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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사진은 필름을 이용하여 촬영하고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괄호 안에 간단한 기종과 필름 종류를 기재하였습니다. [기자말]
* '삼척에서 버스 타랬더니... 배낭 메고 동해까지 걸어간 아이들'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기행 6일째 되는 날 우리는 바다를 떠나 내륙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봉화군 소천면 승부리.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제법 큰 물줄기가 되어 절벽을 깎아내리며 흐르는 곳이다.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로 들머리와 날머리 사이에 찻길이 없다. 오직 기찻길과 걷는 길 밖에 없는데, 걸어서는 6Km인 길을 차로 돌아가려면 60km를 달려야 하는 곳이다.
 
(645N/Ektar100) 기찻길 바로 옆으로 마련된 길도 있어서 느리게 다니는 관광열차와 인사를 할 수 있다.
▲ 강과 기찻길 사이로 (645N/Ektar100) 기찻길 바로 옆으로 마련된 길도 있어서 느리게 다니는 관광열차와 인사를 할 수 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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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때묻지 않은 경관을 자랑한다. 보통 승부역에서 분천역 사이의 12km를 걷곤 하는데 분천-비동 코스, 비동-양원 코스, 양원-승부 코스로 나뉘고 전체를 가리켜 '세평하늘길'이라고 일컫는다. 하늘이 세 평이라니, 얼마나 골짜기가 깊으면 이런 표현을 썼을까. 우리는 이 중 가장 아름다운 양원-승부 코스를 걷기로 했다.

나는 이곳이 벌써 다섯 번째였다. 직업 특성상 긴 여행은 여름과 겨울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가을 풍경이 궁금했던 곳이었다. 더불어 학생들과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이번 기행 코스에 이곳을 넣으면서 그 소원을 드디어 풀게 되었다.

청명해 보이지만 중금속 오염이 있던 곳

2018년 여름 이곳을 처음 걸었을 때,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었고 신들린 듯 중형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대여섯 롤의 필름을 단숨에 스캔하고 기사를 쓰기 위해 이곳의 정보를 검색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아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봉화군과 안동호의 중금속 오염에 관한 내용이었다. 원인은 휴, 폐광산과 석포제련소로 지목되었다. 굵직한 TV 방송이나 매체에서 이에 관해 다루었고 환경단체에서 시위를 하였으며 지자체는 영업정지를 명령하는 등, 다툼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실제로 석포 제련소 주변의 나무들은 현재도 앙상하게 고사된 상태로 있고 2016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안동호의 토양에 카드뮴이 심각한 수준으로 축적된 것이 밝혀졌다. 카드뮴은 아연을 제련할 때 발생하는 중금속으로 이따이이따이 병을 야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환상적인 물빛. 국립공원이 아닌 곳에서 이 정도의 풍경과 물줄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곳은 다름아닌 낙동강이다.(67ii/Pro400H)
▲ 2018년 여름 사진 환상적인 물빛. 국립공원이 아닌 곳에서 이 정도의 풍경과 물줄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곳은 다름아닌 낙동강이다.(67ii/Pro40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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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ii/Pro400H) 풍경에 취해 찍었던 사진
▲ 2018년 여름 (67ii/Pro400H) 풍경에 취해 찍었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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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풍경이 궁금했던 곳 (67ii/Pro400H)
▲ 2018년 여름 사진 가을 풍경이 궁금했던 곳 (67ii/Pro40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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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들을 보라. 우리나라에서 저 정도의 경치를 가진 곳은 흔하지 않다. 물이 깊고, 많고, 맑은 데다가 물길 주변으로 시야가 열려 있어 하늘과 주변 산허리들을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위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제련소가 증기를 뿜고 있다.

사람조차 살 것 같지 않은 첩첩 산중에 엄청난 규모의 공장이 갑자기 눈 앞에 들어오고, 병상에 누워 있느라 떡진 노인의 머리칼처럼 앙상하게 말라버린 나무들이 보인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감성이 풍부해서가 아니다. 나의 설명을 듣고 이 광경을 본 모든 사람이 그러했다.

환경단체는 제련소의 폐쇄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현재 석포면 주민들 중 대부분이 제련소에서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철금속이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으면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것, 지역경제 상황 등을 고려하면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기업의 윤리적 행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측면이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었던 그곳

그래도 그 풍경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2019년 겨울에는 직장 동료들을 이끌고 트래킹을 다녀왔으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꼭 이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거두어지지 않았다. 더불어 환경에 대한 고민거리도 안겨주고 싶었다.

