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4 15:03최종 업데이트 20.12.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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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붉은 흙을 아침부터 연신 퍼나르고 있다. ⓒ 최병성

 
이른 아침부터 줄지어 들어오는 덤프트럭에 포클레인이 연신 붉은 흙을 퍼담는다. 공사장 너머로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배들이 보인다. 여기는 경남 창원시 진해항 바로 옆 철책으로 둘러싸인 공터다.
 

경남 창원 진해항 인근의 공터에서 아침부터 트럭들이 흙을 실어나가고 있다. ⓒ 최병성

 
찬바람 부는 지난 4일 아침, 진해항 인근에 잠복해 흙을 싣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10여 대의 덤프트럭 자동차번호를 촬영한 후 트럭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화물의 최종 목적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진해에서 출발한 트럭들은 진해 IC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한 뒤 두 시간을 더 달려 경주IC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경주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경주 시내를 통과하니 포항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포항 이정표가 나타났지만, 포항도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트럭들은 동해안을 끼고 계속 달렸다. 울진과 영덕을 지나쳤다. 진해를 출발한 지 벌써 4시간이 넘었다. 그러나 트럭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오후 4시 10분, 드디어 트럭들이 강원도 삼척의 커다란 공장으로 들어갔다. 진해에서 10시 30분에 출발하여 무려 5시간 40분 만에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속도가 느린 트럭을 5시간 넘게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덤프트럭에 실린 의문의 흙

트럭들이 들어간 곳은 강원도 삼척에 있는 '삼표시멘트'였다. 저 붉은 흙의 정체가 무엇일까? 이렇게 먼 거리를 대형 트럭으로 운반하려면 운임 비용이 상당하다. 그런데 삼표시멘트는 왜 진해에서 삼척공장까지 저 흙을 가져왔을까? 진해에 쌓여 있던 흙이 시멘트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재료이기 때문이었을까?
 

오전 10시 30분 진해를 출발, 5시간 40분 만에 강원도 삼척 삼표시멘트에 도착했다. ⓒ 최병성

 
삼표시멘트로 들어간 흙의 정체를 <시엔엔(CNN)> 뉴스에서 찾아냈다. 시엔엔은 지난 2019년 11월 23일, '삼발레스에서 압수된 한국의 독성 폐기물 선적'(Toxic waste shipment from South Korea seized in Zambales)이라는 기사에서 '한국에서 삼발레스에 도착한 상선에서 53,000 톤의 독성 물질을 압수했으며, 이 물질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유해한 방사능을 함유한 비료의 폐기물인 인산석고이며, 이는 필리핀 당국이 수입을 허용하는 재활용 가능 물질이 아니다. 독성 물질을 내리는 승무원과 크레인 운영자가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CNN은 지난 2019년 11월,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보낸 방사능 독성 폐기물을 적발했다고 보도했다. ⓒ CNN

 
사건 내용은 이렇다. 트럭들이 흙을 퍼내가던 곳은 옛 진해화학이 1965년부터 30년 넘게 비료를 만들던 곳이다. 2003년 부영건설이 이 땅을 매입하여 아파트를 지으려 했다. 그러나 2006년 5월 토양오염실태조사 결과, 납(Pb)과 불소(F)가 토양오염 우려 기준을 초과한 오염된 땅임이 밝혀졌고, 2007년 토양정밀조사에서는 지하 3m까지 불소(F), 니켈(Ni), 유류, 아연(Zn), 납(Pb), 카드늄(Cd), 구리(Cu) 및 석유계총탄화수소 등이 토양오염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10월 23일 창원시는 부영 측에 토양 정화조치 명령을 내렸지만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았다. 2020년 현재 총 6차례의 고발이 이뤄졌으며, '2021년 7월 31일까지 토양 정화하라'는 7차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부영이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매입한 진해화학 터는 인산석고로 오염되어 창원시로부터 지금까지 7차 정화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삼표시멘트로 가져가기 위한 덤프트럭들이 작업하고 있다. ⓒ 최병성


시엔엔이 보도한 필리핀에서 압류된 화물과 트럭들이 삼표시멘트로 실어 나르던 붉은 흙의 정체는 진해화학이 30년 동안 인광석에서 비료를 만들고 남은 '인산석고'라는 폐기물이다. 

방사능 라돈과 독성물질 가득한 인산석고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증산을 위해 1960년부터 화학비료의 생산이 급증했다. 화학비료의 주 성분은 질소, 인산, 칼륨인데, '인'은 인광석으로 만들어진다. 전량 수입하는 인광석에서 인을 추출한 후엔 다량의 인산석고가 폐기물로 발생한다. 문제는 인산석고에 인광석에 포함된 방사성 핵종이 그대로 잔존한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천연방사성물질의 개인노출 측정 및 분석방법 연구'(2018년)에서 인광석과 인산석고에 라돈, 우라늄, 토륨 등의 방사능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석고에는 '천연석고'와 '화학석고'가 있다. 화학석고에는 인광석에서 인을 추출한 후 발생하는 폐기물인 '인산석고'와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배연탈황석고'가 있다.

