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영화제가 올해로 14회를 맞고 있다(12월 1일~10일). 코로나19 영향으로 아쉽지만 올해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고맙게도 무료 관람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좋은 기회다.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주의지만, 생각을 약간 수정해야 할 듯하다. 오프라인 영화제의 경우 보고 싶은 영화와 시간대가 맞지 않아 볼 수 없기도 하고, 원하는 영화가 여럿인데 같은 시간대에 상영될 경우 하나를 포기해야 해, 애석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또 예매를 했다가 불현듯 일이 생겨 가지 못하기도 해, 실상 원하는 영화를 상영관에서 보기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런데 온라인 영화제는, 시간과 날짜를 잘 맞추어 예약을 하고 보면 되니, 오프라인 상영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어려운 시국에도 포기하지 않고 온라인 영화제로 여성인권의 기치를 드높여준 여성인권영화제에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339편의 국내외 출품작 중 26편 영화가 선정되어 상영되었고, 여성인권영화제인 만큼 여성인권이 영화의 주제다. 영화를 통해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해 있는 여성들이 그들이 선 지형에 따라 여러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위기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연대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간 두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어 소개하고 싶다. 케냐의 흑인 여성 공동체의 이야기를 다룬 <우모자>와 낮은 곳에 임하며 약자들과 연대하는 공동체를 꾸리며 투쟁해 온 미국 수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주님은 페미니스트>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리라"
 
 영화 <우모자> 스틸 컷

영화 <우모자> 스틸 컷 ⓒ 여성인권영화제

 
케냐 북부 국경 지역 삼부르 수렵금지구역에는 여성들만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영화는 흑인 여성들이 이 마을에 침입한 남자를 거칠게 쫓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마을 이름은 우모자. '우모자'는 '함께 하는 정신'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한곳에 모여 살며 지키려는 정신은 무엇일까?
 
아프리카 여성들의 박탈된 인권에 대해 처음 눈을 뜨게 된 것은, 소녀들의 할례(성기 절제)를 다룬 영화를 보게 되면서였다. 너무나 참혹했다. 남성이 여성의 성을 통제할 목적으로 성기를 훼손시키는 악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고, 수많은 소녀들이 이로서 목숨을 잃고 있었다. 케냐의 소녀들 또한 다르지 않았고, '우모자' 마을의 여자들도 할례로 고통 받았다고 증언한다.
 
이들이 떠나기 전 남자들과 살던 마을을 카메라가 비출 때, 뜻밖에 아이들이 눈에 띄었는데, 혼혈이 분명해 보였다. 영국군에 강간당한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이었다. 여성들이 강간당한 것이 "전부 여자 탓"이라며 "수치스럽다"고 비난하는 마을 남자의 말은, 여성들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이들이 사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생활상을 지워야 한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수도도 없다. 농사는 척박하고 가축을 조금 기르는 정도다. 당연히 가난하다. 그나마 생존하려면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한다. 물을 길어 와야 하고, 땔감을 마련해야 하고, 가축을 관리하고,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 하루 종일 이 모든 노동을 해내기 위해, 오직 여자들만 고투한다.
 
아프리카 남성들이 가부장이 강하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정도인 것은 잘 모를 것이다. 이들의 삶은 '무위도식' 그대로다. 그럼에도 "규칙은 남자가 만든다"는 엄격한 관습으로 여성의 삶을 통제한다. 욕하고 때리고 수틀리면 내쫓는다. 설움 중에 먹는 차별이 제일 아린 법인데, 여자들은 남자들이 남긴 음식으로 연명한다. 종일 일하고도 자기 몫의 음식을 먹을 권리가 허락되지 않는 여자들은 남자들이 음식을 남겨야 먹을 수 있기에, 굶는 날이 태반이다.

마을에서 어쩌다 양고기를 잡는 날은 남자들이 포식하는 날이지만, 여자들과는 고기 한 점을 나누지 않는다. 이들에게 여자들은 아이 낳고 일하는 노예와 다르지 않다. 이런 그들이 더는 차별당하지 않겠다며 가부장의 집을 버리고 떠난 것이다. 노예가 노예임을 자각하는 순간, 혁명은 막을 길이 없다.
 
영화는 이렇게 떠난 여자들이 함께 하며 살 길을 찾는 과정, 즉 '우모자(함게 하는 정신)'에 주목한다.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차별 없이 입고 먹을 것을 나눈다. 교육의 중요성을 자각한 이들은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여자아이건 남자아이건 차별 없이 교육받게 한다. 남자에게 억압당했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믿고, 배움에 있어 남자를 배척하지 않은 웅숭깊은 정신을 보인다.

마땅한 수입원이 없는 마을을 '여자들만 사는 공동체'로 홍보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공동체 경제를 견인한다. '우모자'는 여자들만 사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들의 '함께 하는 정신'을 배우려는 다른 마을 여성들도 자립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들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리라"며 함께 부르는 노랫소리는 빛보다 멀리 가고 있었다.
 
