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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일자리 문제 해결과 함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 개선, 노동 인권 강화에 대한 기대를 크게 받았다. 그러나 노동계의 평가는 매우 차갑다. 대통령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등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면, 노동 현실을 제도적으로 규정하는 노동 관련 법 제·개정에는 큰 한계를 보여왔다.

산업·건설 현장의 사망·사고 소식이 들려올 때면 변하지 않는 우리의 노동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1994년 통계 작성 이후 201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실효성이 부족하고, 대형 재해 사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걸음마조자 떼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구시대적 법률로 평가받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ILO가 주목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이런 법·제도적 현실과 노동 인권의 퇴행으로 우리나라는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ILO)의 주요 권고·감시 대상 국가이다. ILO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노동기준을 제정하여 협약과 권고 형태로 만드는데 이는 세계 각 국가 노동법을 위한 모델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정은 각 국가의 정부가 ILO 협약을 비준하고, 그 협약의 취지를 살려 관련 법률을 제·개정하면서 이뤄진다. 현재까지 ILO 협약은 189개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189개 ILO 협약에 대한 비준율은 15.3%에 불과하다. ILO가 우리나라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ILO는 국제노동기준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분야의 협약을 핵심협약(fundamental conventions)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핵심협약 8개 중 4개(아동노동금지와 관련한 제138호․182호 협약, 기회균등과 관련한 제100호․111호 협약)를 비준하고 4개(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제87호․98호 협약, 강제노동금지와 관련한 제29호․105호 협약)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187개 ILO 회원국 중 85%가 7개 또는 8개 협약을 비준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가장 적은 4개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있다.

OECD 36개국 중 핵심협약 모두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와 함께 미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 멕시코가 있다.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2개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OECD 국가는 미국과 우리나라뿐이다. 그리고 2017년 이코노미스트지(The Economist)가 발표한 국가별 민주주의 지표에 따르면, 상위 20개국 중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 뉴질랜드, 호주 3개국에 불과하고, 결사의 자유와 관련되는 두 개의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게 우리의 현주소다.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새로운 역사 만들어야

ILO 입장에서 참으로 기운 빠질 일이다. 수차례 핵심협약을 비준하라며 우리 정부와 국회를 압박했다. 수많은 권고에도 개선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 해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제재의 심판대에 올리기도 했다. EU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투자 유보, 통관절차 강화 등의 제재를 실행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후진적인 우리의 노동 현실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강화하는 범주를 넘어서는 사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평가받는 기준이 된다. 통상국가로서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국격,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일부 경제계의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주장에 사로잡혀 나라 전체의 이익을 훼손하는 어리석은 판단은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동기본권 보장을 약속했고, 이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포함됐다. 지난 달 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더 이상 늦출 수 없고, 올해 반드시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우리가 처한 불우한 노동 현실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련 법·제도를 바꾸는 의미 있는 초석이 될 수 있고,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이 될 것이다. 노동존중사회의 기본이 되는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늦었지만, 우리나라 노동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정부로 남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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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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