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5 17:40최종 업데이트 20.12.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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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춘 인천시장이 10월 14일 부평미군기지에서 열린 '2020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개방행사'에서 국방부로부터 전달받은 열쇠로 자물쇠를 풀고 있다. ⓒ 인천시

 
지난 11일 주한미군기지 12곳을 반환하는 합의가 체결됐다. 이로써 서울 여의도 면적의 절반 가까운 토지를 되찾게 됐다. 이에 따라 2002년 연합토지관리계획 및 2004년 용산기지 이전협정에 따른 기지 80곳 반환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르게 됐다. 아직 돌려받지 못한 기지는 12곳이다.

반환되는 기지 중 일부는 부동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난제가 있다. 이 땅을 이용하려면 오염부터 제거해야 한다. 수십 년간 누적된 오염 실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美國)의 군대가 떠난 자리가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점은 2002년 이전에 반환된 미군기지들에서도 나타났다. <저스티스> 2004년 10월호에 실린 채영근 한국항공대 교수의 논문 '주한미군기지의 반환과 미국의 환경정화책임'은 "과거 1990년대 초 미국이 반환한 미군부대 기지 내의 환경오염 실태에 관하여 국립환경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토양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이미 드러난 바 있었다"라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국립환경연구원이 캠프 이즈벨, 캠프 리비, 캠프 에임즈 등 1992년에 미군이 철수한 지역 내의 토양과 지하수 오염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납과 카드뮴 등 중금속에 의한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기지 주변에서도 기름띠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등 벼의 성장도 좋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가 한국에서만 제기된 것은 아니다. 미국 내부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1997년에 <서울 국제법 연구> 제4권 제2호에 실린 최승환 경희대 교수의 논문 '주한미군기지로부터의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법적 구제'에 따르면 1991년 8월 미국 의회 일반회계감사국이 하원 정보활동위원회 '환경에너지 천연자원 소위원회'에 "주한미군기지와 주변의 토양·지하수·하천·항구 등이 제트연료·폐유·유기용제·페인트폐기물·살충제·석면·시안화물·중금속 및 낡은 군수품 등과 같은 맹독성 화학폐기물로 심각하게 오염"돼 있다고 보고했다.

이런 문제는 세계 곳곳의 미군기지에서 나타났다. 일반회계감사국은 해외 기지 10곳의 환경오염 정화에 수억 달러가 들 거라고 추정했다. 1991년 화폐가치로 '수억 달러'였다는 점, 미국이 자국 군대의 환경오염 책임을 축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미군기지 전체의 환경오염에 대해 미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이 될 수도 있다.

필리핀도 독일도 

이런 곳 중 하나가 필리핀(比律賓) 미군기지였다. 1997년 4월 4일 자 <경향신문> '비(比) 전 미군기지 환경오염 심각'은 "필리핀의 일간 <투데이> 지는 '과거 필리핀의 미 해군기지인 수비크와 공군기지인 클라크 일대의 토양·수질오염이 심각한 상태'라며 '이들 2곳의 정화 작업에만 각각 1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다"라고 보도했다.

필리핀 미군 기지가 오염된 원인 중 하나는 관리 부실이었다. 환경에 대한 미군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위 기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신문은 특히 수비크의 경우 미군 주둔 당시 지상에 2백만 갤런, 지하에 7만 4천 갤런의 기름을 저장할 수 있는 84개의 탱크가 있었으며, 이 가운데 76개는 25년 이상 된 낡은 것이었으나 지금까지 단 한번의 검사도 받지 않은 채 방치돼 왔다고 지적하고, 여기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토양과 수질을 극도로 오염시켰다고 전했다.
 
탱크에서 기름이 유출돼 인근 지역으로 흘러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25년간 단 한번의 검사도 받지 않은 탱크가 84개 중에서 76개였다.

동일한 문제가 유럽 미군기지에서도 나타났다. 1993년 6월 15일 자 <한겨레> 기사 '독일 미군기지 환경오염 극심'은 "독일 내 미군기지 주변의 환경오염이 극심해 정화 비용만도 30억 달러(약 2조4천억 원)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고 독일 시사 주간지 <포쿠스> 최근호가 보도했다"면서 이렇게 알려준다.
 