몇 해 전 실내 건축자재로 사용하는 석고보드에서 폐암을 일으키는 '라돈'이 발생하여 논란이 되었다. 라돈이 많이 함유된 인산석고로 석고보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석고보드 업계는 라돈으로 인한 폐암 발생 논란 이후 현재는 '인산석고' 대신, 라돈이 적은 '배연탈황석고'로 석고보드를 제작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2011년 6월 21일, '석고보드 잘못 사용하면 라돈 농도 높여'라는 보도 자료를 통해, 인산석고와 배연탈황석고의 라돈 발생량의 충격적인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내 유통 중인 17종의 석고보드에 대한 라돈 방출량을 조사한 결과, 인산부산석고를 원료로 한 석고보드가 배연탈황석고를 사용한 석고보드보다 25배 높은 라돈 방출량을 나타냈으며, 석고보드 제품 내에 있는 자연 방사성 물질인 라듐, 토륨(232Th), 칼륨(40K)에 대한 농도를 조사한 결과, 인산부산석고에서 배연탈황석고의 약 16배에 해당하는 높은 라듐 농도를 나타냈다.
 

인산석고가 탈황석고 보다 라돈이 25배나 더 높아 폐암의 위험이 있다는 환경부 보도자료 ⓒ 환경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연구원은 '인산석고 취급공정에서의 라돈농도 및 유효선량 수준평가'에서 국제암연구소와 세계보건기구가 라돈이 폐암을 일으키는 위험 물질이라고 강조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라돈(222Rn)은 국제암연구소(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IARC)에는 라돈을 흡연 다음으로 폐암을 일으키는 인체발암물질로 설정되어 있다. 라돈은 먼지 등에 잘 흡착되며, 폐에 흡입된 후 붕괴하면서 알파선 등을 방출한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에서도 라돈이 담배에 이어 폐암 발병원인 인자로 보고 있으며 폐암 발병의 3∼14%를 차지하는 것으로 발표하였다. 우리나라 폐암 사망자는 2005년 1만 3천명으로 이중 4~15%가 라돈 노출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미국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은 미국에서 라돈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20,000명으로 폐암사망자의 10%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라돈이 폐암을 일으키는 무서운 방사능임은 이미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석고보드 업계는 라돈으로 인한 국민의 폐암 발생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인산석고' 사용을 중단하고, 라돈 함유량이 적은 '배연탈황석고'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석고보드 업체가 사용을 중단한 '인산석고' 폐기물이 시멘트공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재 진해화학 터에는 약 30~40만 톤의 인산석고 오염토가 쌓여있다. 폐기물 처리비용은 톤당 약 12~15만원에 이른다. 삼표시멘트는 옛 진해화학 터에 쌓인 40만 톤의 폐기물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부영으로부터 약 500억 원을 받기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진해에서 삼척까지 5시간 40분을 들여 운반해온 것은 시멘트 제조에 꼭 필요한 물질이어서가 아니다. 방사능이 함유된 독성 폐기물이라 많은 쓰레기 처리비를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창원 진해에서 출발하여 경주, 포항, 영덕, 울진을 지나 삼척 삼표시멘트로 라돈 방사능과 독성이 함유된 폐기물을 운반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 최병성

    
지난 2017년 3월 29일 통영어업피해대책위원회와 시민단체들은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해화학 자리에 있는 인산석고 폐기물이 통영지역 덕포일반산업단지 부지 조성을 위한 공유수면 매립재로 반입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진해화학부지에 쌓인 폐석고에서 토양오염물질인 불소농도가 최대 4141㎎/㎏이 검출됐으며, 폐석고 재활용공정인 정제 후에도 불소농도는 2456㎎/㎏이 검출돼 토양환경기준인 400㎎/㎏을 크게 웃돌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과 한국 간 국제 분쟁 우려도

시엔엔은 'Toxic waste shipment from South Korea seized in Zambales' 기사에서 '해안 경비대와 국립 수사국이 독성화물을 내리는 동안 승무원을 체포했는데, 승무원은 이 화물이 한국 광양항에서 출발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으로 간 폐기물은 분명 경상남도에 있는 진해화학 터 바로 옆인 진해항에서 출발한 것이 맞다. 그런데 시엔엔은 왜 전라남도에 있는 '광양항'에서 출발했다고 보도 했을까?

여기엔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다. 부영이 진해화학 터에 쌓인 인산석고 폐기물을 필리핀에 보낸 것은 2019년 11월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2018년에 수차례 필리핀에 보냈다가 압류되거나 반송되기를 반복했고, 지금도 필리핀에 압류되어 한국으로 반송을 기다리는 것도 있다.
 

