이건 안 매울까?' 먹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은 엄마.

된장국도 맵고 반찬도 덩어리로 나오니 씹을 수가 없다고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불편했다. 요양보호사님이 밥을 다 먹기도 전에 들어와서 다 먹었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엄마는 '입이 아파서 먹는 속도가 느리니 제일 늦게 갖고 가라'는 말을 했다는데, 요양보호사님은 성격이 급한지 서너 번은 왔다 갔다 하며 확인한다고 했다.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고 속상해서 혼잣말을 했다.
  
'어디 그래서야 밥을 편히 먹겠나? 체하겠다. 체하겠어.'

엄마의 최애 음식은 딸이 해 준 '계란찜'
 
 이 그릇에 계란을 풀어 중탕으로 하면 푸딩처럼 잘 된다.
▲ 계란찜 용기  이 그릇에 계란을 풀어 중탕으로 하면 푸딩처럼 잘 된다.
ⓒ 황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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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입속이 불편하면서부터 내가 만들어 준 계란찜을 제일 좋아했다. 음식을 잘한다는 큰 이모도 나처럼은 계란찜을 못한다면서 나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계란찜을 많이 해서 병원에 넣어줬다.

면회가 안되니까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전화기 너머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매우 밝았다. 방글방글 웃고 있을 엄마. 계란찜과 밥을 맛있게 먹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번거롭기는 했지만 엄마에게 계란찜을 넣어 준 날은 내 마음도 가벼웠다. 계란찜이 맛있다면서 전화를 건 엄마는 다음번에는 짜장이 먹고 싶다며 부탁했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엄마는 우리 자식들을 위해 바쁘게 살면서도 먹고 싶다는 것은 다 만들어 주었는데 이까짓 계란찜 먹으며 고맙다고.'

며칠 후 씹기 힘든 고기는 빼고 감자, 양파, 버섯을 잘게 다져서 볶아 짜장을 했다. 이모가 미역국과 호박죽을 끓여주어 짜장과 함께 병원에 넣어주니 병원 지킴이 아저씨께서 흐뭇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김OO 할머니 배 터지시겠네. 하하! 어떻게 이런 효녀 딸을 두셨나 복도 많으시네요."     

내가 회사를 다니거나 장사를 했다면 또는 사는 게 팍팍했다면 마음이 있어도 못할 것이다. 아이들 수업을 하는 강사인 나는 코로나로 12월부터 2월까지는 모든 수업이 취소되었다. 한 템포 쉬어간다 생각하고 마음에 여유를 갖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글쓰기와 그림을 그리며 지내고 있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것도 있지만 나를 되돌아보고 가족을 더 살뜰히 보살필 수 있게 되었다.

또,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을 하며 1년을 보냈기에 뿌듯한 성과들도 보이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한 일은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물이 빛나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것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로 달라질 수 있다.

위기의 시대, 나는 더 강해졌고 새로운 소망도 생겼다

암 투병하는 엄마를 보살피며 위기의 순간들이 많았다. 그 위기의 순간들을 잘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내가 좋은 기운을 얻어 힘을 낼 수 있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지 못하기에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수입은 줄었지만 일을 쉬니 시간은 많아졌다. 그래서 평소에 실천하지 못했던 '걷기'를 꾸준히 했다. 함께 걷다가 더 돈독해진 관계도 있다. 못 만나던 지인들에게 더 자주 안부 인사를 했고, 친구와 함께 드라이브하고 걸으며 쌓은 추억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아픈 친정 부모님을 돌보는 마음이 '힘들고 지친다'에서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로 바뀌었다. 소소한 일상이 그리워지며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이 무섭고 사람으로 인해 상처 받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것도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올해는 좋은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을 더 많이 나누며 살아야겠다. 나로 인해 누군가 우울증이 낫고, 살고 싶어졌다는 말을 듣는 것이 올해 소망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엄마를 살린 것처럼 힘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카페에 앉아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립다
  카페에 앉아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립다
ⓒ 황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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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후에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


태그:#새해 소망, #사람, #소중함, #엄마,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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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소박한 선생님으로, 엄마로, 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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