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네 야구
  동네 야구
ⓒ 정무훈

관련사진보기


아! 또 홈런이다. 나의 실투로 초등학교 4학년 조카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다. 어린이팀 선수가 신이 나서 베이스를 돌며 환호한다. 스코어는 13:12. 어른팀이 역전패 당했다. 분하다. 오늘 게임은 나의 실투로 졌다. 경기에서 역전 당한 패전 투수는 저녁 노을을 등지고 서서 무겁게 고개를 떨군다.

초딩 둘, 아저씨 둘... 우리만의 리그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다. 프로야구 중계 방송은 소파에 누워 간식을 옆에 두고 혼자 목소리 높여 보는 게 제맛이다. 야구장에 가서 실제 경기를 직접 관람하며 치맥을 한다면 바랄 것이 없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응원 소리와 함성은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흥분과 짜릿함 그 자체다. 그렇게 눈과 입으로 야구를 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그라운드를 헥헥 대며 달리는 야구 선수가 되었다.

야구의 시작은 초등학생 아들과 가볍게 주고받는 캐치볼 놀이였다. 그런데 집안에서 아들과 캐치볼을 하다가 다른 가족들의 불만과 성화로 결국 아파트 공터로 나가게 되었다. 아파트 공터에서 하는 캐치볼이 지루해지자 플라스틱 야구 배트와 고무공을 사서 투수와 타자를 번갈아 하며 타격 연습을 했다.

그러다가 옆 아파트에 사는 동서와 조카가 상대 팀으로 정해지면서 본격적인 동네 주말 야구 리그가 시작되었다. 초등학생 두 명으로 결성된 아이팀과 사십대 아저씨 두 명으로 구성된 어른팀이 야구 주말 리그를 뜨겁게 달구었다.
 
 동네 야구
 동네 야구
ⓒ 정무훈

관련사진보기

 
처음에는 어른팀이 어린이팀을 가볍게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경기가 거듭될수록 어린이팀 실력이 향상되고 점점 대등한 경기가 진행되었다. 어린이팀은 주중에 꾸준한 연습을 했고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실력이 빠르게 향상되었다. 반면 어른팀은 회사 업무의 피로와 나이 탓에 경기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어른팀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매 경기 있는 힘을 다했다.

주말 한낮의 아파트의 공터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가득했다. 심판이 없어서 스트라이크와 볼, 세이프와 아웃의 판정으로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소속 팀이 경기를 역전하면 흥분해서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보드 점수판을 만들어 안타와 홈런, 타점을 기록하고 그날의 MVP를 정했다. 벚꽃 잎이 날리던 봄과 아이스크림 사 먹으며 경기하던 뜨거운 여름, 붉게 물든 단풍잎을 밟으며 달리던 가을, 흰 눈이 날리는 겨울에도 야구 경기는 계속되었다.
 
  동네 야구
  동네 야구
ⓒ 정무훈

관련사진보기

 
이겨도 져도 야구가 재밌는 이유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에 야구 시합이 있기 때문에 주말이면 늦잠을 자던 버릇도 금요일 밤에 과음을 하던 습관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사회 활동이 제약을 받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주말 동네 야구 경기는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집 안에 야구 장비도 하나씩 늘어났다. 왼손잡이인 나를 위해 성인용 왼손 글러브를 큰마음 먹고 샀다. 투수들이 사용한다는 로진백을 사고 튼튼한 야구 베이스도 구입했다. 포수가 없어서 포수를 대신할 포수망을 구입하고 여분의 고무공과 플라스틱 배트도 구입했다.

월요일에 회사에 출근하면 허리와 어깨 통증으로 혼자 끙끙거리며 돌아올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야구 경기를 끝내고 같이 음료수를 나눠 마시면 일주일의 피로가 풀린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뛰어놀다 보면 잊었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리모콘을 누르고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던 주말이 어느덧 뛰고 달리는 야구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경기에서 아이팀이 이긴 날에 집에 돌아오며 신이 난 아들에게 물었다.

"야구가 뭐가 재미있니?"
"야구는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어서 재미있어. 그래서 지고 있어도 열심히 하게 돼." 
"경기에서 지면 속상하지 않아?"
"물론 아쉽지만 괜찮아. 다음 경기가 또 있잖아."
"그리고 내가 못 해도 우리 팀 선수가 잘 하면 이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반대로 내가 잘하면 우리팀이 못 해도 이길 수 있잖아."

 
  동네 야구
  동네 야구
ⓒ 정무훈

관련사진보기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아이를 통해 다시 배운다. 야구가 재미있는 이유가 단순히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 경기에 몰입하며 즐겼기 때문이다. 혼자만 잘살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웃는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네 야구 리그는 전체 구단수 2팀, 총선수 4명이다. 하지만 매주 손에 땀을 쥐는 주말 명승부를 펼친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프로 투수의 투구폼 강습 동영상을 보며 이번 주말 투수석에 서서 멋진 자세로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호쾌하게 공을 던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아! 글을 쓰고 있으니 어깨가 근질근질하다. 또 야구하고 싶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하루를 일상 여행자로 틈틈이 일상 예술가로 살아갑니다.네이버 블로그 '예술가의 편의점' 과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서 <그림작가 정무훈의 감성워크북>이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