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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확산을 맞은 올 연말은 유독 더 몸과 마음이 시립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고 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 프리랜서, 직장인, 취준생 등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주차장에 수능 감독관을 위해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주차장에 수능 감독관을 위해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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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깜빡해도 조금은 느긋하게 집에 다시 들어왔는데, 지금은 문 앞만 벗어나도 화들짝 놀라 집에 들어온다. 몇 발자국 나서지 않아 마스크 없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할 지경이다. 벌금의 효과보다는 철저한 자기 방역의 효과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느 이유로든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가 멈춘 것 같아도 작은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완벽한 멈춤은 있을 수 없다. 오늘도 각자 아침에 일어나 활동하고 저녁이 되면 돌아올 것이고, 매일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든다. 밖에 나가지 않고도 출근과 퇴근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온라인을 통해 회의가 진행되기도 한다. 누구는 죽겠다고 하고 누구는 간신히 버틴다고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아직 살아 있다.

이사 온 지 20년째, 여기저기 손을 볼 곳이 많아졌다. 2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양쪽에서 사용하니 모두 50가구가 이웃하고 살아가는 상황이다. 이중 30퍼센트 이상이 크든 작든 리모델링 혹은 집 수리를 마친 상태다. 소음도 자주 들리고 엘리베이터에 붙여 놓은 내부 수리 안내 공고문도 제법 자주 접한다. 외부의 창과 화장실, 부엌을 바꾸거나, 가벽을 세우거나 베란다를 터서 내부를 바꾸고 넓히는 공사가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어느새 많은 가구가 밖에서 보기에도 표 나게 깔끔하게 바뀌었다.

특히 새로 이사 오는 집은 리모델링이 필수다. 한 달여의 긴 시간을 들여 집 내부를 말끔하게 수리한다. 수리하는 가구들이 생기며 발생하는 소음이 크지만 모두가 침묵으로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자신의 차례도 될 터이니. 공고를 통해 양해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견디기 쉬운 것은 아니다. 처음 일주일은 데시벨이 꽤 높고 다음 이삼 주는 신경을 은근히 자극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며칠 전, 위층에 이사 올 예정인 예비 입주민으로부터 마스크 2장과 손편지를 받았다. 처음 경험하는 이해와 당부의 메시지였다. 센스 있는 당부에 참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만약 우리도 집수리를 하게 된다면 그런 지혜를 발휘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소음은 여전히 힘들다. 여하튼 우리 집도 손볼 곳이 많다.

리모델링도 새 김치냉장고 구매도... 모두 미뤘다  

살면서 리모델링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부담이 가중된다. 이사에 버금가는 수고가 따를 것이 분명하고, 많은 살림살이를 밖에 내놓거나 이삿짐 컨테이너를 빌려야 한다. 짧아도 일주일은 가족들 모두 집을 떠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집을 비울 사정이 못 된다. 여전히 우리집 공시생 둘이 코로나 단계에 따라 집에 종일 있거나 단계가 완화되면 도서관에 가거나 하는 중이니.

모든 경제가 잠시 멈춘 듯한 상황에서 큰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다. 화장실 따로, 싱크대 따로 부담을 덜며 집을 비우지 않고 조금씩 수리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야말로 생각만 하고 있다. 잘 버티면 지금까지처럼 집도 안정되고 가족들 모두 집 밖에서 방황할 일도 없다. 물론 경제적 부담을 걱정할 일도 없다. 마음은 개운하지 않지만.

여러 일이 한꺼번에 다가올 때 상담에서 활용했던 기법을 내게 적용해 본다. 중요하고 긴급한 일, 중요하지는 않으나 긴급한 일,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일. 우선순위 매트릭스에 따르면, 집수리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는 않다는 결론이다. 집수리 못한다고 살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당장 사용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지고 무너진 상황도 아니니. 그래서 버텨보기로 한다.
 
2001년 구입해서 19년 사용하고 고장난 김치냉장고입니다.
▲ 고장난 김치냉장고 2001년 구입해서 19년 사용하고 고장난 김치냉장고입니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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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김치냉장고가 고장 났다. 스파크가 튀더니 불꽃이 솟았다. 당황해서 물을 찾았고 그러다 코드가 보여 코드를 뽑았다. 다행히 불씨가 커지려는 단계에서 진화가 됐다. 워낙 오래 사용하기도 했고, 내부의 코팅도 군데군데 벗겨진 상태여서 회생 불가로 마음대로 진단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평균 사용 기간보다 더 사용했다는 생각에 얼마가 들지 모르는 수리보다는 이젠 바꿔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련기사 : 19년 쓴 김치냉장고가 고장나고 생긴 일]

길게 일주일, 한 달 정도면 새 김치냉장고가 그 자리에 다시 있을 거라고 당시엔 당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고장 난 김치냉장고는 아직 그 자리를 우뚝 지키고 있다. 새로 사면 이전에 사용한 것을 수거해 갈 테니 폐기물 처리 비용을 아끼자고 두었던 것이다. 하루 이틀 새로 사는 것을 미루다 여섯 달이 지났다.

당시엔 여름철이라 김치냉장고 없이 살아가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크지 않은 냉장고만으로 음식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야말로 여름을 잘 버텨냈다. 다만, 겨울철 김장 때는 그래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때 가서 사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그런데, 마침 포털에 기사가 올라왔다. 15년 이상된 김치냉장고를 리콜해서 수리해준다고 했다. 딱히 간절함으로 버틴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틴 것도 아니었다. 몇 번이나 폐기물로 처리하려다 차일피일 미뤄진 것이었는데 수리를 받아 더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보상 판매도 가능하다고 한다. 버티니 이런 행운도 있다.

이 고단한 현실을 버티려면 

지금 하는 일도 그렇다. 지난 2월, 도서관에 열심히 다니며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다. 힘닿는 데까지 배워보자고 생각하며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바로 신청했다. 그에 따라 모임 그룹도 단톡방도 늘었다. 일주일의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생각에 배우고 싶던 모임에는 일정을 꽉 채워 가입했고, 한꺼번에 소통할 수 있는 단톡 방에는 메시지가 홍수처럼 쏟아지던 중 코로나 상황을 맞았다.

처음엔 진행하는 측에서도 혼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이른바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손도 무디고 느린 사람이 첨단 문명의 세상에 입문했고 16주의 수업을 마쳤다. 그 후로도 상담 과정, 보수 과정을 거쳐 지금은 주민센터에서 평생교육 상담을 주 3일 오전 시간에 진행하고 있다.

학습을 하며 두려움과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생각한 것이 버티기였다.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모르면 묻고 또 묻고, 실수도 많았다. 때론 혼자서만 뒤처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 버텨내는 것으로 승부 아닌 승부를 보았다. 누구를 누르고 어딘가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일도 한다. 나의 일자리가 있다.

버틴다고 하니 어쩐지 삶이 고단한 느낌이다. 이런 느낌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있다. 우연히 접하게 된 환경에 관한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또 관련한 방송이나 다큐를 통해 덜고 비우고 나누고 오래 사용하는 미덕을 새삼 알아가는 중이다. 환경지킴이의 마음으로 버팀의 의미를 상쇄해 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는 근근하지 않고 흡족하기까지 하다.

모든 생활의 중심에 돈이 있다. 돈의 필요나 가치, 효율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거짓말이다. 재난지원금이 잠깐 마음을 넉넉하게 했고 불안한 마음을 덜어주기도 했다. 힘들면 국가가 돕겠지, 하는 마음도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티는 힘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을 바꾸는 지혜가 필요할 때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태그:#코로나 19, #살아 있다, #버틴다, #위드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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