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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관광객이 승선해 있는 유람선 2층에서 존슨이 충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유람선은 총 2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 없는 1층 선실에서 짐을 풀었더니 마이크를 잡은 이곳 출신 가이드가 2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앉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는 홍도 리무진을 끌었던 숙박 주인 말을 상기하며 2층 선미 오른쪽으로 갔고 먼저 갔던 존슨이 자리를 맡아 놓았다.

나는 오른쪽 선미 기둥을 한 손으로 잡고 두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린 채 발바닥에 힘을 주었다. 차라리 서 있는 것이 파랑에 선체가 흔들리면서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을 막아 주었다.

오른쪽으로 홍도 비경인 칼바위를 시작으로 남문바위, 실금리굴, 석화굴, 거북이바위 등이 펼쳐졌다. 나는 느리게 가는 여객선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면서 눈은 활짝 열어 둔 채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양다리에는 힘을 더 실었다. 양쪽 허벅지가 당겼다. 해풍이 불고 가을 오후 햇살은 축복하듯 정수리를 어루만졌다.
 
 숙소에서 바라본 홍도1구 일출.
 숙소에서 바라본 홍도1구 일출.
ⓒ Jonathan 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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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은 홍도2구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2구는 1구와 달리 전형적인 어촌이다. 민박집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요즈음은 여행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묵고 있는 어가는 방안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다. 서남단의 적막함을 다 몰고 온 듯한 파도소리를 어둠 속에서 귀만 열어두어도 들을 수 있다.

존슨은 어제 함께 갔던 산등성이의 유인 등대가 보이자 내게 아는 척을 했다. 유인 등대는 바다에서 볼 때 더 단아하게 빛났다. 속살처럼 분홍빛을 띠는 해안애 위에서 당당하게 서 있는 무인 등대가 곧이어 나타났다. 작은 덩치로 거센 파도를 이겨내며 어두운 바닷길에 빛을 던져 줄 저것! 홍도를 닮아 있었다.

강한 생명력 홍도
   
 홍도2구에 있는 무인 등대.
 홍도2구에 있는 무인 등대.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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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없었다. 바위섬이어서 농사도 지을 수 없었다. 외해에 속해 양식업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해수담수화 시설이 있어서 그나마 물 걱정은 덜지만 몇 년 전까지 빗물이 소중한 식수였다. 다행히 기복이 심한 산에는 참나무가 많아서 숯을 굽기에 적합한 조건이었다.

홍도에는 18기의 숯가마터가 있었다. 숯을 팔아 식량과 소금을 샀다. 또한 숯은 빗물을 받아 놓은 항아리와 쌀독에 넣어 나쁜 기운을 없애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숯이 그나마 생계수단이었다. 1940년대까지 숯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했으니 그 지난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을까. 이렇게까지 아름답고 윤택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시간이 흘러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손이 그 뿌리를 찾고자 한국 땅을 밟았다. 1973년 석유 파동 때 모든 돈을 잃고 미국을 택한 존슨 할아버지 고향은 부안이었다. 할머니는 목포였다.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목포에서 홍어를 먹어봤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존슨. 이번 여행은 일종의 그의 뿌리 찾기였다. 어머니의 추천으로 홍도까지 오게 됐다는 그는 중요 포인트가 나올 때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환호했다.

해안절경은 오후로 넘어가는 햇살에 붉은 빛 맨살을 살포시 드러냈고 가이드는 파식애(波蝕崖)와 파식대(波蝕臺) 등 해식단애(海蝕斷崖)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이 즐비한 해안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주기에 바빴다.

수많은 해식동(海蝕洞), 크고 작은 바위섬(岩島), 2개의 바위문(岩門), 분재와도 같은 소나무가 맑고 푸르른 바다와 어우러져 있었다. 가이드는 그의 장삿속이 내비치는 익살스런 멘트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여기 간혹 단풍이 들어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죠? 단풍나무가 아닙니다. 몇 나무에 단풍이 들었을 뿐인데 옻나무 같은 약초 나무가 잎이 붉어져서 그래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녹음이 짙습니다. 홍도 밤나무 아시죠? 홍도 밤은 손가락 만한데 밤이 떨어져도 잎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음해 봄, 새싹이 나왔을 때에야 우수수 떨어져요.
그래서 홍도가 사시사철 푸를 수가 있습니다. 또 소나무가 있어요. 홍도는 강한 나무만 살아남습니다. 단풍나무처럼 잎이 얇으면 짠물에 다 녹아버려요. 지금 저렇게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는 것들은 그 뿌리가 깊고 거친 외부 환경에도 적응해서 살아남은 것들입니다."


나는 갑자기 정답을 알아낸 사람처럼 흥분됐다. 옆에 있는 존슨에게 금방 들었던 말을 전해주고는 세월 속에서 바람과 파랑에 몸을 내주고 내주어 자신만의 개성적인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는 해안 절벽 위 소나무를 가리켰다. 

존재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들, 그 속에서 아름답게 우뚝 선 소나무 그리고 홍도. 잔잔한 해풍을 맞으며 나는 유람선에서 수많은 홍도를 마주하고 있었다. 홀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 의지하며 저렇게 당당하게 빛나고 있는 것(사람)들. 나 또한 오후 햇살을 맞으며 아름답게 여행 한가운데 서 있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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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다. 2016년부터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장편소설 《죽음의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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