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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13평 4인 가족 공공주택' 발언 보도가 전해진 이후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해당 보도가 발언의 맥락을 잘못 전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관련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은 '집'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던 그 집' 기획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이 우리의 삶에 어떤 흔적과 의미를 남기는지 짚어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노랫말 가사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하이에나들이 있다. 관리비 계산에 실패해서 말일에 컵라면을 먹으며 버티는 자취생들 말이다. 이제 사회에 막 발을 내딛은 20대 자취생 3명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코로나 때문에 강제 자취, 번개처럼 짧았지만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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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인천에서 거주하고 있는 간호학과 대학생이다. 고학년이 되어 학과 특성상 병원으로 실습을 나갈 일이 많다. 그런 도중 싱가포르에 계시던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택에서 2주 자가격리. 입국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지만, A는 이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 동안 아버지와 한 공간에 지내면, 병원 실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A는 갑작스럽게 친구 집에서 한 달 동안 짧은 자취를 시작했다.

한 달이지만 친구의 월세 일부를 부담했다. 처음 본가에서 나와본 A는 이 상황이 오히려 설렜다. 같은 학과인 친구와 밤에는 실습 경험에 대해 떠들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밤늦게까지 핸드폰을 해도 잔소리를 듣지 않아 좋았다. 혼자 산 지 오래되어 자취 고수인 친구에게 벌레 퇴치법도 배우고, 식재료 보관법도 배웠다.

집에 어른이 없으니 방범이 가끔 신경 쓰이고, 엄마의 요리가 그립다는 점이 걸렸지만, A는 한 달 자취 생활이 편했다. A는 훗날 자취를 할 기회가 있다면 정식으로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A는 자취에 대한 순수한 로망이 남아 있었다.

자취 몇 달 만에 배달 어플 VIP에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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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B는 자취 생활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통학 문제로 인해 친구들과 대학가에서 1년간 자취를 했다. 관리비 포함 약 120만 원의 월세를 3명이서 분담했다.

B도 처음에는 자취의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본가에서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식사 시간이 되면 가족 모두 식탁에 앉아야 했다. 하지만 자취방에서는 아침밥을 오후 1시에 먹어도 뭐라고 말할 사람이 없었다. 친구들과 새벽에 라면을 끓여 먹는 것도 재미있었다. 머리카락도 부모님 눈치를 보지 않고 한번에 몰아서 청소할 수 있으니 편했다.

하지만 원룸에서 3명이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니 한 친구가 새벽에 TV를 켜면, 방 전체가 밝아졌다. B는 잠을 설쳐야 했다. 청소 패턴도 각기 달랐다. B는 그때그때 치워야 하는데, 다른 친구는 물건을 쌓아 놓았다 치우는 편이었다. 대놓고 지적할 수가 없으니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식사도 직접 요리를 하면 자연스레 누가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지 눈치를 보게 되었다.

결국, 이 과정이 피곤해 배달을 시켰다. B는 몇 달 만에 배달 어플 VIP에 등극했다. 용돈이 들어오는 첫째 주는 풍족하게 먹고, 돈이 다 떨어진 마지막 주는 컵라면으로 연명했다. 휘청거리는 생활이 반복되니 1년 만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B는 한 학기를 휴학하고 다시 본가로 돌아갔다. 만약 다시 자취를 하게 되면, 돈이 더 들더라도 혼자서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친한 것과 24시간 함께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일본에서 5년 자취, 타국은 더 어렵다
 
일본 도쿄 자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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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는 도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5년 동안 네 번 이사를 했다. 일본에서 부동산 계약을 할 때는 한국과 달리 보증금, 월세 이외에 레이킹(れいきん、礼金)이라고 하는 사례금이 나간다.

이는 집주인에게 감사의 뜻으로 지급하는 돈으로, 대략 월세 한 달 분의 금액이다. 물론 퇴실 시 돌려받지 못한다. 더해서 부동산 중개수수료, 화재보험 등의 부가적인 금액을 합하면 한 달 월세가 6만 엔(약 63만 원)일 경우, 첫 입주에 약 30만~40만 엔(약 315~420만 원)이 빠져나간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힛코시빈보(引越し貧乏)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사를 자주 다닐 수록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 가난해진 상태를 말한다. 주변에서는 '유학생'이면 온전히 학업에 집중하는 줄 알았지만, 정작 본인은 다달이 빠져나가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알바를 그만둔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 관공서를 방문하는 것과, 외국인 신분으로 관공서에 가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비자, 주민신고, 연금, 보험. 하루 걸러 관공서를 방문하다 보니 나중에는 이곳이 집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안 나왔다. 전기도 끊겼다. 알고 보니 전기세와 수도세 납부하는 것을 까먹은 것이다. C는 부리나케 전화해서 돈을 납부했다. 타지에서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것이 때로는 힘겨웠지만, 그래도 지금 보면 재밌는 추억이라고 했다.

C는 현재 자취 생활을 청산했다. 만약 다시 자취를 한다면, 월세 아깝다고 집 안에만 있지 않고, 바깥 경험을 많이 할 것이라고 했다. 현지 여행도 많이 가고, 국제교류 프로그램에도 많이 참여할 것이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혼자 밤에 영화를 보러 가고, 노래방도 갔던 기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했다. C는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자유는 비싸다. 비싼 만큼 충분히 즐겨라."

자취 선배인 이들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새둥지 자취생 이야기'에 대해 여러 조언을 해줬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취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밥을 시간 상관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단점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혼자서 레시피를 보면서 요리를 해먹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단하다. 본가 생활과 자취 생활에 차이가 없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친구들을 초대하기 시작하면 집이 타인의 아지트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선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은 말했다. 정말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낀 때는 성인이 됐을 때도, 첫 직장에 출근했을 때도 아닌 '홀로 살기'를 시작했을 때라고. 혼자서 고지서를 받아 보고, 집주인과 얘기하고, 접시를 깨뜨려 혼자서 그걸 치우고 있을 때 자신이 성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주머니가 탈탈 비어 컵라면으로 때운 기억도 시간이 지나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 '자유는 유료다'를 외치는 자취생들은 지금도 자신의 둥지를 짓기 위해 나뭇가지를 주워 담고 있다.

태그:#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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