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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지는 않아도 연말은 연말이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 버스 터미널에 앉아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각양각색 마스크로 입·코 다 가리다 보니 두 번 세 번 봐도 누군지 알 듯 말 듯하다. 다들 대형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다.

"일 다 해놓고 죽으려면 죽을 날도 없는 겨. 일도 어지간히 해야지 원."

텔레비전을 보던 어느 분의 말씀이다. 뭔 일인가 하고 쳐다보니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얘기다. 최근 택배기사들이 잇달아 사망해 사회적 논란이 되자 경찰이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 5건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이라는 보도였다. 일을 어지간히 하라는 그분의 말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구. 저걸 어쪄. 올매나 일에 치였으면 죽을까. 젊은 사람이네. 아들딸도 있을텐데 어쩌나."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 목소리였다. 첫 번째와 대조를 이루는 반응이었다. 남의 일 같지 않은가 보다. 혀를 끌끌 차면서 애닯아 하는 눈치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시골 일에 치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로 들린다.

연이어 일종의 뉴스 평론가(?)들이 등장했다. "택배 많으면 좋지 뭐. 일 더 하고 돈 더 버는 건데 뭐"라고 하는 말이 나오나 싶더니 "요즘 일감이 없어 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일 많으면 복이지. 손님 없어서 문 닫는 식당이 널렸어" 참 냉혹한 평론가였다. 강심장이라기보다는 공감 장애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공감을 잘 못 하고 감응이 무디면 그의 내면에는 평화가 깃들 수 없다. 외면과 무시, 비난과 냉소가 내면을 채우게 된다. 친절과 배려, 공감과 유머는 최고의 인격이다. 이런 인격은 내면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고요와 평화는 조건 없는 사랑의 출발점이다.

사랑. 사랑을 나는 기도라고 여긴다. 내 기도는 하늘에 고하는 청구서가 아니라 "하늘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고 계실까?"라고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결국 사랑은 공감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싶다.

버스를 타려는데 기사님과 어떤 승객이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내가 오줌 누러 갈 시간도 없이 차를 또 몰고 나가야 하는데 어쩌란 말이냐"라고 했고 승객은 "사과하라"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물었다. 내막은 좀 허탈했다.

버스 기사가 터미널에 버스를 대고는 승객이 다 내리기 전에 에어건(압축공기를 내는 호스)으로 운전석 부근 먼지를 털어냈나 보다. 승객이 있는데 뭐 하는 짓이냐고 승객은 항의를 했고, 운전기사는 뒷문으로 내리시면 되지 않느냐고 한 모양이다.

승객이 내리고 나서 청소를 해야지 먼지를 왜 먹이냐고 승객이 또 언성을 높인 것이다. 버스 기사가 에어 청소를 멈추고 내리시라고 했는데 승객이 이번에는 기사에게 앞서 한 짓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중이었다.

운전사는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또 차를 운행해야 하는 처지라면서 신세 한탄까지 했다. 대략 난감했다. 그런데 눈치를 보아하니 두 사람은 핏대를 높였지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한 발씩 물러설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먼저 물러서지 못하고 대립을 겨우 지탱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생리현상을 막으면 안 되죠.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오셔야겠네요"라고 기사를 거들고, 승객이 들고 있는 양 손의 무거운 짐을 내려 드렸다. 그랬더니 두 사람은 각자의 길로 갔다.

연말이다. 새로운 업을 쌓기보다 한 해 쌓인 업풀이를 할 때다. 공감과 배려와 양보와 사과와 감사와 사랑으로. 내 한 해가 얼마나 공감했던 한 해였는가. 내 한 해가 얼마나 양보하고 사과하고 감사하는 한 해였는가 하고. 이렇게 가벼워져야 새해가 산뜻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연말, #택배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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