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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확산을 맞은 올 연말은 유독 더 몸과 마음이 시립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고 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 프리랜서, 직장인, 취준생 등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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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퇴근 시간이다. 다들 부랴부랴 짐을 싼다. 작년이었다면 '다들 저녁 약속을 잡았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얼굴들 또한 사뭇 긴장되어 보인다. 누군가는 이 회사의 문턱을 넘어서면 또 다른 일터로 출근할 것이다.

더 이상 직장인들은 한 직장에 터를 잡고 살아가지 않는다. 퇴근 후 누군가는 편의점으로, 누군가는 배달처로, 누군가는 인터넷 방송으로 향한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하던 '이중생활'이 코로나로 인해 시작됐다. 한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 그것은 이제 오너조차도 원치 않는 구식 신념이 되었다.

물론 이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아버지 친구께서는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낮에는 농업 관련 업무를, 밤에는 대리를 뛰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제차 대리운전을 맡았다가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 조금 버벅거리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차주가 짜증 내며, '다른 대리를 부를 테니 내리라'고 했단다. 결국, 아저씨는 그날 뒤에서 픽업용 차를 끌고 따라온 아내와 함께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나의 취업준비생 친구는 고가의 장비를 사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이력서를 넣어볼 회사도 없으니 차라리 유튜브로 성공하겠다는 야망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구독자 100명을 채우지 못하고 중고시장에 장비를 내놓았다.

나는 어느 날 길을 지나가다가, 현수막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배달 부업'. 오토바이가 아니라도 자전거, 도보로도 배달 알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확실히 도심을 거닐다 보면 일반 행인이 반, 배달원이 반이다. 때마침 오피스텔 앞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 3대가 보였다. 배달원들은 경주 하듯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코로나를 견디고 있었다.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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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고파서 쓴 글, 이런 반응을 얻을 줄은 

나도 이 시국을 기점으로 두 가지 인생을 살게 되었다. 낮에는 직장인이지만, 밤에는 시민기자다. 처음에는 홀로 사니 말할 상대가 없어서 글을 썼을 뿐이었다. '오늘은 냄비밥이 망해서 소주를 넣어 소생시켰다', '트럭 아저씨에게 밥솥을 팔았다', '로컬푸드 매장에 가서 토마토를 사와 스튜를 해 먹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친구들을 불러 실컷 떠들었겠지만, 그럴 수 없어서 글로 외로움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전화가 왔다. 요지는 이랬다. '자취생 이야기 잘 보고 있다, 청년 시민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다, 1·2편에서는 약간 아쉬웠는데 3편에서는 정말 공감이 많이 갔다'.

맙소사,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았다. 며칠 뒤 소정의 원고료와 함께 내 글이 메인에 실렸다. 진중한 기사들 사이에서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내 기사가 보였다. 밥을 차려먹고, 집안일을 하며 떠올린 엄마의 모습에 대해 적은 글이었다(관련 기사 : '대충 살자' 외치던 우리 엄마, 집 나오니 이해합니다). 대단한 글도 아닌데 낯이 뜨거워졌다.

민망함을 느끼며 글을 클릭했는데, 몇몇 댓글이 달려 있었다. '부모님 생각이 난다'며 본인들의 경험담과 감정을 담아낸 짧은 몇 줄, 그것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몇 달간 잊어버리고 살았던 사람 간의 교류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대파 값이라도 벌자'는 핑계로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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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지나가리라, 숨소리만 가득한 겨울도

2020년의 우리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 친구께서는 지금도 대리운전을 계속 하신다. 이제 무슨 차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으신다. 차를 몰다 보면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오히려 재밌다고 하셨다.

유튜브 촬영 장비를 되판 친구는 그 돈으로 그림 홈클래스 강의를 결제했다. 그는 무조건 '떠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아이템도 구상하지 않고 유튜브에 뛰어들었다. 이것저것 배워보면서 본인이 뭘 잘하는지부터 알아가기로 했단다. 오늘도 창문 밖은 오토바이로 가득하다. 추위 속에서 콜을 기다리며 가만히 서 있는 오토바이들의 비상등이 반짝거린다. 별처럼 반짝인다.

문득 어릴 적 바다에 놀러 간 일이 생각난다. 열심히 모래성을 쌓았더니, 거센 파도가 밀려와 성을 다 부숴버렸다. 씩씩대고 있는데,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영롱한 조개 몇 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주워 다시 만든 성은 훨씬 튼튼하고, 맘에 들었다.

코로나라는 거센 파도가 한순간에 밀려와 'N잡시대'를 촉진시켰다. 갑자기 부업이 생겼다고 생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개 일회성이거나 건당 계산하는 소일거리가 대다수다. 나도 오늘 밤에 글을 쓰지만, 내일 아침이 되면 여전히 마스크를 끼고 직장으로 출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 길만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업무의 스트레스도,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도 다른 방면으로 재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코로나가 끝난 뒤에도 나는 글을 쓰거나, 영상을 편집하는 등 새로운 일을 찾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해나갈 것이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마스크를 씌운 건, '당분간 남의 일에 말을 얹지 않고 내 숨결에 집중하라'는 뜻 아닐까. 언젠간 지나가리라, 이 숨소리만 가득한 겨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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