필리핀 삼발레스 지역 해안가 마을에 방치되어 있는 진해화학 인산석고 폐기물 ⓒ 인테그리티 벌크

 
2018년 진해에서 필리핀으로 갔다가 반입이 거부되어 한국으로 반송된 5300톤이 광양항에 하역되어 오랜 시간 방치되어 왔다. 필리핀에서 돌아온 5300톤의 인산석고는 무려 길이 100m에 이르는 커다란 두 개의 덩어리로, 광양항 부두를 차지하고 있었다.

광양항만공사는 부영과 폐기물 처리업무를 맡은 ㈜금송 측에 이를 치울 것을 계속 요구했다. 마침내 광양항만공사가 2019년 7월까지 치우라는 내용증명을 보내 법적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하자, 다급해진 부영이 광양항에 있던 5300톤의 인산석고를 2019년 11월 다시 필리핀으로 보내다 적발되었고, 이 내용이 시엔엔 뉴스에 보도되어 국제 망신을 산 것이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반송된 폐기물은 광양항으로만 간 게 아니다. 대불국가산업공단 목포항에도 7000톤이 쌓여 있었는데 이게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고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라돈과 토양오염 기준을 초과한 오염토는 어디로 간 것일까?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역 시민단체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필리핀에서 목포항으로 반송되어 수개월간 쌓여 있다 종적을 감춘 진해화학의 방사능 폐기물. 현재 진해화학 터에서 삼표시멘트로 운송 중인 폐기물과 동일하다. ⓒ 독자 제공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20년 9월 23일 덴마크 국적의 국제무역 운송 선박회사 인테그리티 벌크(Integrity Bulk)는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과 관계자들을 '폐기물 관리법 위반' 혐의로 창원지검에 고소했다. 인테그리티 벌크는 2018년 진해항에서 진해화학 폐석고를 선적해 필리핀으로 가져갔다가 압류된 적이 있는 회사다. 

인테그리티 벌크는 고소장에서 "부영이 선적한 폐석고는 국제법상 국가 간 이동이 금지된 유독성 폐기물인데, 해당 화물이 유독성 폐기물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필리핀 현지로 운송하도록 함으로써 회사의 대외적 신인도와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고, 고액의 금전적 손실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테그리티 벌크는 "부영의 유독성 폐기물로 인해 필리핀 주민들의 건강과 자연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어 국제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대한민국은 유독성 폐기물을 외국으로 손쉽게 불법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나라라는 잘못된 인식마저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필리핀 재무장관은 부영의 라돈 독성 폐기물이 계속 필리핀으로 보내지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필리핀과 한국 간 국제 분쟁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  

방사능 라돈과 독성물질로 만든 시멘트, 안전할까?

오늘 대한민국의 시멘트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쓰레기들로 만들어지고 있다. 다양한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반도체공장을 비롯해 온갖 공장의 슬러지와 오니, 전국 하수종말처리장의 '하수슬러지', 소각장의 소각재, 분진, 석탄재, 폐타이어, 폐플라스틱, 폐고무, 폐유 등 비가연성 쓰레기와 가연성 쓰레기들이 시멘트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시멘트 공장들은 '재활용'의 탈을 쓰고 전국에서 쓰레기를 모아오며 쓰레기 처리비를 받아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며 한국으로 반송된 라돈과 독성 가득한 진해화학의 폐기물이 삼표시멘트로 들어간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라돈이 함유된 진해화학 폐기물이 삼표시멘트로 들어가던 날, 삼표시멘트공장은 곳곳에서 뿜어내는 시멘트분진으로 사방이 뿌옇다. 환경 개선은 안 하면서 쓰레기 처리비로 돈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 최병성

    
시멘트공장들은 라돈과 유해물질이 함유된 폐기물이지만 소각재, 석탄재, 하수슬러지 등과 섞어 시멘트를 만들기 때문에 유해물질 기준 이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을 위해 석고보드 업체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방사능 쓰레기까지 시멘트 제조에 사용하는 걸 국민들이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또 라돈이 함유된 쓰레기를 시멘트소성로에 소각할 때, 공장 주변 주민들의 안전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시멘트는 국민들이 살아가는 거주 공간을 만드는 건축 재료다. 가장 깨끗한 재료로 건강한 시멘트를 만들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국내 시멘트에는 발암물질과 인체 유해 중금속이 가득하다.

요즘 아파트 값이 하늘로 치솟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내 집 장만을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까지 하며 아파트를 구입하고 있다. 10억, 20억 원이 훌쩍 넘는 아파트. 그러나 32평 아파트에 들어가는 총 시멘트 원가는 고작 150만 원에 불과하다.

쓰레기를 넣지 않은 건강한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겨우 30~40만원만 더 추가하면 된다. 수억 원의 아파트 가격 중 30~40만 원 절약하자고 방사능과 유독물로 만든 쓰레기 시멘트에 살겠다는 국민들이 있을까?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안방은 유독성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다. 환경부는 국민들이 왜 방사능과 유독물질 가득한 쓰레기시멘트로 지은 아파트에 살며 고통당해야 하는지 해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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