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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황토밭에 고구마 순 심기.
 황토밭에 고구마 순 심기.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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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관한 이야기는 쓰면 쓸수록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공교롭게도 연재를 마치는 지금, 터키를 여행하고 귀국할 때와 코로나 상황은 비슷한 것 같다(아니 애초부터 변한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를 잠깐 언급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올해 1월, 터키에 도착했을 때는 코로나바이러스19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중국인은 입국 금지였다. 귀국하기 3일 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연이어 확진자 숫자가 무섭게 치솟았고 이 모든 소식은 세계가 공유하는 듯했다.

평상시 이스탄불 시내에서 트램이나 페리를 탈 때면 동양인은 '나' 혼자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어떤 시선에도 개의치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고 동양인 혐오감에 대한 폭력 사태 등이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자, 괜스레 위축되었다.

동네 슈퍼에 가는 것 외에는 내 방에서 여행기를 정리해야 했다. 이미 둘러볼 곳은 다 둘러봤다는 명분은 있었다.

마침내 2월 29일 오후 5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그 다음날인 3월 1일 오전 8시 50분 즈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그 비행기가 한국과 터키를 잇는 마지막 항공편이었다는 것을.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온 나는 셀프 자가 격리(그때는 강제 자가 격리가 아니었다)를 했고 학교는 동영상 콘텐츠로 본격적인 비대면 수업에 돌입했다. 학교는 전 학기에 비하면 공동묘지와 다를 바 없었다. 떠들썩한 강의실도 축제도 그리고 학교 주변의 술 취한 새내기들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매일 다니던 수영장은 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리 하이킹을 좋아한다고 해서 매일 등산을 할 수는 없었다. 예전처럼 활발하게 사람들과 왕래할 수가 없었다. 멈춰진 일상에서 가까이 한 것은 유튜브의 세계였다.

유튜브의 넓고 깊은 바다를 스쿠버다이버가 되어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지방선거가 '건강하게' 끝났고 모 신문사에서는 코로나 시대의 여행자들에 관한 기사를 기획한다면서 기사를 써달라고 했다. 나는 어떤 의욕도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코로나 블루에 내가 갇힌 거라는 것을.

나는 '나'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뭔가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실천하기까지 꼬박 2주일 동안 결심을 반복하긴 했지만 드디어 구인광고란에 빨간 동그라미 친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선택한 그것은?

'밭일'이었다. 힘들 것이라는 것을 각오하긴 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일리야 레핀(Ilya Repin)의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김동인의 '감자'에서 등장하는 '복녀'를 무한정 배려하고 있었다.

새벽 4시 30분부터 일어나서 도시락 두 개를 쌌다. 점심은 주지 않는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입맛이 맞지 않아서란다. 약속한 대로 24인승 봉고차는 5시 30분에 집 근처로 왔고 나는 봉고차 실내 어둠속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차 안 사람들은 모두들 얼굴을 가리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장화를 신고는 잠에 빠져 있었다. 긴장한 나와 일행을 싣고 봉고차는 한참을 달려서 좁은 밭길로 들어섰다. 6시 27분. 그때부터 밭일이 시작되었다.

고구마 순 심기였다. 이미 만들어놓은 고랑에 고구마 줄기를 부대에 담아, 그 부대에 줄을 달아 허리에 연결하고는(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 오른손 검지로 고랑에 구멍을 내서 미리 왼손에 쥐고 있는 고구마 순을 넣고 흙을 다독여주면 된다.

능숙한 사람과 두 어 시간 정도 같이 해나가자 혼자서 어느 정도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혼자 해나갈 때는 옆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했고 간혹 잘못 심었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나는 해뜨기 전부터 해가 정수리를 지나 산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쉬지 않고 고구마 순을 부대에서 가지고 와서는 오른손가락으로 구멍을 내고 심고, 심고, 또 심고를 반복했다.

12시 전까지 나는 누구한테 전화를 해서 나를 좀 데리러 오라고 할까, 라는 생각뿐이었다.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후로 접어들자 어떻게 버텨온 시간인데, 절대 그만둘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날 나는 트레킹화(장화를 신어야하는 줄도 몰랐다)에 붉은 황토 흙을 더덕더덕 붙여가면서 장갑과 옷들을 밭고랑에 비벼가면서 구부린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손가락에 마비가 올 정도로 고랑을 팠다.

마침내 오후 5시까지 버텨냈다.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는 반장이 하루 일당 6만 5천원을 주었다. 그것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고 집에 와서는 구깃구깃한 그것을 책꽂이에 올려놓았다. 다음 날 일어나긴 했지만 거의 기다시피 움직여야 했다. 온 몸의 근육이 아우성을 쳐댔다.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

그로부터 3일은 움직일 때마다 속으로 신음을 터트려야 했지만 그 뒤로 이틀을 더 갔다. 최소한 사흘은 해보고 싶어서였다. 잘한 일이었다. 첫날이 힘듦에 집중했다면 두 번째 날은 20대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타국살이가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태국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없다면 농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만 같았다(한국인과 똑같은 임금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날은 대농장주의 '다그침'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밭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식적인 작업시간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하지만 새벽 5시 30분에 봉고차를 타야 작업장까지 갈 수 있다. 도시락 두 개를 싸기라도 하려면 4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식사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라고 했지만 밥을 먹기가 무섭게 밭으로 불러들였다. 대체적으로 식사를 느긋하게 하는 외국인은 식사를 마치기도 전이었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였다. 3시부터 약간의 새참(초코파이와 두유) 시간이 주어지고는 5시 마감까지 그야말로 힘든 노동의 시간이었다. 농장 노동자들을 모집하는 반장(중간단계)이 하루 일당의 얼마를 가져가긴 하겠지만 농장주가 하루 현금으로 챙겨야할 금액은 천만 원은 훨씬 웃돌아 보였다.

반장 한 명이 각각 25명씩 모집한다고 가정하면 반장이 4명이니 100명 정도는 되었다. 그 외의 보이지 않은 곳에도 고구마 순을 가려내는 사람들과 농기계… 그는 만만치 않은 현금을 봄에 투자하지만 가을에 확실하게 걷어 들일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터. 하지만 100명의 인부를 다그쳐서 일주일 노동량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천만 원 이상을 남기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이번 가을에도 봄에 만난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 블루에 시달려서가 아니다. 실은 내가 심은 고구마를 수확하고 싶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고구마는 거의 끝나 가는데 우리는 일당이 좀 더 센 양파를 심으려고 전라북도 순창으로 왔다고.

첫 느낌을 찾아서 제주도 한 바퀴

세상은 참 넓다. 하도 넓어서 나는 '내'가 보려는 것만 보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간혹 잊곤 한다.

밭일 또한 내게는 일종의 여행이었다(밭일에 관한 '사회 문제적 시각'은 일단 내려놓는다). 그곳에서 깨달은 아주 소중한 것들을 영원히 간직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대한 겸손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를, 코로나 블루를 앓는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감정인가를 평생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에는 제주도를 걸어서 한바퀴 돌아보려고 한다. 2016년, '걷기'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걸었던 곳이 제주도 올레길이었다. 그때의 감정들을 되새기면서 다시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갖고 싶다.  
 
제주도 올레길 화살표. 파란색은 정방향, 주황색 화살표는 역방향을 가리킨다.
 제주도 올레길 화살표. 파란색은 정방향, 주황색 화살표는 역방향을 가리킨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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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태그:#여행 ,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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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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