<포쿠스>는 1백 쪽에 이르는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 등을 인용해, 분류 표시도 없는 각종 독극물 용기가 새거나 녹슨 상태로 있으며 폐유·항공유와 각종 용제가 토양을 오염시키고 맹독성의 세척제와 중금속이 지하수에 흘러드는 등 거의 모든 기지가 '환경의 시한폭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독일은 식수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 미군은 그런 독일의 수자원까지 더 오염시켰다. 위 기사는 "칼루스에 기지에선 32만 ℓ의 디젤유가 지하수에 흘러들었고, 만하임의 경우 35만 주민이 마시는 물의 오염이 우려되는 것으로 지적했다"라고 한 뒤 정화 비용 30억 달러에 대기오염 정화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매우 위험한 상태"

미군에 의한 환경오염은 20세기 중반부터 만연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세계 곳곳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미·소 냉전이 와해하고 탈냉전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문제가 불거졌다. 1991년 5월 17일 자 <한겨레> 9면 기사는 "냉전 구조가 허물어지면서 군대가 환경에 끼친 엄청난 피해 실상이 미국·소련·동유럽 등에서 착착 드러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1991년에 미국 의회 일반회계감사국이 주한미군 환경오염을 분석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미국의 위세가 대단하던 시절에는 미군 부대 환경문제를 제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이 문제가 제기된 것은 탈냉전으로 인해 미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군사적 의존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 해체를 계기로 미국은 유일 최강국의 기분을 만끽했지만, 바로 그 시기부터 세계 각국이 환경오염을 무기로 미군 부대에 간섭할 수 있는 근거가 축적됐다. 훗날 이 문제에 근거한 세계 각국의 채권 청구가 미국을 괴롭힐 여지가 싹텄던 것이다. 
 

"부평 '캠프마켓'" 주한미군 기지로 사용돼 온 부평 '캠프마켓'이 우리나라로 반환되어 10월 14일부터 일반에 개방된다. 사진은 부평 '캠프마켓' 모습. ⓒ 인천시

 
그런데 1990년대부터 생겨난 이 현상은 미국의 위상 약화뿐 아니라 대중과 군대의 역학관계 변화도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시기에 미국은 해외 기지뿐 아니라 국내 기지의 환경오염 때문에도 비판을 받았다.

1994년 4월 22일 자 <한겨레> 기사 '미군기지 오염 심각'은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의사들'이란 이름의 미 의료인 단체가 하원 군사위원회 군사설비소위 청문회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육상 군기지 1만 1천 곳 이상이 오염됐으며, 이 가운데 약 1백 곳은 '매우 위험한 상태'임을 시인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보도했다. 이렇듯 미국 민간인들까지 나서서 자국 내 군사기지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 이외의 국가들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제목이 '군대가 지구 최대 오염원이다'인 위의 1991년 5월 17일 자 <한겨레> 기사는 "걸프전쟁과 같은 전쟁행위가 아니더라도 군대는 방사능과 독성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과 에너지 낭비 등으로 이미 '지구 최대의 오염원'으로 지탄받기에 이르렀다"라면서 서유럽과 동유럽의 군부대 환경오염 실태를 소개했다.

군대보다 우위에 있는 대중

왕조국가들은 군대를 통해 대중을 통제했다. 군대를 앞세워 대중의 반란을 제압했을 뿐 아니라 대중을 병사로 징발해 일생 동안 묶어놓았다. 조선의 경우에도 16세부터 60세까지의 남성은 일평생 병역의무를 져야 했다.

그렇게 군대에 얽매였던 대중은 형식상으로나마 국민국가가 등장한 뒤로 군대에 대한 공격에 착수했다. 대중의 무기는 '민주화'나 '인권'이었다. 대중은 이런 무기를 바탕으로 소수 지배층의 도구였던 군대를 다수 국민들의 도구로 바꾸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러다가 1990년대 탈냉전 시대에는 '환경문제'라는 새로운 무기가 추가됐다. 지구를 파괴할 뿐 아니라 지구를 오염시키기도 하는 군대를 향해 대중이 환경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민주화·인권에 이어 환경 문제 역시 대중이 군대를 바꾸는 소재로 활용됐다. 군대 앞에서 벌벌 떨던 대중이 '깨끗하게 사용하라'며 군에 대해 간섭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대중이 군대보다 우위에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주한미군기지 반환과 함께 제기되는 환경오염 문제는 방위비 분담금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대규모 손해배상채권을 미국에 행사할 수 있는 사안이다. 동시에 탈냉전 이후 미국의 위상 약화와 더불어 대중과 군대의 역학관계 변화를 반영하는 사안이다. 한·미 간의 문제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인류사적 의미를 갖는 역사적 쟁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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