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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취임 한 달째인 16일 오전 도쿄 소재 일본 총리관저에서 취재에 응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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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옥선 등 위안부 피해자 12인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이번에도 '알러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판결이 선고된 당일인 2021년 1월 8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우선, 국제법상으로 주권국가는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라며 "이 소송은 각하돼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발언했다. 국가면제 이론(주권면제 이론)에 따라 국가는 타국의 재판을 받지 않으므로 처음부터 사안을 들여다볼 것도 없이 소송을 각하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 뒤 그는 "일한의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1965년 일한청구권협정에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라며 여전히 책임을 부인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국제법상의 위반을 시정하는 그러한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같은 불법행위는 다뤄진 적이 없는데도, 항상 하던 대로 이 협정을 거론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스가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는 '우리는 죄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스가가 1965년 협정보다 먼저 언급한 것은 '주권국가는 타국의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국가면제 이론이다. '우리는 외국 법원에서 열외'라는 논리를 이번 판결에 대한 주된 대응 수단으로 내세웠다.

19세기에 발달한 국가면제 이론

국가면제 이론은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국가들이 대외활동을 왕성하게 벌인 19세기에 발달했다. 이는 국가주권을 절대화하는 사상에 입각한 것이자 서양 자본주의국가간의 평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이 이론이 국가의 이해관계를 얼마나 옹호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판례가 있다. 스쿠너 익스체인지호 사건(the Schooner Exchange v. McFadden)에 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1812년 판결이다. 

정인섭·정서용·이재민 교수의 <국제법 판례 100선>에도 언급된 것처럼, 스쿠너 익스체인지호 판결은 초창기의 국가면제 이론을 반영하는 대표적 판례다. 이것은 국가주권의 절대성을 옹호하는 편에 서서 연방대법원이 나폴레옹 정부의 입장을 지지해준 판결이었다.
 
 스쿠너 익스체인지호.
 스쿠너 익스체인지호.
ⓒ IntLawGrrls.com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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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너 익스체인지호의 원래 소유자는 미국인 맥패든(McFadden) 등이었다. 이 배는 1810년 나폴레옹 칙령 위반 혐의로 대서양 공해에서 프랑스군에 나포됐다. '익스체인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이 배는 아무런 교환관계도 없이 프랑스 정부에 몰수됐다. 그런 뒤 프랑스 해군에 편입돼 발라우(Balaou)호로 개명됐다.

그런데 이 배가 선박 수리를 위해 뉴욕과 워싱턴 중간의 필라델피아항에 입항했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맥패든 등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이런 일이 지금 벌어졌다면, 맥패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지지를 받았을지 모른다. 공해상의 나포행위에 불법성이 있다고 인정된다면, 오늘날의 세계 여론은 맥패든을 지지할 법하다.

하지만 당시는 대중과 국가의 역학관계에서 국가의 위상이 훨씬 높았다. 소송이 제기되자, 프랑스 정부가 아닌 미국 법무부에서 스가 총리와 똑같은 말이 나왔다. '프랑스 군함은 미국 법원의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것이었다. 법무부가 이런 의견으로 자국 법원을 압박했던 것이다.

1심 법원은 맥패든의 소유권을 부정했고, 2심 법원은 그것을 인정했다. 최종적으로 연방대법원은 국가면제 이론에 따라 미국 법원의 관할권을 부정했다. 프랑스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이 있었던 1812년은 미국과 영국 사이에 '1812년 전쟁'이 벌어진 해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프랑스와의 동맹관계가 절실했다. 이는 국가면제 이론이 어느 정도는 정치적 편의성에 입각해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비정치 영역으로 확대된 국가면제 이론

이렇게 발달한 국가면제 이론은 20세기 들어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국가의 활동 범위가 정치 영역에서 비정치 영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나타난 상황이다. 비정치적 분야에서까지 국가면제를 원칙적으로 관철시킬 힘과 명분이 부족했기 때문에, 국가들은 국가면제에 대한 제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병조·이중범 교수의 <국제법 신강(新講)>은 "국가행위 중 권력적 행위에 대하여는 국가면제를 부여하되 비권력적 행위에 대하여는 더 이상 국가면제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제한적 면제론이 일반화되게 됐다"라고 설명한다.

일반화됐다고 확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 초판이 나오기 1년 전인 1972년 5월 16일에 국가면제를 제한하는 유럽국가면제협약이 체결됐기 때문이다. '국가 선박이라도 통상 목적에 이용되는 선박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1926년 국유선박면제규칙통일협약(브뤼셀협약)에 이어 국가면제에 또 한번의 중대 제약을 가하는 국제협약이었다. 이 협약은 1976년 6월 11일 발효됐다.

국가면제에 대한 제한이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아직 발효되지는 않았지만 이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이 채택됐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1977년 유엔총회 결의로부터 시작해 1986년에 잠정초안이 작성되고 1991년에 최종 초안이 작성된 데 이어 2004년에 정식으로 채택된 '국가 및 그 재산의 관할권 면제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유엔 국가면제협약)' 제12조는 개인이 국가에 의해 인적·재산적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국가면제를 원칙상 부정했다.

제12조는 법정 소재지 국가에서 행위가 발생했고 행위자가 행위 당시 법정 소재지국에 있었을 것을 조건으로 국가면제를 부정했다. 당사자들 사이에 제12조를 배제하는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개인이 외국을 상대로 자국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런 협약이 유엔에서 채택됐다는 것은 스가 총리의 주장이 한물 가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사례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에서 나온 현상에 주목한다. 위안부나 강제징용과 동일한 사안을 두고 독일의 국가면제를 배제하는 판결이 이탈리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군수공장에 강제징용됐지만 배상을 받지 못했다. 한국의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처럼 그 역시 결국 자국 법원을 노크하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게 됐다.

1·2심과 달리 이탈리아 대법원은 전향적인 판결을 내놨다. 2004년에 대법원은 강행 규범(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 규범)을 위반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독일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그러자 지금 일본 정부가 검토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방안을 독일 정부가 꺼내들었다. 2012년에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恆) 재판소장을 위시한 ICJ는 독일 편을 들었다. 현재의 국제법 규범을 근거로 하는 재판이었다.

그러면서도 ICJ는 '페리니 사건은 양국의 추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당사자들 간의 합의를 종용했다. 자신있게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쌍방 합의를 촉구했던 것. ICJ가 세계 여론의 눈치를 살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그 뒤 이탈리아 정부는 ICJ 판결을 근거로 독일의 전쟁범죄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자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걸었다.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면제를 적용하게 되면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범죄행위에 국가면제 주장한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취재진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취재진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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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는 "이 사건 행위는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며 당시 일본제국이 불법 점령 중이었던 한반도 내에서 우리 국민인 원고들에 대해 자행된 것"이라며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 판결도 이탈리아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 판결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포함한 최근 판례는 전쟁범죄에 관해 국가면제를 부인하는 관념이 아직 대세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대세를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반영한다. 스가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주장은 현재의 국제규범에서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지만, 세계적 흐름은 그런 주장을 점점 불리한 곳으로 몰아가고 있다.

설령 일본의 주장이 ICJ 안에서 유리하다 해도, 그것이 한국 법원의 위안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한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ICJ는 이 사건을 관할할 수 없다.

위안부 강제동원이나 강제징용은 일반적인 공권력 행위가 아니라 불법적이고 반인륜적인 공권력 행위다. 이런 범죄행위에 대해서까지 일본 정부가 국가면제를 주장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그런 범죄에 기초해 있음을 자인하는 일이다. 그래서 스가 총리의 국가면제 운운은 일본 국가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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