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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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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자의 길은 험난하다. 그만큼 시련과 고초가 따르고 결단이 요구되기도 한다.

단군성조가 터를 닦은 무궁화 강역은 왜놈 천지가 되고 국제정세 또한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동물의 왕국이었다.

1916년 8월 4일(음) 나철은 서울의 남도본사를 떠났다. 김두봉ㆍ엄주천ㆍ김서종ㆍ안영종 등 대종교 중진과 역시 교단의 간부인 사촌동생 나우영과 조카 나정완과 함께였다. 일반 교우들에게는 구월산 삼성사의 봉심(奉審)에 참여한다는 이유를 댔다. 실제로 이 행사는 예정돼 있었다. 

일행은 황해도 사리원에서 숙식하고 6일 50리 길을 걸어 7일에야 구월산 단군사당에 이르렀다. 돌보는 이 없어서 사당은 황폐화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청소와 수리를 마치고 진행된 경배행사에는 인근 주민들도 다수 참여하였다. 수행원 중 김두봉은 대종사가 교도들에게 보내는 사찰을 지니고 먼저 서울로 떠났다. 

8월 14일 대종사는 목욕하고 손톱을 깎으신 후 새옷으로 갈아입으시고 다음날 가배절(추석)에 드릴 제물과 동제천의(同祭天儀)에 고유할 진유문(秦由文) 및 악장(樂章) 등을 일일이 정성껏 준비하여 깨끗하게 힘쓰시었다.

15일은 곧 가배절이라 자시(子時) 정각에 단의식(檀儀式)을 거행하시니 삼신께 합하여 제사를 드림은 이번이 처음이며 또 진설된 제수가 전날 나라의 제전과 같지 않았다. 이날 단의식에는 전동 마을에서 새로 입교한 교우 31명이 참예하였다. (주석 6)

 
사직공원 안에 있는 단군상
▲ 단군상 사직공원 안에 있는 단군상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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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배절 행사에 나철이 지어 봉독한 「진유문」이다.

진유문(秦由文)

엎드려 생각건대 아사달메는 곧 한배께서 한울에 오르신 곳이라. 우리 한배는 한님이시니 한울에 계셔서는 같은 한얼이시오 인간에 계셔서는 가른 성인이시라. 이른바 삼성(三聖)은 곧 세검이오 세검이 곧 한얼이시다.

비로소 홍몽이 열리자 이에 태백산에 나리사 나라를 세우시며 교문을 열으시고 이 겨레를 교화하신지 217년에 도루 하늘에 오르시니 빛나게 우에 계시어 밝게 아래로 살피시거늘 이 사당(祠堂)은 지난 세상에 제사를 받들었고 한얼을 위하여 향불로서 공경을 다 하려니 어쩌다가 수백년 앞부터 교문이 닫기고 지금 수십년 동안에 예의까지 없어져서 한얼과 사람이 서로 느끼는 길을 끊었더니 얼마나 다행하게 한울 운수가 돌아와서 한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깨우치사 대종교가 다시 일어난지라. 

철(喆)이 비록 어리석어 같지 못하나 몸을 이 교문에 바치어 널리 한울길을 베푸고 크게 뭇 사람을 건지므로써 제 책임을 삼은지도 이미 8년이라 어찌 감히 옛법을 앗으면서 승냥이와 수달의 의리로서 다하지 못할까?

또 하물며 맹서로 고한지라 다섯달 만에 특별히 한님의 사랑을 입어서 때를 정하고 뜻을 결단한 자일까?

철이 이게 우리 교도 김두봉ㆍ엄주천ㆍ안영중ㆍ김서종ㆍ나우영 나정원들을 거느리고 와서 마음을 재계하여 몸은 목욕하고 사당을 쓸며 위판을 고쳐서 개천한지 일흔두돌인 병진년 8월 보름날에 삼사히 맑은물 정한메를 갖추어 제사를 받들고,

한얼께 아뢰옵나니 엎드려 비옵건대 밝으시게 적은 정성을 살피시와 널리 억만 백성으로 하여금 한가지로 복리를 입고 다 대종교문에 들어와서 백대가 되도록 이울지 않게 하옵소서. 이것이 철의 지극히 바라는 바입니다. (주석 7)


나철에게 이승의 마지막인 추석날 구월산에서 열린 단의식 행사는 대종교의 고례에 따라 참령식ㆍ진폐식ㆍ진찬식ㆍ진유식ㆍ진악식ㆍ원수식ㆍ사령식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때에 수행원 누구도 대종사의 심중을 꿰는 사람은 없었다.


주석
6> 앞의 책, 190~191쪽.
7> 앞의 책, 192~19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태그:#나철, #나철평전, #홍암, #홍암나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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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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