'버스를 탄 수녀들' 
 
 영화 <주님은 페미니스트> 스틸 컷

영화 <주님은 페미니스트> 스틸 컷 ⓒ 여성인권영화제


<주님은 페미니스트>의 원제는 'Radical Grace'인데, 기막힌 번역 타이틀로 기억될 듯하다. 은총(Grace)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영화는 천주교단을 소재로 하고 있다. 교단의 엄격주의와 가부장에 반기를 든 수녀들이 수십 년 간 공동체를 꾸리며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가는 약자와의 연대기를 기록했다. 그런데 수녀들을 다룬 영화에 왜 'Radical'과 '페미니스트'가 타이틀로 언급되고 있는 걸까.
 
수녀들이 엄격한 교단에 이의를 제기하자, 바티칸은 수녀 공동체를 사찰하기 시작한다. 시몬 수녀를 주축으로 한 사회봉사 수녀회는 약자들을 배제시키는 의료법에 반기를 들고 '오바바 케어'(의료 보험 개혁법)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다. 보수주의자들의 눈에 '오바마 케어'를 지지하는 수녀들이 눈엣가시가 되기 시작한다.
 
크리스 수녀는 1970년 대 노동자 조합에서 잔뼈가 굵은 교회개혁 운동가다. 그는 신의 강력한 부름을 받고 종교에 귀의했다. 초보 수녀 시절까지만 해도 보수적 천주교단이 변화하면 신부 서품을 받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할머니 수녀가 된 지금까지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권력이 남성들에게 집중된 현 교단의 문제점을 반박하기 위해, 그들은 기독교 초기 교회의 흔적을 찾아 로마 유적지를 탐사한다.
 
프리실라 카타콤 묘지에 새겨진 여성 부사제의 벽화와 성 프라시티 성당의 테오도라 주교의 모습 그리고 성체와 성배를 받든 여자 사제의 그림은, 기독교 초기 여성이 사제였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었다. 이를 확인하고 눈물 흘리는 그들은 "우리도 자격 있다"며 하나님의 대리자로 다시 세상으로 대담하게 걸어 나아간다. 이들의 행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하려는 남성 중심 교단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불온한 자들로 찍혀 사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진 수녀는 교단에서 관심 가지지 않는 지역사회의 약자를 보살피며 오랫동안 공동체를 꾸려온 할머니 수녀다. 약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했"고, "수녀 복 입고 다니면 절대 말을 안 걸"기에, 수녀 복을 벗어던졌다. 수녀 복을 벗어던지고 교회를 떠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자, 교단은 그의 신앙을 의심하고 사찰하기 시작했다.
 
공동체 사람들은 진 수녀의 선행을 입 모아 찬양하지만, 오히려 그는 "이런 삶은 특권"이라 말한다. 부족한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대리하는 특권을 누림으로써 변화되었다고 믿는 그는, "사람(약자)들과 있는 시간이 성스러운 시간"임을 고백한다. 이런 그녀를 어떻게 신뢰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의 죽음 후 목격되는 사람들의 진정한 애도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이들 공동체를 이끄는 수녀들은 "우리의 싸움이 모두의 싸움이다"를 천명하고, 약자와의 연대를 꾀하기 위해 더 큰 용기를 낸다. 미 전역을 버스로 돌며 서로가 서로의 용기임을 확인해 나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버스를 탄 수녀들'(Nuns On the Bus)이 투어를 시작하고, 이들에게 "We are all Nuns"라며 지지와 한호를 보내는 끊이지 않는 행렬은 이들의 투쟁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버스를 탄 수녀들'은 피임과 낙태를 지지하는 이유로, "생명권만 중요하지 않다. 모든 목숨이 처한 현실을 보라"고 일갈한다. 이들을 향해 한 남자가 "저들은 아이들을 성추행하는 신부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라고 폭언하는 장면은, 낮은 곳에 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 서 있는 이들의 땅이 얼마나 극단적인 종교적 지형에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후 2014년 12월, 바티칸은 6년간 미국 수녀 공동체를 사찰해 온 결과를 발표한다. 조사관 신부는 "신부로서, 남성 신자로서, 이들 수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중요한 과정을 배우게 했다"라며 바티칸의 자기 고백을 대신한다. 2015년 바티칸이 마침내, 미국 수녀에 대한 사찰을 끝내고 주교의 감독을 거둔다고 발표하자, 할머니 수녀들은 긴 싸움을 일단락한다. 하지만 수녀들은 여기서 멈출 기세가 아니다. 남성 독점의 교회 구조를 바꾸는 일이 하나님이 내린 다음 미션임을 다짐한다. 이들이 'Radical Nuns' 또는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이유로 충분한가?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여성인권영화제 여성인권 <우모자> <주님은 페미니스트> 여성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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