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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인 다시세운프로젝트의 중심은 어디일까? 남북으로는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km의 길이에 4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넓은 구역이지만, 지금 다시세운프로젝트의 무게 중심은 가장 남쪽 진양상가에 기울어 있다.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란 말처럼, 지금 진양상가가 다시세운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은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7일, 진양상가 협의회 송진구 회장을 3층 꽃상가에서 만났다. 다시세운프로젝트 2단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만큼 그 누구보다도 도시재생에 대한 쓴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1월, 진양상가 협의회 결성하다
  
인터뷰가 진행된 2020년 10월 27일 현재 3층 보행로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송 회장은 2018년 12월부터 2년 넘게 진행된 공사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과 한편으로 도시재생에 대해 갖는 기대를 전했다.
▲ 진양상가 연합회 송진구 회장 인터뷰가 진행된 2020년 10월 27일 현재 3층 보행로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송 회장은 2018년 12월부터 2년 넘게 진행된 공사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과 한편으로 도시재생에 대해 갖는 기대를 전했다.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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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상가 협의회는 진양상가 구성원을 대표하는 모임으로 지난 1월 16일 결성되었다. 진양상가는 집합건물임에도 관리단이 없어 상가의 의견을 모을 협의체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차에 도시재생에 국한한 의제를 다룰 임시 협의체를 꾸리게 되었다.

당시 꽃상가 번영회 회장으로 4년 임기를 마친 송 회장이 새로 구성된 협의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4년은 꽃상가를 대표해서, 1년은 전체 상가를 대표해 도시재생 초기 가장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주민 갈등을 중재하고 행정과 협의를 거듭해 온 셈이다.

"처음에 (도시재생) 활성화에 대해서 상인들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죠.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있는데, 가장 큰 건 우리가 주차장으로 사용했던 데크를 다시 보행길로 만든다는 데서 가장 큰 반발이 생겼죠. 꽃상가로서는 우리 화물인 화분이 무거우니까 그걸 옮길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거죠"

다시세운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은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3층 높이의 데크를 이어 보행로로 만드는 사업이다. 진양상가 3층에 자리한 진양꽃상가는 이 데크를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보행로가 이어지면서 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꽃상가 상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주차장 폐쇄에 반대하던 어떤 70대 상인은 무릎의 수술 자국을 보여주었다. 무거운 화분을 옮기느라 관절마저 상했는데 주차장마저 없애버리면 어떡하냐는 얘기였다.

상인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17년부터 시작한 협의는 2단계 공사가 시작된 2018년 12월 즈음에서야 대략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송진구 회장은 상인의 의견을 모으고, 행정과 협상을 벌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상인을 설득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 상가가 50년이 넘은 건물이다 보니까, 재생사업을 통해서 보행로를 만들어서 활성화를 시키면 상가 나름대로 좋아지는 부분이 있지 않겠냐, 이건 우리가 반대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며 임원들과 함께 상인들을 설득했죠."

지연된 공사에 주민들 피로도 높아져
 
2017년 11월 소방서로부터 출석요구서가 발부되자 진양상가 각층 대표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소방시설 개선을 위한 진양상가 각층 대표 모임  2017년 11월 소방서로부터 출석요구서가 발부되자 진양상가 각층 대표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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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상가 전체를 대표하는 모임의 필요성이 시급하게 제기된 것은 2017년 겨울이었다. 2017년 11월 진양상가 각 점포에 출석요구서가 도착했다. 몇 년째 소방시설이 미비한 채로 방치되어 있었던 탓에 소방서에서 발부한 것이다.

중구 한복판에 자리한 진양상가는 17층 주상복합 건물이다. 7층 이상 아파트는 소방시설을 갖추고 있었지만 6층 이하 상가에 소방시설이 없다는 것은 상인들은 물론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큰 위험 요인이었다.

각 층의 대표가 소방시설 구축을 위해 모였으나, 재원을 스스로 충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때 모임을 이끈 송 회장은 도시재생 사업의 문을 두드렸고, '주민공모사업'으로 일부를 지원받아 소방시설을 갖출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송 회장은 서울시를 설득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당시 서울시는 민간 소유 건물에 공공 예산이 투입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송 회장은 주민 안전과 직결되는 소방 문제가 도시재생의 최우선 과제임을 피력해 지원을 끌어낼 수가 있었다.

