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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야산을 뛰어다니는 고라니 모습
 동네 야산을 뛰어다니는 고라니 모습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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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렇게 숲에서 수많은 고라니를 봤어도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녀석들만 봐왔기에 정작 그들이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한 번도 들어보질 못했다.

그런데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고문영과 문강태의 달콤한 로맨스를 방해하는 슈퍼악당처럼 등장하는 것이 바로 고라니 소리였다. 송아지소리 비슷하기도 하고, 큰 개가 짓는 소리 같기도 한 "아악, 아아악"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 고라니는 이렇게 소리를 내는구나. 고라니 모습을 알고 있기에 그 소리가 너무 낯설었다. 우리가 보통 사슴 하면 가냘프고 여린 이미지를 생각하는데, 고라니는 우리나라 사슴종류 중에 가장 크기가 작다. 그런 그들이 그렇게 우렁찬 소리를 낸다니 의외였다. 겁이 많은 성격에 경계심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고라니 똥
 고라니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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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사슴이다", "노루다" 하고 소리를 지른다. 옛날 이야기에 사슴과 노루는 등장하지만 고라니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처럼 사람들에겐 사슴과 노루가 알려져 있지만, 실제 자연에서 사슴과 노루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숲에서 본 것은 다 고라니다.

고라니는 노루, 사슴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그들보다 크기가 작고 뿔이 없다. 사슴하면 대부분 나뭇가지처럼 생긴 크고 멋진 뿔을 생각하는데. 뿔이 없다니 좀 초라해 보이고 덜 자란 사슴처럼 보인다. 그런데 고라니는 송곳니가 특징이다. 수컷의 윗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턱을 덮을 정도로 길다. 암컷의 송곳니는 작아서 튀어나오진 않는다. 송곳니는 싸울 때 쓰기도 하지만, 주로 나무뿌리나 풀뿌리 등을 캘 때 사용한다. 이외에도 풀이나 나뭇잎, 연한 나뭇가지들을 뜯어먹는다. 

고라니는 영어로 Water Deer, '물사슴'이라고 부를 정도로 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물이 있는 곳 주변, 깊은 산속보다 나지막한 야산 중턱 아래 산기슭이나 강기슭, 갈대밭이나 풀숲에 산다. 그래서 산 아래 논에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풀을 뜯어먹고 싸는 고라니 똥은 서리태 같은 작은 검정콩처럼 생겼다. 그래서 아이들이 콩자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가 풀숲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건강한 고라니는 콩알같이 똥을 하나하나 떨어뜨리며 싸는데 가끔 속이 안 좋은지 동글동글한 똥이 길게 뭉쳐 있는 것도 보인다.

직접 고라니를 못 봤다고 해도 콩알 똥을 발견하면 이게 큰 고라니인지 새끼 고라니인지. 건강상태까지 추측하며 아이들과 흔적 찾기로 신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고라니 똥까지 사랑스럽게 보이니 필자는 분명 고라니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 

숲에서 어쩜 다람쥐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는 고라니. 그런데 우리에게 흔한 고라니가 전 세계적으론 멸종위기동물이다. 한국과 중국이 원산이지만 중국에서는 일부지역 적은 숫자만 살아남아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호랑이나 늑대 같은 천적이 사라진 뒤로 개체수가 엄청나게 증가해 전세계 고라니의 대부분을 우리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신기하다. 한반도에서 노루나 사슴은 많이 사라졌는데, 유독 고라니만 이렇게 많이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뭘까? 
 
고라니 발자국
 고라니 발자국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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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고라니는 사람들에겐 골칫거리가 됐었다. 검색창에 보면 고라니와 연관검색어로 가장 많이 올라오는 것이 '고라니 퇴치법'이다. 특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아주 고라니를 싫어한다. 고라니가 내려와 농작물을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필자도 예전 산 밑에 밭을 얻어 고구마 농사를 진 적이 있었다. 고구마 순을 세단 사서 심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라니가 찾아와 거의 대부분을 잘라서 또 캐 먹었다. 간신히 남은 몇 개의 고구마는 알이 달리자마자 멧돼지가 내려와 흔적도 없이 캐먹어 버렸다. 결국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것으로 끝난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산 밑 농사는 짓지 않는 것이 낫다는 교훈을 얻었다. 

숲에서도 자주 보지만, 길에서도 자주 만난다. 길에서 만나는 고라니는 대부분 로드 킬 당해서 누워있는 모습들이다. 어린 새끼부터 제법 큰 고라니까지 다양하다. 겨울이면 더 많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아래로, 밭으로, 마을로 내려오다 보니 사람들과 차와 자주 만나게 돼 그런 변을 당하게 된다. 그들이 구태여 사람 사는 곳까지 내려와서 당한 사고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사람들이 그들이 사는 곳까지 너무 가깝게 쳐들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원래 그들이 살았던 숲이나 들이었던 곳에 도로를 만들고, 집을 짓고 밭을 만든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 사는 곳에 쳐들어가 사고를 친 건 사람들이다. 고라니가 골칫거리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신승희 생태환경교육 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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