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것은 사소한 이야기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때까지 고작 2시간 남짓 동안 일어난 쓰레기 분리 배출에 관한 뜬금없는 깨달음을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공유한다. 만약 기사로 채택된다면,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댓글이 줄을 잇게 될까 살짝 두렵긴 하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콩을 가는 것이다. 최근 수면 장애를 겪으면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거의 마시지 않지만, 차마 '기상 커피'는 끊지 못했다. 잠이 덜 깬 채 찬장을 더듬어 커피 그라인더를 꺼내는 내 모습이 몽유병 환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진한 커피 향이 거실에 가득 찬다. 한 모금 입에 넣으면 비로소 잠이 깨고 활기찬 하루가 시작된다. 늘 그래왔듯, 찌꺼기를 화분에 털고 종이 필터는 쓰레기 관급 봉투에 버린다. 종이라고 해도 젖어있는 데다 이물질이 묻어있으니 재활용할 수 없다.
 
커피 찌꺼기는 화분으로, 종이 필터는 관급 봉투로.
▲ 커피 종이 필터 커피 찌꺼기는 화분으로, 종이 필터는 관급 봉투로.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커피를 다 마셨는데도 아침 6시, 아직 밖은 캄캄하다. 지난밤 저녁 식사가 부실했던 탓인지, 여느 때와는 달리 시장기가 돈다. 보통 아침은 7시에 먹는다.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기 전에, 아이 손바닥만 한 단팥빵과 우유 한 컵으로 허기를 달랜다.

빵 봉지에 붙은 종이 라벨이 떼어지지 않는다. 결국, 가위로 도려내기로 했다. 그러잖으면 비닐을 분리 배출할 수가 없어 통째로 관급 봉투에 버려야 한다. 귀찮기도 하지만, 굳이 라벨을 붙일 필요가 있나 싶다. 성분표나 영양 정보 등 같은 내용이 비닐봉지에도 적혀 있다.
 
손으로 떼어내지 못하고, 결국 가위로 오린 후 버렸다.
▲ 빵 봉지의 종이 라벨 손으로 떼어내지 못하고, 결국 가위로 오린 후 버렸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냉장고에 우유가 다 떨어져 겨우 한 컵을 채웠다. 여느 때처럼 우유 팩 안을 깨끗이 헹구기는 했는데, 플라스틱 마개가 떼어지지 않는다. 지금껏 별도의 마개가 없는 팩 우유만 이용하다가 할인한다기에 덜컥 샀는데, 이렇듯 분리 배출이 난감할 줄은 미처 몰랐다.

이건 가위로도 안 된다. 문구용 칼을 꺼내 마개 주위를 둥그렇게 도려낸 다음 분리 배출했다. 팩 옆면에 마개를 만든 이유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냉장고 안의 잡내가 우유에 스며드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신선함을 지키기 위해 쓰레기 분리 배출을 어렵게 한 셈이다.
 
플라스틱 뚜껑은 분리가 안 돼, 결국 칼로 오려서 따로 버렸다.
▲ 뚜껑이 있는 우유 팩 플라스틱 뚜껑은 분리가 안 돼, 결국 칼로 오려서 따로 버렸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오늘 아침 메뉴는 바지락으로 맛을 낸 두부 된장국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국물 요리다. 바지락을 미리 해감시키는 번거로움만 빼면, 요리하기도 쉽고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영양가도 뛰어난, 말 그대로 '가성비 갑'인 음식이다.

바지락은 MSG 도움 없이 소금만으로 감칠맛을 낸다. 칼국수의 육수를 내는 데 주로 쓰지만, 된장국과 미역국, 콩나물국 등 어떤 국물 요리에도 어울린다. 심지어 라면을 끓이는 데도 바지락 몇 개만 넣어주면 기름기를 잡아주어 개운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문제는 뒤처리가 힘들다는 거다. 조개껍데기는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다. 물기를 뺀 다음 관급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부피와 무게가 만만치 않은 데다 모서리가 날카로워 자칫 봉투가 찢어질 우려도 있다. 하여 비닐봉지 등을 이용해 겹으로 싸서 버려야 안전하다.

좋아하는 굴찜을 자주 만들어 먹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생굴을 꾸러미 채 사온 뒤 찜통에 넣어 요리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까먹고 난 뒤 껍질을 버리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모서리가 벼린 칼날 같아 신문지 등으로 꽁꽁 싸매지 않으면 손을 베일 수도 있다.

다 쓴 된장 통을 버리는 것까지 번거로움의 연속이다. 분리 배출하기 전에 플라스틱에 붙어있는 종이 라벨을 떼어내야 한다. 통 전체를 두른 데다 모든 곳에 풀칠이 되어 있어 물에 불려 긁어내야만 간신히 벗길 수 있다. 거기에 비하면, 뚜껑에 붙은 라벨은 일도 아니다.

더 속상한 건, 통에 붙은 생산자의 라벨 위로 판매자의 라벨이 덧붙여져 있다는 점이다. 더 강력한 스티커여서 벗겨내는 데 애를 먹는다. 매장의 이름과 제품명, 용량, 가격, 바코드 등이 적혀 있는데, 진열된 매대에 다 걸려있는 내용이다. 그저 계산대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다.

분리 배출을 쉽게 하려면 애초 라벨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칼로 라벨을 긁어내다 떠올린다. 생산자와 판매자 둘 다 라벨을 붙여 홍보해야겠다면, 각각 옆면은 생산자가, 뚜껑은 판매자가 활용하도록 하면 어떨까. 그도 어렵다면, 쉽게 떼어낼 수 있도록 배려하던지.