소방시설 재건이 곧바로 주민 조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함께 모여 성취를 이룬 경험은 빠르게 휘발되었다. 그러나 도시재생이 본격화되면서 주민 모임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보행길 공사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상인들의 피로감이 높고 불만도 많아요. 3층뿐만 아니라 1층도 그렇고 2층도 그렇고 소음 문제, 분진 문제 등에 서울시가 빨리 진행해서 어떤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데 현 상태로서는 그러지 못하고 있죠."

2020년 여름을 목표로 한 공사는 현재 준공 시점을 2021년 7~8월로 1년 연기한 상태다. 공기가 늘어난 만큼 주민들의 피로도는 늘어났고, 상황이 변해 합의한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민간과 행정의 협력은 쉽지 않아

진양상가 협의회 결성에 가장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층 통로 환경 개선 건이었다. 다시세운프로젝트의 핵심 공사가 3층 보행로 연결 공사였지만, 노후한 1층 통로를 방치하지 말고 리모델링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를 처음 제안한 것은 서울시 측이었다.

"사실 (시청의) 전 담당자들은 (1층 통로 리모델링을 위해) 디자인까지 한 거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 와서는 (시의 직접 수행은) 어렵다고 하죠. 주민공모사업으로 해야 한다면, (자부담이) 몇억씩 들어가는 데 상인들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죠."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송 회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서울시가 입장을 바꾼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올 초 논의에서 주민들은 서울시가 공사비의 전액을 부담하는 직접 수행 방식을 요구했고, 시도 이런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시의 담당자가 바뀌고 진행된 최근 논의에서는 주민공모사업 즉, 주민이 공사하고 시가 공사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지원사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문제는 관리단이 없는 현재 진양상가로서는 이를 추진할 주체도 없을뿐더러 자부담을 나눠서 징수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주민 갈등이 불거질 우려도 있다는 점이다.

민간 건물의 환경 개선에 시가 선뜻 나서기를 주저하게 된 것은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공사 후 관리와 하자 발생 시 책임 소재를 가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서울시는 시의 예산으로 1단계 세운상가의 옥상과 지하실을 리모델링한 바 있다. 그러나 2019년부터 옥상 누수가 발생하면서 세운상가 관리회는 시에 하자 보수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제3자의 진단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건물 자체의 노후에 따른 것인지 시가 진행한 공사 탓인지 그 후 건물 관리회가 진행한 방수로 공사 때문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쇠락한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도시재생이 시작되었고, 민간 소유 건물을 개선하는 데 재원을 투입하면서 공공 개방을 유도하기도 했지만, 유지 관리나 하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가 실타래처럼 얽히게 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행정은 도시재생의 본래 취지와는 달리 민간에 재원을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갈림길에서

풀어야 할 난제도 많고 갈등도 많지만, 송진구 회장은 도시재생에 대해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3년간 도시재생으로 상가 환경이 상당 부분 개선되었던 점을 인정하면서 도시재생에 대한 상당한 기대를 밝혔다.

"공모사업으로 (3층 상가) LED 형광등으로 교환했고, 전체 상가는 소방, 발전실을 전부 개보수를 했고 또 화장실 개보수를 해서 여기 오는 주민들에게 편의성을 높일 수 있었죠. 그건 서울시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여기가 보행길이 돼서 상권이 되살아난다면 상인들에게 그보다 더 좋을 순 없겠죠. 그게 100% 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앞으로 정책을 어떻게 펼쳐나가냐가 중요하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인들에게 보행로 연결은 수단에 불과하다. 행정은 보행로 연결을 마무리 짓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주민들은 도시재생 이후가 더 고민이다. 해당 지역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차후에 완공이 됐을 때도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꽃상가 3층은 점포들이 협소하다 보니까 밖으로 진열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은 앞으로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서울시는 여기 상인들에게 어떤 것을 제시해서 여기를 어떻게 잘 화합시켜서 이끌어갈 것인가?"

