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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신간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유성운의 신간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이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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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을지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어릴 때부터 늘상 궁금했다."

유성운 기자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한 신문사에 갓 입사한 신입이었던 그는 용모가 반듯했고 예의가 깍듯했다.

며칠의 일정을 함께 하며 곁에서 지켜보니 취재도 열심이고, 거기다 문장도 탄탄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두루 갖춘 청년. 어느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는데, 그가 기자보단 학자, 또는 역사 연구자기 됐다면 더 어울리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어쨌건 유성운은 내 판단과는 무관하게 15년을 '기자'로 살았다. 입사한 언론사에서 지척의 신문사로 옮긴 그는 정치부에서 일하며 <유성운의 역사·정치>라는 기사를 연재했다. 제법이었다. 그간 익숙하게 읽던 기존의 정치 기사에서는 볼 수 없던 파격을 보였으니.

수십, 수백 편의 역사 관련 논문을 검토하고, 이를 21세기 한국 정치 현실 속에 어색하지 않게 녹여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 근데, 그걸 잘한 모양이었다. 일종의 팬덤(Fandom)까지 생겼을 정도였으니.

지난주 출간된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이다미디어)은 앞서 언급한 유성운 기자가 쓴 책이다. 3년쯤 연재했던 기사 <유성운의 역사·정치>를 거듭 다듬고 깎아 만들어낸.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을 출간한 유성운,.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을 출간한 유성운,.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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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 유발하는 역사 속 숨겨진 스토리를 찾아 수고와 시간을...

출간을 격려하려 전화를 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가 아닌 소장 학자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것이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학교를 다닐 땐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받아들였다. 20년 전엔 조선시대 토지 단위인 1결이 도대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알 수 없었다. 생산량에 따라 정했기 때문에 토지 비옥도에 따라 1결의 크기가 달랐다. 그런데 이제 몇몇 지역에선 그게 파악 가능하다. 그랬기에 재물 욕심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퇴계 이황(1501~1570)이 경북 일대에 수십만 평의 토지를 소요했던 땅부자란 것도 알 수 있었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은 크게 나눠 5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고대 삼국시대의 역사를 오늘날 현실 정치와 연결시키는 게 그 출발점. 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는 '국왕' '사림(士林)' '임진왜란'으로 세분해 각각의 역사에서 21세기 지금의 한국 정치와 연계시킬 지점을 찾아내고 있다.

보통의 독법처럼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어떤 한 부분을 따로 읽는다고 해도 독서의 흐름은 방해받지 않는다. 개별 원고마다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서다. 여기에 자유스럽고 분방한 유성운의 문체는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오해받는 역사와 정치에 부드럽게 칠해진 향기 좋은 윤활제가 돼준다.

그는 저자 서문을 통해 "책에 담긴 글들은 한국사를 전공한 정치부 기자의 공부 노트"라고 고백한다.

이 '공부 노트'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건 책 제작을 함께 한 출판사가 정성 들여 녹여 넣은 수백 가지의 도표와 지도다. 그것들만 봐도 책의 대략적 핵심이 파악될 정도. 출판 과정에서의 수고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그런 수고를 알아줘서일까? 아니, 그 이전에 유성운의 문장과 짧지 않은 시간 땀 흘린 공력이 인정을 받아서일까? 적지 않은 독자들이 출간 전부터 이 책을 기다렸다는 게 느껴진다. 유성운은 전화 통화에서 이런 말을 들려줬다.

"만난 적 없는 검찰 간부,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 해외 교포 등과 SNS에서 친구가 됐다. 연재한 기사가 여당에 비판적인데도, 잘 읽었다며 전화를 준 더불어민주당 인사도 있다. 연예인 김구라씨도 기억에 남는다. 올해 2월에 만났는데 명함을 줬더니 '아, 중앙일보에 역사 칼럼 쓰시는 분이죠?'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의 신위가 있는 도산서원. 유성운은 사료를 꼼꼼히 검토해 이황이 수십만 평의 땅을 가졌던 부자이기도 했다고 쓴다.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의 신위가 있는 도산서원. 유성운은 사료를 꼼꼼히 검토해 이황이 수십만 평의 땅을 가졌던 부자이기도 했다고 쓴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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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길잡이 역할하는 것

이젠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고 싶다. 책을 읽은 내겐 '신라에 나타난 처용은 페르시아 왕자인가?' '영조는 왜 10여 년이나 금주령에 집착했을까?' '성리학의 거두 이황은 수십만 평 땅부자였다!'였다는 소제목이 붙은 글들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생활하는 공간이 경북이기에 신라와 영남 유림의 스승으로 불리는 퇴계의 이야기에 먼저 관심이 갔고, '금주령을 엄격하게 지키려 했던 조선 왕 영조의 고집은 어디에서 연유했을까'란 의문은 주당(酒黨)으로서의 관심이었다.

다른 독자들에겐 '김춘추와 금춘추, 왜 김씨 발음이 변했나?' '왕건이 호남 차별을 정말 유훈으로 남겼나?' '토지개혁 외친 건국 공신, 경기도 땅 20% 챙겼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이 망하지 않은 이유' 등으로 명명된 챕터가 호기심과 더불어 관심을 끌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 유성운은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을 쓴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역사라는 학문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잡이 역할이 아닐까? 책을 쓰고자 한 건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주위 사람들과 고민을 나눠보고 싶었다."

그가 덧붙이는 "기후 변화와 조선 사회의 변동을 엮어보는 작업을 꼭 해보고 싶다. 쉽지 않은 주제이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도 마냥 입에 발린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공부하는 기자, 일정한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춘 기자가 드문 시대다. 다수의 기자들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오만 가지 사건을 접하고, 그 사건의 의미를 따라가려면 그것만으로도 지치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그걸 '엄살'이라고 욕하고.

어쨌건 유성운은 기자들이 내놓는 항변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드물고 귀한 기자'가 아닐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실린 것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유성운, #리스타트 조선사 도감, #유성운의 역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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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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