이번 백패킹 노작기행의 여정을 짜는 중 마침 동해에서 더 이상 강릉 방향으로 전진하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안전히 걸을 만한 길과 적절한 잠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다가 문득 그곳 생각이 났다. '그래! 영동선 기차를 타고 승부로 가자!' 3년 묵은 소원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MZ-S/Ektar100) 승부로 향하는 기차
▲ 동해역에서 (MZ-S/Ektar100) 승부로 향하는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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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역에서 오후 5시 40분에 내렸다. 산중이라 이미 어둠이 깔린 뒤였다. 사전답사 때 뵈었던 펜션 사장님께서 친히 역까지 마중을 나와 계셨다. 커다란 숯불그릴 5개에서 예쁜 불꽃이 고요히 일렁이고 있었다. 고기 30근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이 날 새롭게 합류하신 수석교사 선생님께서는 40인분 밥과 찌개를 지어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다.

하늘에는 별과 달이 화려하게 수를 놓았다. 공기가 워낙 맑고 구름 한 점 없어서 92%의 하현망의 밝은 달이었지만 별자리도 선명하게 보였다. 대신 일교차가 매우 커서 아침에는 영하 7도의 기온이 예보되어 있었다.

나는 다음 날 있을 봉화읍에서의 야영에 대비하여 이곳에서 미리 텐트 취침을 자처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기온이 많이 낮아지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안전하게 잠을 청할 수 있을지 미리 경험해보고자 했다. 일부러 핫팩 없이 패딩과 침낭으로만 잠자리를 꾸렸다.

"쌤. 밖에서 주무세요?"
"어. 너네 내일 여기랑 비슷한 온도에서 자야 하는데 안전한지 어떤지 내가 미리 자보려고."
"쌤은 정말 대단하세요."
"응? 왜?"
"몰라요. 그냥 제가 만났던 쌤들 중에서 제일 대단한 것 같아요."
"야. 사실 나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잘 못 자. 그래서 그런겨."


뜻밖의 칭찬에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텐트에 들어가기 직전 들었던 이 말이 나의 마음을 데워주어서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휴대폰) 수은주가 영하 7도를 가리켰다.
▲ 하얀 아침 (휴대폰) 수은주가 영하 7도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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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가 다 되도록 텐트 안의 서리가 녹지 않아 접지를 못했다. 나는 비상 차량을 가지고 분천역으로 가야 했다. 교장선생님께 텐트를 접어 줄 것을 부탁드리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42km를 달려 분천역에 주차하고 다시 펜션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아이들과 함께 걷기 위해서였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햇살이 매우 좋았다. 낙엽송의 가을빛이 제대로 나올 것 같아서 마음이 좋았다.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들은 이런저런 잡담을 해댔다. 본격적인 풍경이 나오기 전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짧은 연설을 했다.

"여러분. 이곳이 어디라고요?"
"낙동강이요."
"낙동강 하면 깨끗한 강이 떠오르나요? 더러운 강이 떠오르나요?"
"더러운 강이요."
"그래요. 그것은 하류의 오염된 모습이 우리에게 많이 각인되어서 그럴 거예요. 그런데 이곳을 보세요. 정말 깨끗하죠? 이렇게 맑은 물이 사람 사는 곳을 지나면 점점 오염이 되는 거예요. 어떤 마음이 드나요?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원시인처럼 살자는 것이 아니에요.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겁니다. 걸으면서 한 번 생각해보세요."

 
(645N/Ektar100) 이 다리를 건너면 차로 갈 수 있는 길은 끊긴다.
▲ 길의 초입 (645N/Ektar100) 이 다리를 건너면 차로 갈 수 있는 길은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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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N/Ektar100) 물이 절벽을 깎으며 길을 만들고 오랜 세월 풍화되어 발 아래의 모래가 되었음을 가르쳤다.
▲ 강과 절벽과 나무, 그리고 모래 (645N/Ektar100) 물이 절벽을 깎으며 길을 만들고 오랜 세월 풍화되어 발 아래의 모래가 되었음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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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로 수정했던 계획은 6km를 걸어 양원역에 도착한 후 물만 부으면 음식이 데워지는 전투식량을 먹는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낮 시간의 관광열차가 없어지면서 점심을 중간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9월부터 다시 V트레인과 산타열차가 운행되어, 우리는 양원역에서 산타열차를 타고 분천역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이들은 좀 더 편해진 상황이 반가우면서도 내심 전투식량이 궁금했는지 이런저런 아쉬움을 토해냈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면 조만간 꼭 한 번 전투식량을 먹어보는 체험을 제공해줄 것을 약속했다. 이참에 산으로 아이들을 끌고 갈 생각에 혼자 신이 났다.

