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그림책 공작소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단체 구입하다 주문 실수로 <소중한 하루>라는 책을 샀다. 옆 동네로 이사 간 떡볶이 집을 찾아가는 아이 두 명의 하루 일과를 다룬 이 책을 혼자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어디가 재미있는지 아이가 깔깔 웃으면서 보고 또 보는 바람에 다시 들여다 봤다.
 
 소중한 하루 겉표지
 소중한 하루 겉표지
ⓒ 그림책공작소

관련사진보기

 
만나떡볶이 집이 꿀단지 마을로 이사를 갔다. 다른 아이들이 울며 슬퍼할 때 똘이와 욱이는 포기하지 않고 꿀단지 마을로 가기로 한다. 꿀단지 마을로 가는 길은 험하다. 무시무시 숲과 마녀탕, 악마의 입을 지나서 가야하기 때문이다.

1단계 무시무시 숲에서는 폴짝 사사삭 대작전으로 양말과 물안경을 쓰고 통과하고, 2단계 마녀탕에서는 물안경과 빨대 팬티를 입고 통과하는 똘이와 욱이. 마지막 악마의 입은 번개걸음 후다닥 작전으로 튼트한 심장과 번개걸음으로 통과했다.

드디어 꿀딴지 마을에 도착해 만나떡볶이를 먹게 된 똘이와 욱이는 원래 먹던 그 맛이라며 기뻐한다.

아이 둘이 떡볶이 집을 찾아가는 단순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책 속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드가 숨겨져 있다. 8살 된 동글이는 매 단계별 제시된 작전명과 준비물을 재미있어했다.

그냥 잔디밭을 지나올 뿐인데 무시무시 숲이라면서 폴짝 사사삭 작전으로 통과하고, 미녀수영장을 마녀탕이라면서 투브를 타고 헤엄쳐 나오는 똘이와 욱이 모험이 신나 보이는 아이는 따라해 보고 싶어했다. 특히, 마지막 도보터널을 건널 때 번개걸음 100개가 필요하다는 장면을 제일 좋아했다.

어른들에게는 별거 아닌 잔디밭, 수영장, 도보터널도 아이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숲이 되고 마녀탕, 악마의 입이 되는 발상이 재미난 책이다. 어른의 시각으로 혼자 보았을 때는 아이들 스스로 무언가 해낸 성취를 이야기하는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아이가 작전명과 준비물에 흥분하며 자신도 따라 그리는 모습을 보니 어른에겐 일상적인 배경이 아이들에겐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게 보였다. 세상에 나온 지 몇 년 안 된 아이들이 겪는 하루하루는 매 순간이 새롭게 특별한 소중한 하루일 것이다.

10월 학교숙제 중 '내 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글을 쓰는 숙제가 있었다. 코로나로 평소에 비해 여행을 다니지 못 했지만 6월에 제주도도 다녀왔고, 여름엔 남동생네 가족이랑 외가에서 오랜 시간 휴가를 즐기기도 했다.

시골 잔디밭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하고 몇 날 며칠을 보낸 일이나 제주도 바다에서 놀던 일들을 제치고 아이가 적어낸 기억에 남는 하루는 새벽 1시에 잠을 잔 날이었다.

"늦었어. 어서 자. 벌써 새벽 1시야. 12시가 넘었어. 이제 화요일이라고."
"정말? 그럼, 화요일에 자서 화요일에 일어나는 거야?"


새벽 1시에 잔 걸 엄청 신기해 하고 좋아하더니 그걸 써내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아이를 재우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드라마도 보다 보면 12시 넘기는 일은 예사다.

새벽에 잠드는 일이 젊은 날에도 종종 있었지만 육아를 하면서 새벽을 지키는 삶은 일상이 됐다. 그런 내게 새벽에 잠드는 일은 고단한 일, 나쁜 습관,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아이는 자신이 12시 경계를 넘었다는 사실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외박은 정말 재미없게도 독서실에서 잠을 잔 게 첫 외박이다. 중학교때부터 시험기간에만 독서실을 끊어서 다녔다. 새벽 늦게까지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밤 12시까지 공부하고 집에 와서 잔 다음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서 마무리하는 루틴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때 친구랑 독서실에서 밤을 새기로 했다(친구네 집에서 잠을 잔 거는 외박으로 치지 않았다). 각자의 집에 허락을 받고 밤 10시에 독서실에서 만났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친구랑 둘이 공부를 핑계로 밤을 샌다는 게 어찌나 흥분되던지.

입시라는 중차대한 목적을 가지고 독서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언니들처럼 우리도 언니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휴게실에서 수다 떤 시간이 공부한 시간 보다 많았고 밤을 새긴커녕 새벽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서 시험 공부는 평소보다 많이 못 했다(역시 공부는 혼자 해야함).

올해 8살인 아이는 12시 넘어 오늘을 지나 내일 잠을 잔 게(비록 자신의 의지에 의한 일이 아닐지라도) 신기하겠지만 자라면서 점점 의지를 가지고 경계를 넘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때 아이가 지금처럼 환희에 찬 웃음으로 기뻐하고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경계를 넘으려는 아이의 시도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우리 아이도 <소중한 하루> 똘이와 욱이처럼 자신만의 작전과 준비물로 세상의 경계를 통과하는 용감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하루

윤태규 (지은이), 그림책공작소(201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