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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통령님. 몇 달 전부터 우한에서 살게 된 저는 최근 한 교민의 집에서 대통령님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 격리생활 하던 중 대통령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격려편지가 그 집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이른바 '우한 전세기' 사건. 고군분투하며 전세기를 마련해 교민들과 가족을 태워 보낸 뒤 눈물을 쏟았단 정다운 전 우한 영사님의 SNS글과 그에 대한 대통령님의 격려전화 관련 기사에 많은 국민은 댓글로 감동을 표했습니다. 당시 기사에서 제가 만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대한민국의 의지였습니다. 대통령님의 편지를 간직한 그 교민 역시 "그때 정말 나라가 나를 지켜주는구나 느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 저는 요즘 대한민국의 국민 보호가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최근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로서 저는, 하루 확진자 천 명이 넘는다는 한국에서 바로 다음 달인 1월 5일부터 진행될 제10회 변호사시험이 걱정스럽습니다. '변호사시험장이 무슨 코로나 배양소냐'는 로스쿨생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 허투루 들리질 않습니다. 법무부의 현 방침대로 이번 시험이 치러지면 정말 코로나가 대확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변호사시험이, 수천명이 4박5일간 하루 10시간씩 시험용 법전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치러지는 시험인 한편, '확진자 응시 금지'와 '응시 횟수 제한'이 모두 적용되는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수능시험에서 확진자는 병원이나 생활치료시설에서 시험을 치렀지만, 변호사시험에서는 임용고사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확진자는 응시 금지'입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그 응시금지가 된 확진자에게도 '변호사시험 5년내 5회 응시 기간·횟수 제한'(변호사시험법 제7조)을 적용한단 입장입니다. 수능시험처럼 병원에서 시험볼 수도 없는데, 임용고사 등처럼 무제한 응시 기회를 가질 수도 없다니.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징후를 느끼는 수험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검사받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게 방역당국의 답이겠지만 당장 1/5의 응시횟수가 날아가게 생긴 이들로서는 특히 이번이 평생의 마지막 변호사시험인 이들로서는 다른 답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가 의심돼도 해열제 먹고 끝까지 시험보겠다. 그럼 시험 중 내가 쓰러질 수도 있고, 나 때문에 가족이 또 같은 교실의 누군가가 감염될 수도 있지만..."과 같은 로스쿨 커뮤니티 속 얘기들은 의미심장합니다.

대한민국이 우한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전세기를 띄운 것은 전염병 재난 상황에서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최대로 보호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곧 있을 변호사시험에서 '확진자의 응시 금지'와 '응시 기회 제한'이 맞물리며 코로나 징후를 감추고 시험을 치를 이들까지 예상되는 등 큰 피해가 우려됨에도 어째서 우리 정부는 이에 관해선 이토록 무심한 것인지요?

대안과 관련해, 로스쿨생들 중엔 종전 행정고시처럼 코로나 안정기 이후로 시험을 연기해야 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충분히 고려해볼 사항입니다. 연기 불가라면 확진자는 병원 등에서 시험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임용고사 등과의 형평성 문제는 '응시 기회 제한'으로 설명가능하며 이는 여러 변호사단체의 공통주장입니다. 또 그것이 재정상 곤란하다면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의 응시 횟수 차감 배제 (변시법 제7조 적용 배제)'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헌법 제76조 제1항의 '천재지변에 대응한 법률의 효력을 갖는 명령'과 같은 국가긴급권을 발동해서라도 말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시까지만이라도 응시 횟수 차감을 멈춘다면, 현 법무부의 '확진자의 응시 금지'가 수험생들의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긴 해도 이후 법정다툼을 불러올 침해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겁니다. 또 응시자들 중 코로나 징후를 느끼거나 시험장 감염이 걱정되는 이는 이번 시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어 한층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겁니다.

코로나 첫 집단발원지 우한이 오히려 안전하고 한국의 상황이 힘들어진 현재가 말할 수 없이 아이러니하고 안타깝습니다. 더욱이 코로나 공포 속에서 선배·동기·후배들이 치를 제10회 변호사시험이 코앞인데 그저 확진자 응시 금지와 시험장 창문 열어놓기 등만으로 대응하는 법무부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만 보는 것은 너무도 괴롭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 재난 상황에 진정으로 적합한 변호사시험 운영방안이 마련되어 대한민국이 국민 단 한 사람의 건강도 포기하지 않는 나라임을 다시금 보여주시길 대통령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법률저널>에 중복송고합니다.


태그:#코로나와 변호사시험, #코로나 대확산 우려, #제10회 변호사시험, #우한,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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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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