송 회장이 속한 진양꽃상가는 86년도 남대문 꽃상가의 상인들이 진양상가 3층으로 이주하면서 조성되었다. 당시 남대문 꽃시장 일부가 재개발되면서 일부는 양재동으로 이주했지만, 일부는 3층 데크를 주차장으로 쓸 수 있다는 얘기에 진양상가를 선택했다고 한다.

송 회장은 꽃상가가 조성되고 난 다음 해인 1987년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1988년 올림픽 때부터 1990년대 초반 경제 성장기에 진양꽃상가도 호황을 누렸지만, IMF 이후 그때와 같은 호황은 다시 없었다고 한다. 도시재생으로 환경이 달라지자 상가 내부에서도 변화의 분위기가 조금씩 비친다고 한다.

"데크길(공중 보행로)에 기대를 갖는 분들이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면 우리가 큰 화분들을 파는데 그런 것 말고 한 손에 간단하게 들고 갈 수 있는 만 원짜리 같은 것들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어요. 보행로 쪽으로는 카페라든가, 테이크아웃 음식을 판다던가, 그런 걸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 발 빠르게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이미 2017년 겨울부터 협업지원센터와 함께 플로리스트 전문가반을 구성해 재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30~40년 경력을 지닌 상인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익히기 위해 청년 플로리스트에게 배우려는 열의는 3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9년부터는 이들을 중심으로 협동조합 결성도 준비하고 있다.
 
대부분 86년 꽃상가 개장과 함께 업력 3, 40년의 전문가들이지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배움을 놓지 않고 있다. 사진은 2018년 3월 수업 모습.
▲ 꽃상가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상인들 대부분 86년 꽃상가 개장과 함께 업력 3, 40년의 전문가들이지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배움을 놓지 않고 있다. 사진은 2018년 3월 수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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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송 회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다. 당장 공사로 인해 발생한 민원을 해결하기에도 급급하다. 갈수록 시와 논의할 것들이 늘어나는데, 송 회장이 체감하기로는 시와 함께 나눴던 구상들이 동력을 많이 상실하고 있었다.

"(시와 논의한 것들이) 용두사미에 그치고 마는 거죠. 처음에는 거창했다가 담당자 바뀌고 흐지부지되면 '다시 의논해서 할게요' 이런 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여기 상인들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그런 부분이 커다란 불신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지 잊지 말았으면

송진구 회장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 번 행정과의 신뢰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송 회장의 얘기대로 담당자의 잦은 교체도 한몫하고 있지만 도시재생 사업의 기한의 문제도 함께 얽혀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5년을 기한으로 삼고 있다. 다시세운프로젝트는 2016년에 시작해 올해가 지나면 일몰이다. 자연히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보다는 이전에 벌였던 사업들을 마무리하는 수순이다.

20~30년 동안 이뤄진 외국의 도시재생 사례에 비하면 5년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이 때문에 시에서는 5년 기한의 도시재생 사업을 '마중물 사업'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사업으로 활성화를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인프라 등 기초를 놓고 이후를 도모하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마중물 사업 이후의 활성화를 위한 경로는 대부분 주민에게 맡겨진 상황이다. 송 회장이 언급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나 다른 부처와의 협력을 모색해야 하지만, 정작 다른 문을 두드리면 도시재생 사업 지역에 대한 중복 지원 논란이 야기되기도 한다.

송 회장은 어느 것도 속단하지 않았다. 그의 진단처럼 지금 진양상가는 모든 것이 열려있는 상태다. 마중물 사업으로 모처럼 기대와 기회를 갖게 되었지만, 마중물 사업에 그칠 것인지, 진양상가의 활성화로 이어질지는 앞으로 송 회장과 상인들 그리고 서울시가 어떻게 협력해 나아가느냐에 달렸다. 지금보다 더 많은 논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각오를 묻자, 송 회장은 도시재생의 목적을 다시 환기하자는 말로 대신했다.

"도시재생은 과연 누구를 위한 재생인지, 과연 이곳을 재생시켜서 변화가 있을 것인가. 그런 것들도 공직에 계신 분들이 잘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태그:#다시세운프로젝트, #진양상가, #진양상가 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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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네트워크(사) 대표. 문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역 현장에 들어가 지역 이름을 걸고 시민대학을 만드는 'OO(땡땡)은대학'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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