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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연말에 세 번째 <토지>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작년 연말에 세 번째 <토지>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 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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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을 만나믄 우짤라꼬."
"호식으로 태어났다믄 방구석에 앉아 있다고 성하까."
"잡히묵힐 때는 잡히묵히더라 캐도 내사 내 발로 걸어가서 잡히묵히는 건 싫구마."


창 밖이 어둑어둑한 거실에서 잠긴 목소리로 낯선 경상도 사투리를 소리 내 읽고 있다. 매일 오전 7시 남양주, 인천, 수원, 서울, 필리핀까지 전국 각지를 넘어 해외에 있는 사람까지 모여서 온라인 화상 <토지> 낭독 모임을 하고 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가 있다. 이곳에는 두꺼운 책 읽기, 동화책 읽기, 그림책 읽기 등 다양한 온라인 책읽기 북클럽이 있다. 20권에 달하는 대하소설 <토지>도 이곳에서 2번이나 북클럽이 진행됐다. 그러고도 <토지>를 읽고 싶은 사람들이 더 있어 작년 연말에 세 번째 <토지>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일주일 동안 정해진 분량을 읽고 돌아가면서 주 1회 읽은 분량에 대한 소감글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토지> 읽기는 1년 4개월을 목표로 기획했다. 20권을 혼자 읽다 보면 지겹거나 일상에 쫓겨서 중도 포기할 수 있으니 같이 계획표에 맞춰 읽자는 취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코로나 시대, 온라인 화상회의가 유행하는 것에 발맞춰 낭독 모임을 해보는 게 어떨까?

전국을 넘어 해외에 있는 사람들까지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 온라인 카페에서 22명이 <토지>를 읽겠다고 모였다. 오전 7시 온라인 화상으로 낭독을 하기로 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그래서 온라인 화상회의가 익숙하지 않았으면 생각지도 못 했을 일이다.

새벽 책 읽기로 알게 된 '낭독의 기쁨'

해도 뜨지 않은 아침에 일어나 눈곱도 떼지 않고 부은 얼굴과 잠긴 목소리를 내보이는 게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이젠 아무렇지 않다. 부끄러운 몰골보다 내가 얻는 이득이 더 많기 때문이다.

첫 번째, 새벽까지 활동하는 올빼미 생활을 청산하게 됐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갖게 되는 유일한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인 밤 시간을 포기하지 못해 매일 새벽 2시가 돼야 잠에 들었다. 아이랑 일찍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해도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토지>낭독을 시작하고 나서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눕는 게 저절로 됐다. 낭독의 즐거움을 맛보게 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득은 바로 몰입의 기쁨이다. <토지>는 지금은 쓰지 않는 토속어와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살아 있는 입말로 쓰여 있다. 잘 모르는 말들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내가 읽는 5분 동안에도 집중해서 읽어야 하지만 다른 이가 읽어주는 때에도 정신을 놓지 않아야 맥락을 따라갈 수 있다.

이렇게 집중해서 30분 책을 읽고 다른이의 낭독을 듣고나면 몸 속에 에너지가 차고 리듬감이 생기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밖으로만 뻗쳐 나가던 에너지가 낭독을 하면서 안으로 모이고, 입말의 언어가 주는 자연스러운 리듬이 몸에 새겨진다. 낭독으로 하루를 여는 즐거움이 요즘 삶의 즐거움을 상당수 차지한다.

이런 온라인 낭독모임을 시작하게 된 건 지난해 온라인 화상회의로 연 연말 파티 덕분이다.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서 연말 모임이 어렵고 전국 각지에 있는 카페 멤버들이 다같이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서 매해 게시글로만 연말 시상식을 진행했다.

카페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활약이 돋보였던 분을 MVP로 시상하고, 그 외 신인상도 주고 새싹상도 주고 다양한 상을 제정해 카페에서 연말 분위기를 내며 게시글로 한 판 놀아보자는 취지다. 그런데 작년에는 여기에 한 가지 더해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시상식을 열었다. 

온라인으로 만나 이렇게 놀 수 있다니 

드레스 코드 '레드'에 맞춰 빨간 마스크나 빨간 머리띠 혹은 빨간 티셔츠를 입은 다양한 사람들 50여 명이 줌에 모였다. 프랑스, 캐나다, 싱가폴, 스위스까지 해외 있는 분들이 대거 참여하고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수상자에게 수상 소감을 듣고 미리 받은 아이들 재롱잔치 동영상을 시청하고, 카페에서 진행 중인 20여 개가 넘는 북클럽 홍보 동영상을 시청했다.

북클럽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보내달라고 하니 다들 어찌 그리 숨은 재주들이 많은 지 PPT에서부터 동영상 편집까지 10여 개의 동영상이 모였다. 중간중간 초성퀴즈도 하고 마지막엔 빙고까지 진행했다. 전체 음소거 상태에서 시상자만 잠시 목소리를 켜고 진행했는데도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뜨는 사람 없이 재미있게 진행됐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 만나고 싶었고 연결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온라인 화상회의가 일반화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온라인으로 만나 연말 시상식을 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가 가져다 준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내 얼굴이 보이는 온라인 화상 회의가 처음엔 어색했는데 한두 번 경험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연말 시상식을 거치면서 이제 재밌어졌다. 크리스마스 때도 줌 회의를 열어 아이 친구들이 만나서 같이 퀴즈도 풀고 그림책도 읽었다. 어떤 날은 오전에 <토지>를 낭독하고 점심에 줌으로 독서 토론을 한 후, 밤에 신년회를 한때도 있었다. 남편이 "줌 좀 그만해"라고 말할 정도로 연말 연초에 온라인 모임이 많았다.

그렇게 많은 모임을 소화하고 나니 온라인이지만 대면 모임만큼 에너지가 쓰여 힘들었다. 집에서 손쉽게 접속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서 쓰이는 에너지는 비슷했다. 온라인 모임도 정리를 해야겠다. 이번 주 대학 친구 4인방이 하는 '방구석 신년회'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온라인 모임을 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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