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요?"라는 말을 듣습니다. '많이 나아졌을 것이다'는 확신을 갖고 하는 질문이라 맞장구를 쳐야 하겠지만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말문이 막히곤 합니다. 많이 나아졌냐는 질문에 숨이 막히는 이유입니다. 

2020년 이주인권 10대 뉴스를 공개합니다
 
 2020년 이주인권 10대 뉴스 관련.
 2020년 이주인권 10대 뉴스.
ⓒ 고기복

관련사진보기

 
1990년 12월 18일은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을 유엔이 비준한 날입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각국은 12월 18일을 세계이주노동자의 날로 선포하여 이주노동자 권익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국내에서도 해마다 12월 18일을 즈음해서 올해의 이주인권 10대 뉴스를 선정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전국 이주인권 단체 활동가들과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추천된 뉴스들을 모아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2003년부터 발표를 해 왔는데, 거의 매해 언급되는 뉴스를 보면 정치인들의 차별적 발언이나 정책들이 있습니다. 

2003년은 유엔인권위 회의에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던 해입니다. 당시 유엔인권위는 전 세계 인권침해 상황에 관한 의제별 토론에서 인종차별, 소수민족의 권리, 이주노동자,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증진, 개발권 신장 등의 의제를 다뤘습니다.

한편 2003년은 국내에서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 병행 실시를 골자로 한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이 제정된 해입니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리던 산업연수생제를 전면 폐지하지 않고 병행 실시하기로 한 부분에 대해 비판하며 고용허가제 전면 도입을 촉구했습니다. 외국인노동자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국회 앞을 시작으로 종로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 명동성당 앞, 성공회대성당 등에서 연수제도 폐지, 미등록노동자 전면 양성화, 고용허가제 실시를 촉구하며 거의 1년 내내 농성과 집회를 이어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당시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인 박상규 한나라당 의원이 '고용허가제 도입을 배후 조종하는 이들은 재야세력으로 외국인들을 뒤에서 뜯어 먹으려고 한다'며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대표들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이어 그는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가 자기나라 여자와 연애만 해도 바로 출국시킨다"는 등 인종차별적 언사로 비난을 자초한 바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규탄 집회가 이어졌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성명을 통해 "비도덕적인 언행이 시행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문제를 야기해 온 산업연수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하는 일의 장본인 격인 박상규 의원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며 강력 항의했습니다.

결국 박 의원은 "정제되지 못한 표현으로 인한 물의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서를 KNCC에 전달하며 한국사회에서 인종차별적 언사에 대해 정치인이 사과하는 첫 사례를 남겼습니다. 

2020년 이주인권 10대 뉴스 키워드는 배제와 차별이었습니다. 순위별로 보면 ▲외국인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 제한 헌법 소원 ▲이주민 재난지원금 배제 ▲이주민 공적 마스크 차별 ▲이주인권단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어업 이주노동자 실태 ▲임금체불 피해자에게 출국 요구한 법무부 ▲수해 이주민 80%가 이주노동자인데도 수해지원금에서 배제 등 차별적 정부 정책이 순위에 올랐습니다. 산업연수제 시절과 다를 바 없는 편견과 차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편견은 어떻게 각인되는가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미등록이주아동 청소년 기본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미등록이주아동 청소년 기본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 고기복

관련사진보기

 
편견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이나 생각을 말합니다. 흔히 '남자가, 여자가, 한국 사람은' 등의 말로 어떠한 일이나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견은 차별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차별은 어떤 기준을 두어 대상을 구별하고 다르게 대우하는 것입니다. 차별하는 사람들은 편견을 갖고 사람을 다르게 대우하면서도 그것을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편견은 어떻게 우리사회에 존재할까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연방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 전 의원은 미 대선이 끝난 며칠 후 공중파 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메릴린 스트릭랜드와 앤디 김, 두 한국계 정치인들을 향해 "순종이 아니다"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기분이야 좋지만 한국계라는 게 섭섭하다. 한국계와 한국 사람은 다르다. 여자분은 아버지가 흑인, 마땅히 한국계지만 100% 한국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부인도 아랍 계통이고 애들도 그렇고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100% 한국 사람이면 좋겠는데, 저같이 순종이면."

김창준 전 의원은 논란이 불거지자 곧바로 사과문을 발표했는데, 그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사과였습니다. 그는 "60년간 미국 생활을 하다 보니 단어의 뉘앙스를 잘 파악하지 못해 적절하지 못한 단어 표현을 한 데에 상처받은 분들이 있다면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입장 표명했습니다.

김창준 전 의원은 스스로 말하기를 60년간 차별과 편견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져왔던 사람입니다. '한국계와 한국사람'이 다르다고 명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이 '60년 미국생활'을 핑계 삼아 '상처받은 분들이 있다면'이라고 한 조건부 사과는 하지 않음만 못했습니다. 김 전 의원은 60년이라는 세월을 해외에 체류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굳건하게 갖고 있음을 내심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서 '순혈주의', '혈통주의'를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정치인으로 성공한 의원도 편견의 대상이 되고, 그 편견을 드러내는 사람이 유력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편견을 쉽게 드러내 왔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주민 222만 명, 전체 인구 4.3%에 달하는 대한민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라고 강조하지만 여전히 100% 순종을 부르짖으며 순혈주의를 추구하는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 이주민이 편견의 대상이 되고, 차별을 받는 사실은 굳이 논증할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라도 불편할 수 있듯이 김창준 전 의원은 차별을 겪었던 당사자도 차별적 행위와 발언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당사자가 좋은 뜻으로 뜻하지 않게 했다 해도 무의식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주아동' 한국인인지가 중요합니까? 

'한국에서 자란 몽골 아동은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이런 기사 제목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한국에서 자란 외국 국적 아동은 한국인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한국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제목은 이주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좋은 뜻으로 말하고자 했지만 아동이 아닌 국적에 방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불편합니다. 아동의 권리를 왜 꼭 '외국인', '한국인'이라고 하는 국적에 방점을 두어 이야기해야만 할까요?

대한민국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주아동이 '국민'이 아니라 해도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갖고 있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개인'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8세 미만 모든 사람을 아동이라 정의하고,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인종, 국적 그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아동은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을 세우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 또는 민간, 사회복지기관, 법원, 행정당국 또는 입법기관에 의하여 실시되는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서 아동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을 표명합니다. 아동의 권리를 지키고 실현시키는 일은 정부, 비정부, 국제기구, 가정, 학교를 망라한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의 책임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국적이나 정체성이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몽골 아동은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표현 속에는 한국인의 우월적이고 호혜적인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국적은 물론 정체성이 몽골인이라 해도 아동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에서 권리를 갖습니다. 헌법과 국제법이 말하는 아동의 권리에 따르면 이주아동이 한국인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훗날 이주아동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살지 모릅니다. 물론 한국에서 자란 이주아동들 중에는 본국을 숨기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그런 열등감을 심어준 건 한국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입니다. 아동들이 모국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초중고대학을 한국에서 졸업하고 국적까지 바꿔도 외국인 취급을 하는 한국 사회 인식은 국제규범에 못 미칩니다. 

이주노동 보고를 하면서 아동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주'라는 범주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기 때문인데요. 정체성이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동'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우선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뜻으로 하는 무의식적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이 기자의 최신기사 세금 낼 권리를 달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