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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지난 12일 웹툰 작가 윤서인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중 일부다. 해당 문구와 함께 윤씨는 친일파 후손의 집,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라는 글귀가 적힌 사진을 나란히 올렸다. 하나는 호화주택, 다른 하나는 낡아 쓰러지기 직전의 허름한 집 사진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한 웹툰작가 윤서인의 페이스북 게시물. 해당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한 웹툰작가 윤서인의 페이스북 게시물. 해당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 윤서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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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의 '막말'은 거센 논란을 불렀다. 윤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엔 하루만에 3만 명이 넘는 인원이 서명했다(관련 링크: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5653 ). 그러나 윤씨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나 해명 없이 오히려 자신에게 비판을 쏟아내는 누리꾼들에게 또다른 막말로 대응했다.

한 누리꾼이 "독립운동가들이 목숨 바쳐서 만든 나라다. 그분들을 그런 식으로 평가할 거면 일본으로 떠나라"라고 비판하자, 윤씨는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 중에서 특히 이승만이 하드캐리하면서 목숨바쳐 만든 나라지 대부분의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정작 나라를 만드는 데는 딱히 공헌이 없었다"며 "특히 실제로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니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친일파들도 상당수 참여했었다"라고 대꾸했다.

윤씨의 발언을 비판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선 윤씨는 "조만간 180석 이용해서 '친일옹호금지법' 만드실 기세 어련하시겠어요"라고 조롱했다.

어떻게 '대충 살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나

윤씨의 말을 접하고, 화가 나기보단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대체 어떻게 역사를 이해해야 '독립운동가들이 대충 살았다'는 발상이 나올 수 있을까.

최근 나는 1932년에 출간된 <육군독본(陸軍讀本)>이라는 책을 입수했다. 이 책은 당시 일본 육군의 무기체계와 전략, 역사 등을 소개한다. 당시 일본군은 만주사변을 일으킨 뒤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울 정도로 아시아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책의 화보에 등장하는 비행기와 탱크, 기관총 등 각종 최신 무기와 장비들을 보면서 나는 탄식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독립군이 정말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고 있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일본군에 비하면 독립군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현실에 처해 있었다. 제대로 된 총이 없어 목총으로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정식 군대가 없어 남의 나라 군대에 얹혀 남의 나라 혁명을 위해 피를 흘린 한인 청년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000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마라!"는 의열단원 나석주의 유언처럼 그들은 조국의 독립과 후손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리는 순교자의 길을 택했다.

"아군은 본래 예기치 못한 전투를 행했기 때문에 급양의 준비가 없었으므로 3일 연속 큰 전투에 다만 감자(甘蔗: 사탕수수) 몇 개밖에는 식량이 없었나이다. 3일을 전혀 공복이다시피 되었으므로 군인은 모두 병자같이 되어 기력을 추지 못하였나이다. 그리하야 전투 중에서도 식료를 구하려는 생각 뿐이었나이다. 심지어 창도(鎗刀)로써 송피(松皮: 소나무 껍질)를 잘라 먹으며 손으로 송엽(松葉: 소나무 잎)을 따먹고 나중에는 배낭 속에 있던 황촉(黃燭: 초)까지 조금씩 나눠 먹은 일이 있으니 이것을 보면 그때 얼마나 굶주렸을 것을 가히 알 바이올시다." - 김훈, <북로아군실전기(北路我軍實戰記)> 중

1920년 청산리 전투 당시 참전했던 김훈(金勳)의 회고다. 찬바람 부는 만주벌판에서 일본군 대병력의 추격에 쫓기며 굶주린 채 전투를 치러야만 했던 독립군들의 참혹한 정경이 눈 앞에 선선하다. 이 눈물 겨운 회고를 읽고서도 독립운동가들이 '대충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텐가.
 
 한국광복군의 사격 훈련 모습
 한국광복군의 사격 훈련 모습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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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대학원에서 독립운동사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학기가 마무리될 무렵 함께 수업을 듣던 동기 역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솔직히 독립운동에 대해 과소평가했는데 다시 보게 됐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 없는 현실에서도 끝까지 독립운동을 이어나간 독립운동가들이 너무 존경스럽다"라고.

반쪽짜리 역사관을 가진 이들은 '결국 원자폭탄 두 방 덕분에 독립을 이룬 것 아닌가'라며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을 폄하한다. 하지만 애초에 미국 등 국제 열강이 변방의 약소국인 한국의 독립을 결의하기까지 임시정부를 비롯한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런 그들을 가리켜 어떻게 대충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조국의 독립과 후손들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려가며 싸웠던 그들에게 대충 살았다고 하는 것보다 더한 모욕이 있을까.

21대 국회에서 '친일찬양금지법' 제정돼야

비단 이번 막말 파문뿐만이 아니다. 윤씨의 막말 파문이 일어나기 바로 며칠 전, 트위터 상에서는 '독립운동가 알페스'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알페스(RPS·Real Person Slash)란 실존 인물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창작물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일부 누리꾼들이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그림을 만들어 퍼나르며 조롱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미화해 논란이 된 일들은 종종 벌어져 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언론의 가십거리로 잠깐 누리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뿐, 차후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는 없었다.

독일은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데 대한 반성으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나치를 찬양하는 표현만으로도 형사처벌을 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사국인 독일은 오히려 역사에 대한 참회의 뜻으로 자신들이 나서서 나치 찬양에 대한 처벌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일제 식민지배에 의한 피해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일제와 친일을 찬양하는 행위에 대해서 처벌할 수 있는 뚜렷한 법안이 없다는 건 마땅히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닐까. 혹자는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나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혐오발언까지 표현의 자유로 보장할 까닭은 없다고 생각한다.

광복회는 지난 21대 총선 당시 21대 국회의원 후보들을 대상으로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응답자 568명 중 96.1%가 찬성했고, 이에 힘입어 광복회 역시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위해 박차를 가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이후로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광복회 관계자는 "사실상 올스톱"이라며 "우리도 답답한 상황"이라 토로했다. "여당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친일파 파묘를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안도 계류 중인 상태에서 쉽지가 않다"는 것.

그나마 2020년 6월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미화와 독립운동가 모욕에 대한 처벌 조항을 포함한 '역사왜곡금지법'이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의원 대표 발의로 국회에 올라왔으나 그것마저도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이번 막말 파문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친일 찬양 및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는 발언이나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따르는 법의 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제2, 제3의 윤서인은 계속 등장한다. 부디 21대 국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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