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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
 김치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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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죄송해서 어쩌죠? 이번 김장은 못 갈 것 같아요."
"어짜노. 밖에 나가지 말고 조심해래이."


할머니는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안다. 할머니가 이번 김장만을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 코로나로 인해 올 초 제사가 취소되었을 때, 할머니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암만 힘들어도 할 건 해야 않겠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튼 밖에 나가지 마시라'는 말뿐이었다. '김장 때는 오겠지.' 할머니는 다시 한번 실망해야 했다. 할머니는 외숙모와 단둘이 김치를 담그셨다. 10포기 가까이 되는 배추김치가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국물이 샐까봐 꽁꽁 밀봉해 놓은 플라스틱 통에서 우리 할머니 향기가 난다.

며칠 뒤, 이번엔 요리 기구가 잔뜩 담긴 소포가 도착했다. 요리에 취미가 생겼다는 손녀를 위해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요리 도구들을 예쁘게 손질해서 보내주셨다.

나는 코로나에 발이 꽁꽁 묶여 할머니의 희망 하나 들어드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사랑은 상자에 담겨 코로나가 무섭지 않다는 듯 나의 집 앞에 도착했다. 아, 사랑은 일방통행이다.

"지금은 안 되겠는데요"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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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일본에서도 소포가 왔다. 홋카이도 아주머니께 부탁드린 물건이었다. 5년 전 나는 홋카이도로 첫 혼자 여행을 떠났다.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아기 셋 대가족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묵었다. 같이 TV를 보며 아침밥을 먹다가 친해진 것을 계기로, 해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인연을 이어갔다.

종종 그랬던 것처럼 작은 보답으로 간식들을 이것저것 꾸려서 우체국에 갔다. 직원이 물었다. "어디에 부치실 건가요?" "홋카이도요." "지금은 안 되겠는데요." 역시나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항공편이 없어서 오사카까지만 갈 수 있고, 배 편은 2~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사람만 못 가는 줄 알았지, 물건도 못 갈 줄이야. 나는 소포를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메시지를 보냈다.

"작은 보답으로 간식을 몇 개 보내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부칠 수가 없다네요. 상황이 완화되면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메시지가 왔다.

"괜찮아요. 언젠가 한국을 느낄 수 있는 이것저것을 보내주세요. 좀처럼 한국에 갈 수 없을 것 같아서요."

항상 "다음에 갈 때 연락할게요"로 끝맺으며 미래의 만남을 기약했던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오늘은 조금 다르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집들이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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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지인이 집들이 선물만 전해주고 떠났다. 물론 집들이는 취소되었다. 빈손으로 가기 뭣해 산 건데, 지금이 아니면 못 전해줄 것 같다며 일이 끝난 밤 11시에 집 앞에 왔다. 밤늦은 시간에 먼 길을 와준 것이 고마워 뭐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지인은 내년 집들이 때 제대로 먹고 가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내가 건넨 것은 박카스 한 병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마스크의 장벽에 갇혀 고작 몇 마디 주고받은 것이 다였다. 집에 들어와 포장 꾸러미를 열어보니, 차량용 방향제와 종량제 봉투 한 묶음이 들어 있었다.

마침 메시지가 도착했다. 실용적인 선물을 주고 싶어 골랐는데 맘에 들지 모르겠다며, 내년에는 꼭 보자는 짧은 글이었다. 어떤 식이든 마음을 전하려는 노력에 가슴이 아리다.

어릴 적 좀비영화를 보며 엉뚱한 상상을 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없는 세상이 되면 어떨까. 집에만 꽁꽁 갇혀 외부와 단절된다면. 분명 너도 나도 살아남으려고 서로를 해할 것이다.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각박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사람은 더 사람을 그리워했고, 본인의 마음을 전하려 했다. 나는 이들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 언제 다 돌려줄 수 있나. 따뜻한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 사랑은 언제나 일방통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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