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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의료처우) 처분을 받은 보호소년들이 정신과적 치료와 교육을 받고 있는 의료처우 시설이다.
▲ 대전소년원 7호(의료처우) 처분을 받은 보호소년들이 정신과적 치료와 교육을 받고 있는 의료처우 시설이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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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가명, 15세)는 7호 처분(6개월 의료처우)을 받고 소년원에 수용되어 있다. 은주가 2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고, 6살 때 어머니 또한 사망해서 외할머니 슬하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였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기초학습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적응에 문제가 없었으나, 중학교 입학 후 또래들에게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면서 부적응을 보였다. 2학년 때 대안학교에 위탁되어 학업을 이어갔으나, 잦은 가출로 일탈행위가 심화되어 갔다.

외할머니는 은주의 어머니가 사망한 후 은주를 양육해왔지만, 우울증을 앓아 감정의 기복이 있어 훈육에 일관적이지 못했다. 최근에는 치매 증세까지 악화되어 사실상 은주를 훈육할 보호자가 없는 상태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은 은주는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서 수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현재도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다.

은주는 가출해서 알게 된 친구들과 어울리며 밤거리를 배회했다. 아는 오빠들에게 성매매를 강요받아 생활비를 마련했다. 하루 10회 가량 성인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졌고, 많게는 20회 이상 조건만남 성매매를 했다.

은주는 결국 우범소년으로 통고되어 소년부 법정에서 소년원 처분을 받았다. 우범소년은 죄를 범하지 않았지만, 성격이나 환경에 비추어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소년이다. (은주와 성매매를 했던 수많은 성인 남성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은주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관심을 요구할 때 자신의 손목이나 목을 뾰족한 도구로 긋는 자해를 반복했다. 선풍기 전선으로 목을 감다 적발되기도 했다. 은주는 담임교사와 상담을 하면서 불안정한 내면을 드러냈다.

"저 자신이 너무 싫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잠이 오지 않아요."
"할머니가 집에 혼자 계세요. 제가 치료받고 빨리 가야 해요."

은주에 대한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은 다음과 같다.

"현재 자살사고, 반복적 자해, 만성적 우울감과 충동성이 심한 수준이고, 안전한 환경에서 우울장애 등에 대해 집중적이고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일반 학교의 절반에 불과한 소년원생 급식비
  
선우와 강수가 군고구마통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며 불멍을 하고 있다.
▲ 군고구마 나눔 봉사활동 선우와 강수가 군고구마통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며 불멍을 하고 있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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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는 15살이지만, 초등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키가 작고 얼굴이 앳되다.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성장기 청소년들은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해야 신체적·정신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소년원생 1식 급식비는 1893원으로 일반 중학교 급식비 3783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여 성장기 청소년에게 충분한 영양을 제공하기에는 부족한 현실이다.

그래서 지난해 이맘때 필자의 사비로 군고구마통을 구입했고, 겨우내 봉사활동 학생들과 함께 장작불로 고구마를 구워서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관련기사 : 대전소년원 숲에 있는 군고구마통의 정체 http://omn.kr/1lyd7)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겨울이 오기도 전인 10월 초순부터 창고에 보관했던 군고구마통을 꺼냈다. 외부로 나갈 수가 없으니, 소년원 안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체험활동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 겨울 군고구마 봉사활동은 지난 기사(13살 새터민 소년은 왜 자해를 했을까 http://omn.kr/1qdiy )에서 소개했던 선우와 강수에게 시키기로 했다. 군고구마통을 꺼낸 첫날, 치유의 숲에서 열심히 나무를 옮기고 톱질을 해서 장작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교무과 사무실 앞에 군고구마 2박스 갖다 놓았어요. 올해도 따뜻한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작년에도 고구마를 후원해주셨던 여학생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끊자마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최 선생님! 군고구마 시작하셨다면서요? 저도 학생들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계좌번호 좀 불러주세요. "

지난 1월 정기인사 때 과천 본부로 가신 전임 교무과장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바로 전화를 주셨다. 다음 날, 사무실에 필자 앞으로 택배 상자들이 와 있었다. 교무과 담임 선생님과 감호 실무관 선생님이 사주신 고구마였다. 그 후로도 교무과 사무실에서 택배로 온 고구마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저,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 "

날씨가 제법 쌀쌀해질 무렵, 교무과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는데, 옆반 담임 선생님이 봉투를 내밀었다.

"어, 이게 뭐죠?"
"얼마 안 됩니다. 학생들 간식 사고 고구마 사는데 보태세요. "


사양할 틈도 없이 선생님은 봉투를 내 손에 쥐어주고 나가셨다. 올해 초, 코로나 19로 면회와 종교집회, 외부체험 활동 등이 중단된 이후 교감선생님이신 교무과장님, 계장님들과 담임 선생님들이 학생들 간식을 먹이라며 매달 필자에게 적지 않은 사비를 넣은 봉투를 건네주신다.

소년원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봉사활동 학생들이 만든 와플과 허니브래드로 직접 만든 축하 케이크
▲ 은주를 위한 생일 케이크 봉사활동 학생들이 만든 와플과 허니브래드로 직접 만든 축하 케이크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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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초, 은주가 생일을 맞이했다. 선생님들이 주신 돈으로 재료를 사서 만든 와플로 축하 케이크를 만들었다. 생활관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촛불 앞에서 은주는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했다.

소년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중 하나는 소년원에 수용되어 있는 보호소년이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일이다.

은주의 꿈은 모델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또래보다 키도 작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지만, 은주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인권적 처우는 은주의 자존감을 높여줄 것이다. 소년법 폐지나 개정을 통해 엄벌을 요구하는 여론도 있지만, 소년원에서의 재사회화 과정을 통해 교복을 입은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은 은주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줄 수 있는 따뜻한 연말이 되기를 바란다.

[보호처분]
1호.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하여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 위탁
2호. 수강명령
3호. 사회봉사명령
4호. 단기 보호관찰
5호. 장기 보호관찰
6호.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보호시설에 위탁 (6개월)
7호. 병원, 요양소 또는 소년의료보호시설에 위탁
8호. 1개월 이내의 소년원 송치
9호. 단기 소년원 송치 (6개월)
10호. 장기 소년원 송치 (2년)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태그:#소년법, #소년원, #촉법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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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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