아침 식사와 설거지를 끝냈다. 양치질하려니, 공교롭게도 치약이 다 떨어졌다.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쥐어짜니 가까스로 한 번 더 쓸 양은 나온다. 빈 치약 용기는 어떻게 버려야 하나. 지금껏 안을 물로 헹군 뒤 플라스틱 배출 통에 넣었는데, 별안간 이게 맞나 싶다.
 
제품에 적혀있는 글귀의 내용이 아예 다르다. 독일은 '환경 보존', 우리나라는 '제품의 효능과 성분' 위주다. 그게 분리 배출의 용이성 차이로 나타나는 건 당연지사다.
▲ 독일 치약과 우리나라 치약 제품에 적혀있는 글귀의 내용이 아예 다르다. 독일은 "환경 보존", 우리나라는 "제품의 효능과 성분" 위주다. 그게 분리 배출의 용이성 차이로 나타나는 건 당연지사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뚜껑은 플라스틱이지만, 용기는 비닐처럼 느껴져서다. 이것도 가위로 오려내 따로 버려야 될 것만 같다. 비건 채식을 시작한 아이가 지금 쓰고 있는 독일산 치약은 뚜껑과 용기가 쉽게 분리된다. 더욱이 용기가 탄성이 있는 재질이어서, 안을 헹구기도 간편하다.

겉에 적혀있는 독일어를 번역기로 돌려보았다. 제품명과 함께 '지구와 미래 세대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과 '30% 이상 재사용이 가능한 튜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우리 치약에는 온갖 효능과 제조사명, 연락처, 성분표, 사용상 주의사항 등이 빼곡하다.

그 흔한 치약 하나에도 제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제품의 효능을 강조하는 우리와 달리, 독일은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 고려하고 있는 셈이다. 그 시각차가 사용 후 분리 배출의 용이성 차이로 드러난다고 보면 될 성싶다.

치아 배열이 고르지 않아선지 잦은 양치질에도 입안이 영 개운찮다. 애꿎은 치약과 칫솔을 탓할 일은 아니다. 마치 때를 벗겨내듯 힘껏 이와 잇몸을 닦는 잘못된 양치질 습관 때문이다. 남들은 하나로 족히 두세 달은 쓴다는데, 내 칫솔의 수명이 채 한 달이 안 되는 것 같다.
 
바지락 껍데기 뭉치와 버려진 칫솔이 함께 담겨있다. 이건 태워질까, 묻힐까, 바다에 던져질까.
▲ 관급 봉투 안 바지락 껍데기 뭉치와 버려진 칫솔이 함께 담겨있다. 이건 태워질까, 묻힐까, 바다에 던져질까.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새 걸 꺼내 닦고, 모가 누운 칫솔을 버렸다. 칫솔은 플라스틱 재질이지만 일반 쓰레기로 관급 봉투에 버려야 한다. 솔직히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사실이다. 그때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플라스틱으로 분리 배출했다. 가족의 것까지 합하면 그 양이 엄청날 것이다.

관급 봉투에 바지락 껍데기 뭉치와 칫솔이 함께 담겼다. 그 아래로 배달 음식의 포장재와 코 푼 휴지, 바닥을 훔친 물티슈, 구멍 난 양말, 떼어낸 스티커와 테이프 등 각종 쓰레기로 이미 반쯤 찼다. 순간 궁금해졌다. 이건 태워질까, 묻힐까, 아니면 바다에 던져질까.

지금껏 분리 배출에만 신경이 곤두섰을 뿐, 정작 쓰레기의 양엔 무관심했다. 정확히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20리터짜리 관급 봉투로 채 보름을 못 버티는 것 같다. 그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고 버리면서, 남들 앞에선 분리수거와 재활용의 중요성 운운해 온 스스로가 민망해졌다.
 
일반용과는 달리 보건용 KF-94 마스크는 대개 낱개 포장돼 있다. 매일 마스크 하나와 포장지 하나가 함께 버려진다.
▲ 마스크의 낱개 포장 일반용과는 달리 보건용 KF-94 마스크는 대개 낱개 포장돼 있다. 매일 마스크 하나와 포장지 하나가 함께 버려진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바쁜 아침 쓰레기 정리하느라 출근 시간이 빠듯해졌다. 옷을 챙겨 입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그제야 깜빡 잊은 게 떠오른다. 휴대전화와 지갑은 놓고 나와도 마스크 챙기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요즘 같은 때엔 'KF-94'로 써야 한다.

일반용과는 달리 보건용 'KF-94' 마스크는 대개 낱개 포장이다. 우리 가족 네 명이 하루에 한 개씩 사용하니, 주말을 뺀 한 달치만 해도 버려진 포장지가 얼추 100개다. 마스크야 감염 위험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포장지조차 덩달아 버려지는 게 안타깝다.

오늘 아침, 기상 후 출근 전 두 시간 동안 내 손을 거친 쓰레기가 이렇듯 많다. 새삼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죄스럽다. 마스크만 빼면, 딱히 코로나 핑계 댈 것도 없다. 서로 공감하고 고민하면 좋겠다. 부디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푸념만 늘어놓는다고 욕하지 말아달란 이야기다.

태그:#분리 배출, #재활용, #ZERO-WASTE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