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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포레스트
 리틀포레스트
ⓒ 리틀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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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친구가 자취방에 놀러 왔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준비하는 내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널 보니까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나."

그 영화를 본 적이 없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돼지고기 사태 찜을 해보려고 고기를 양념에 재우다, 뜬금없이 친구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고기에 양념이 배어들려면 최소 2시간. 비는 시간 동안 <리틀 포레스트>를 틀어 볼까.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확실히 영화를 보자마자, 친구가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혜원(김태리)은 임용고시 합격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상경했다가, 남자친구만 합격하여 회의감에 빠져 쓸쓸히 시골의 본가로 돌아온 20대 청년이다. 능숙하게 양파와 감자를 재배하여 요리를 해 먹고, 가을이 되면 곶감을 말리고, 친구를 불러 떡케이크도 해 먹는다.

이런 혜원을 두고 주변에서 대단하고 치켜세워 주지만, 과거 매일 손수 싼 도시락을 바쳤던 남자친구에겐 '구식'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나는 영화 내내 혜원에게 이입되었다. 작은 가마솥을 사서 현미밥을 하고, 버터를 하나하나 소분하고, 표고버섯을 불리는 나의 자취생활을 영화로 찍어 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친구도 생활력 강한 20대 청년 주인공 모습에서 나를 비춰본 것 같았다.

혜원과 나의 공통점 
 
 리틀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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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혜원과 닮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친구는 몰랐겠지만, 혜원과 나는 이렇게 생활력 강해져야만 했던 공통의 과정이 있었다. 극 중 혜원과 그의 엄마(문소리)의 관계는 상당히 독특하다. 혜원이 아직 고등학생이던 시절, 그의 엄마는 돌연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 '엄마도 이제 미뤄뒀던 일을 할 때가 되었다, 각자 삶의 의미를 찾았을 때 다시 만나자'는 등의 구절이 써 있었다.

무조건 희생하는 기존의 모성애에서 조금 벗어나, 엄마도 본인의 삶을 추구할 주체적인 가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혜원은 그런 엄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하루아침에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된 혜원은 오랜 꿈이었던 서울에 올라가고, 냉혹한 사회에 치이다가, 다시 본인의 시골 터로 돌아와 엄마와 나눠 먹던 음식들을 직접 해 먹으며 추억을 회상한다.

'독립 당한' 그녀의 모습이 나와 너무나 비슷했다. 나는 성인이 되면서, 엄마와 허구한 날 싸웠다. 화장실을 습식으로 쓸지 건식으로 쓸지, 머리카락은 한꺼번에 치우는 게 좋을지 그때그때 줍는 게 좋을지, 밥은 양식이 좋을지 한식이 좋을지. 다양한 경험을 하기 시작한 나의 생활 방식과 몇십 년간 정립해 온 엄마의 생활 방식은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나를 앉히더니 말했다. 집을 나가라. 너무나 차분하게, 확고하게 얘기했다. 화가 나 있지도 않았다. 이제 네가 성인이 되었고, 직장도 구했으니 네 방식대로 삶을 꾸릴 때가 된 것 같다. 엄마는 엄마 삶을 살 테니, 너는 네 삶을 살아라. 말이 나오기 무섭게 월세 단칸방으로 나를 쫓아냈다.
 
 닭가슴살완자탕
 닭가슴살완자탕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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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억울하고 황당했다. 주변 친구들은 오히려 부모님이 본가에서 돈 아끼라고 못 나가게 한다는데, 나는 내가 집에 있고 싶다는 데도 나가라 하다니. 엄마는 내가 그렇게 싫은가? 영화의 혜원처럼 바닥에 덩그러니 앉아 씩씩거리기 바빴다.

시간이 얼마 지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본가처럼 항상 먹을 것이 있는 요술 냉장고가 아니었다. 배달을 시키려니 웬걸, 한번 시키는 데 2~3만 원이었다.

훌쩍거리며 인근 마트로 가서 장을 봤다. 가장 만만한 볶음밥을 해 먹었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남은 재료들을 비우려면 요리를 해야 하니 또 레시피를 검색했다. 닭가슴살 완자탕, 대패 삼겹살 된장찌개, 오일 파스타… 슬슬 어깨가 으쓱해지고 저녁메뉴를 고민하는 것이 새로운 일상의 즐거움이 되었다.

차갑고 허전했던 방이 슬슬 아늑하고 따뜻한 아지트가 될 때쯤, 부모님이 오셨다. 가장 자신 있는 볶음밥과 닭가슴살 완자탕을 내놓았다. 엄마는 한술 뜨시더니, "다 컸네" 하면서 미소 지었다. 그제야 나도 웃었다.

부디, 우리의 작은 숲을 가꿀 수 있기를
 
 리틀 포레스트 촬영현장
 리틀 포레스트 촬영현장
ⓒ 리틀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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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이 1년 동안 시골에서 자신의 작은 숲을 꾸려나갈 때 즈음, 엄마도 본인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며 영화는 끝난다. 나의 독립은 곧 엄마의 독립이었다.

출근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늦잠을 자버렸을 때, 엄마는 전화를 해봐야 하나 고민했고, 내가 이것저것 편의점에서 간식을 고를 때, 엄마는 평소처럼 심부름을 부탁하려다 직접 외투를 입고 나갔다. 내가 퇴근 후 TV를 보며 자유를 만끽할 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 딸의 빈 자리를 견뎌야 했다. 너무 커져 버린 우리 모녀는 분갈이를 하듯, 새로운 화분에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누군가는 <리틀 포레스트>가 시골의 환상을 심어주는 영화라 하지만, 배경이 어디인들 그리 중요할까. 시골이든, 도시든, 해외든 각기 자신의 숲을 꾸려나가면 되는 것을. 세상엔 바쁜 삶에 치이면서도 자신을 위한 한끼를 정성스레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 씨앗을 뿌리고 있는 그들의 들판이, 부디 작은 숲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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