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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드게임
 보드게임
ⓒ Nintendo Sw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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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가지 보드게임을 샀다. 정확히 말하면 51가지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디지털 게임팩을 샀다. 코로나로 인해 홀로 연말을 보내야 하는 자취생의 선택이었다.

학생일 때는 화려한 이펙트가 나오는 온라인 액션 게임을 많이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게임을 멀리 하게 되었다. 직장인이 되니 힘이 부치기도 하고, 캐릭터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눈이 금방 피로했다. 부모님께 취미 삼아 할 만한 귀여운 게임을 보여드렸을 때, 복잡하다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던 것이 생각났다. 게임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았다.

게임과 멀어져갈 때 즈음, 이 게임팩을 발견했다. 이것은 51가지 보드게임을 보관할 만한 공간도 필요하지 않았으며, 친구들을 모을 필요도 없었다. 재빠른 손기술도 필요 없다. 그냥 주사위를 던지고 말을 움직이면 된다. 규칙도 다 알던 것들이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 단순해서 돈이 아까웠겠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이 부담을 덜게 했다.
 
 만칼라
 만칼라
ⓒ 닌텐도 스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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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보드게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게임은 만칼라(Mancala)다. 아프리카에서 유래된 게임으로, 아랍어로 '이동'을 뜻한다. 말 그대로 구슬을 이동시키는 게임이다. 2개의 대형 칸과 12개의 작은 칸에 번갈아 가며 구슬을 반시계방향으로 1개씩 담는다. 내 쪽의 비어 있는 칸에 마지막 구슬 1개가 들어가면 상대방 칸의 구슬을 가져올 수 있다.

누구 한 쪽의 칸들이 모두 비워지면 차지한 구슬의 개수를 세서 많이 가져간 쪽이 승리한다. 구슬을 이동시키는 것이 전부인 단순한 게임이지만, 1수, 2수 앞을 미리 내다보지 않으면 한순간에 역전될 수 있어 집중해야 한다. 고대 아프리카 일부 부족들이 이 게임으로 족장을 뽑았다고 한다.

이 게임의 특징은 운이 필요치 않고 오로지 상대방의 수를 내다볼 수 있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계란, 씨앗 등으로도 게임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곳간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족장을 원하는 부족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방석을 깔고 앉아 구슬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게임에 집중하다 보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도트앤박스
 도트앤박스
ⓒ 스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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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트 앤 박스(Dots and Boxes)도 자꾸 손이 가는 게임이다. 학생 때 이미 수도 없이 해 본 게임이었다. 수능을 치고 난 고3 2학기, 가장 한가하다는 시기에 교실은 조용했다. 학생의 반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자기 바빴다.

심심했던 찰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펜을 들고 종이에 점을 여기저기 찍었다. 그리곤 번갈아 가며 선을 그려 삼각형을 많이 만드는 대결을 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펜과 종이를 버리고 급식실로 질주했다.

그 단순한 게임이 이 게임팩에 들어 있었다. 심지어 그때는 우리가 발명했다 생각했는데, 발명가는 따로 있었다. 19세기 프랑스 수학자 에두아르 뤼카다. 원래 이 게임은 삼각형이 아닌 사각형을 그리는 게임이다.

번갈아 가며 직선을 그려 정사각형을 많이 만든 사람이 우승이라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오묘한 수학적 법칙이 들어 있다. 격자가 상자 고리로 채워졌을 때, 더블크로스 개수 합에 격자의 점 개수를 더한 값을 알면 승패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조금의 법칙만 알면, 무조건 이길 수 있는 패턴이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우리는 그런 수학적 계산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작은 영역 싸움을 하며 색칠한 도형들은 나중에는 제법 멋진 하나의 예술적인 그림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점과 상자 속에서 내 영역을 색칠해 나가는 이 게임은, 나의 학창 시절과도 닮아 있었다.
 
 보드게임
 보드게임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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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다. 당장 부루마불처럼 게임머니가 오고 가는 게임도 그렇고, 장기와 체스처럼 전쟁의 역사를 담아 놓은 게임도 있다. 더 단순하게 들어가자면, 어릴 때 나뭇가지 하나를 모래 성에 꽂고 나뭇가지가 쓰러지기 전까지 모래를 뺏아가는 게임도 그렇다. 처음엔 과감하게 모래를 확보하다가, 위기 상황이 닥치면 너도나도 신중하게 적은 자원을 최대한 긁어낸다. 나뭇가지가 쓰러지면 한쪽은 탄식하고, 한쪽은 환호한다.

게임만큼 단순하고 솔직한 것이 있을까. 삶도 때로는 게임처럼 과감하게 주사위를 던질 필요가 있다. 어차피 전진만 하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삶의 묘미가 아닐까.

부모님께 보드게임 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냈더니, 웬일로 관심을 보이셨다. 저거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아, 엄마아빠는 게임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게임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부모님과 보드게임부터 한번 해야겠다. 영원하라, 클래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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