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코로나 재확산을 맞은 올 연말은 유독 더 몸과 마음이 시립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고 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 프리랜서, 직장인, 취준생 등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9년 삼성그룹 신입사원 채용 직무적성검사를 치른 취업준비생들이 고사장을 나오고 있다.
 지난 2019년 삼성그룹 신입사원 채용 직무적성검사를 치른 취업준비생들이 고사장을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020년 10월 기준, 통계청에 따르면 15세 이상 29세 이하 인구는 약 885만 명이다. 이 연령대의 경제활동인구는 약 409만 명에, 그중 취업자는 375만 명, 실업자는 34만 명에 이른다. 실업률은 8.3%, 고용률은 42.3%이다.

그리고 이에 속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약 477만 명.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구직을 하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 취업준비생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취업준비생, 이른바 '취준생'은 당장 구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공식적인'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지난 5월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 시험을 준비하였음'으로 집계된 인구수는 약 80만 명이었다. 실업자로도 구직자로도 구분되지 않는 취준생이 80만 명에 달하는 셈이다.

이 숫자는 지난해 5월엔 71만 명, 지지난해 5월엔 63만 명으로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학교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경제활동인구에도 속하지 않은 채 꾸준히 늘어만 간다.

2000년 이후에도 실업률은 꾸준히 증가해왔고, 올해 6월 청년 실업률이 10.7%로 정점을 찍은 뒤 10월 통계엔 다시 8%대로 내려왔다. 2020년 실업률이 크게 증가한 이유엔 코로나19가 불러온 고용 한파 탓이 클 것이다.

공개된 지표의 실업률은 몇 달 전에 비해 떨어진 모양새지만, 취준생인 내가 느끼는 현재의 고용 한파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히려 더 춥고 거세졌다. 취준생들의 이번 겨울은 지난 겨울보다도 더 얼어붙을 것이 꽤나 확실하다.

나는 계속 작아졌다 

때때로 '취준생'이란 단어의 뜻에 대해 생각해본다. 취업준비생, 온라인 국어사전엔 '취업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을 갖추며 대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나온다. 수많은 취준생 중에 정말 능력이 부족해 실제로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취준생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청년 대부분은 무척이나 취업하고 싶어 한다. 간혹 언론은 '구직 포기를 한 청년들이 많아졌다'는 식의 말을 내놓곤 하지만, 그건 직장 갖기가 그만큼 어려워서지, 그들이 취업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닐 거다. 

취업만이 청춘의 목표가 된 이 시기에, '취업준비생'이란 단어는 그저 취직하지 않은 청년을 구직자, 실업자라고 통칭하면 부정적인 느낌을 주니, 이를 미화하고자 사용하기 시작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때때론 이 단어가 실제 구직자들에겐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본격적으로 취업 시장에 뛰어든 것은 올해 초였다. 나는 취업이 쉬이 되지 않을 게 거의 확실한 전공을 선택했다. 때문에 대학 생활 내내 취업 걱정은 늘 붙어 다니는 친구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지'란 막연한 이상과 불안한 낙관 속에 빠져 살았는지도 모른다.

올해 직접 겪은 취업 시장은 생각보다 더 암담했다. 금방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난 스스로를 취준생으로 만들어 버렸다. '경력이 없으니', '능력이 없으니' 등의 이유를 대며 취업을 위해 더 공부하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달 정도는 구직보단 내 실력을 키우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수차례의 서류 전형 탈락과 합격을 거쳐 몇 차례의 면접을 봤다. 원하는 곳에선 합격 연락을 주지 않았다. 면접에선 모두가 호의적이었다. 전부 나를 금방이라도 고용할 것 같았고, 내가 가진 능력과 쌓아온 경력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유도 모른 채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나는 계속 작아졌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다시 끄집어내 보기를 되풀이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유가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터널이 끝나리라는 건 알지만 

유시민 작가는 그의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자신의 정치 활동을 돌아보며 이런 말을 적었다. 

"모두가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로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잘못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작가는 자신이 몸담았던 정치 활동을 회고하고 그간의 일과 자신의 마음가짐을 반성하며 한 말이다. 나와 같은 상황을 이야기하며 나온 말은 아니지만, 구직 과정을 겪으며 이 문장이 종종 떠올랐다. 

불합격의 고배를 마실 때 주변 지인들은 '그 회사가 너와 맞지 않는 거야'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곤 했다. 맞는 말이라고도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멋진 말과 행동을 보여줬어도, 회사는 결정적으로 그들과 어울리는 사람을 뽑을 것이니까.

하지만 탈락의 상황이 반복될수록, 나로선 무엇보다 내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내 부족함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살피게 된다. 어떤 실수가, 어떤 부족함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 과정에서 난 자꾸만 작아진다.

매번 그 이유를 스스로 물을 수밖에 없으니 머릿속은 늘 정확하지 않은 추측으로만 가득했다.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까', '저렇게 행동했어야 하는데'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취준생의 자아는 이렇게 작아지는구나.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가 끝나면 우리의 자아는 다시 원래의 크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길어보이나 언젠가는 끝이 날 터널을 잘 빠져나오리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가 길어보이나 언젠가는 끝이 날 터널을 잘 빠져나오리라고 믿는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긴 터널이 언젠간 끝이 날 것이란 걸 안다. 터널의 깜깜한 어둠이 내 탓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 어두운 터널 속에서 '왜 손전등을 챙겨오지 않았을까' 하며 제 탓을 하게 되는 게 취준생의 마음인 것 같다.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코로나19가 시대를 휩쓸고, 일자리 시장은 더 단단히 얼어붙었다. 2020년을 삭제하고 싶다는 말이 종종 들린다. 나에게도 역시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는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2020년이었다.

버티고 버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모두의 건강이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건강하게 버텨 왔으니 제 나름대로 괜찮게 보낸 시간일 것이다. 모두가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지켜내기만을 바란다.

취준생들의 겨울은 이번에도 조금 길 듯하다. 나를 포함한 모든 취준생의 건투를 빈다.

태그:#코로나19, #취준생, #청년, #실업, #고용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명확하고 공감이 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