승부에서 양원으로 이르는 길은 '비경길'이라 일컬어질 만큼 아름다운 광경의 연속이다. 발 밑에는 고운 모래에서부터 커다란 바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암석들이 놓여 있었다. 영하의 공기는 점차 온화해져서 영상 6도까지 올라갔고 걷기에 가장 좋은 계절, 우리는 강물처럼 하류로 내려갔다.
 
(645N/Ektar100) 햇살이 낙엽송 끝에 가 부서졌다.
▲ 햇빛을 받으며 (645N/Ektar100) 햇살이 낙엽송 끝에 가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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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N/Ektar100) 바위의 색은 계절마다 같을 것인데 그 마저도 가을 빛을 띠는 것 같았다.
▲ 가을 강 (645N/Ektar100) 바위의 색은 계절마다 같을 것인데 그 마저도 가을 빛을 띠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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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 언제 쉬어요?"
"조금만 더 가면 쌤이 항상 쉬던 바위가 나와."
"쌤은 몇 번이나 오셨어요?"
"응. 이번이 다섯 번째야. 너희들하고 정말 오고 싶었는데 이번에 소원 풀었다."
"쌤. 거기서 물수제비 뜰 수 있어요?"
"가능. 시합 한 번 해볼까?"


쌤쌤거리는 아이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하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아이들에게 말했던 바로 그 바위가 생각보다 빨리 등장해서 놀랐다. 우리는 잠시 앉아서 햇살을 쬐었다. 남자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해댔다.
 
(645N/Ektar100) 10분간 후미 사람들을 기다리며 쉬었다.
▲ 양지바른 바위 (645N/Ektar100) 10분간 후미 사람들을 기다리며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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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N/Ektar100)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던 수석 선생님은 절벽을 한참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 응시 (645N/Ektar100)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던 수석 선생님은 절벽을 한참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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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가을, 6km를 걷는 동안 만난 것은 물과 나무와 하늘뿐이었다.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현재는 안타깝게도 거리두기 단계를 계속해서 격상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의 기행 당시에는 1단계 수준이었고 기획한 여정 자체가 워낙 사람 없는 오지에 우리만 움직이는 코스여서 아무런 문제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양원역까지도 생각보다 금세 다달았다. 아이들 중 3분의 1은 이게 끝이냐며 아쉬워했고 3분의 1은 더 걷자는 말에 학을 떼고 손사래를 쳤다. 난이도 조정이 잘 되었나보다. 맨 처음 계획은 12km를 모두 걷는 것이었는데 무리하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645N/Ektar100) 엄마 품에 안기듯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한 학생
▲ 자연 속으로 (645N/Ektar100) 엄마 품에 안기듯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한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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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N/Etar100) 완주를 기뻐하는 듯 주먹을 불끈 쥔 학생
▲ 양원역 앞에서 (645N/Etar100) 완주를 기뻐하는 듯 주먹을 불끈 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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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역사이다. 워낙 오지인 탓에 교통편이라고는 철도밖에 없었는데 이 마을에는 기차가 서지를 않으니 이곳 사람들은 창 밖으로 짐만 던져두고 승부역에서 내려 걸어와야 했다. 걷는 거리를 줄이려고 철도 위를 걷다가 운명을 달리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주민들이 끊임없이 민원을 넣었고 결국 영동선 개통 33년 만에 이곳에 기차가 멈추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대합실을 만들고 이정표를 세웠다. 그렇게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역이 되었다.

오후 1시 29분에 도착하는 산타열차를 기다리며 양원역의 틈새 역사를 짧게 강의하고 따사로운 햇빛을 맞으며 근 한 시간을 자연 속에서 가만히 쉬었다. 낙엽송을 비롯한 많은 나무들에 가을빛이 한창이었고 우리들의 눈빛도 그만큼 깊어져 갔다.
 
(645N/Ektar100) 양원역은 봉화군에, 보이는 건너편은 울진군에 속한다.
▲ 양원역에서 바라본 낙동강 (645N/Ektar100) 양원역은 봉화군에, 보이는 건너편은 울진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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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다시 몸을 싣고 분천역으로 갔다. 그곳에는 드디어 6일 만에 만난 전세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봉화군 읍내로 향했다. 이제 외지에서 지내는 마지막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예보된 기온은 영하 6도.

애초 계획되었던 텐트 취침의 존속 여부를 놓고 며칠 동안 교사들이 밤 깊은 줄 모르고 토론을 했다. 안전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의 의견도 틀린 것이 없었다. 도전을 강행하자는 것도, 일찍 마치고 하루 먼저 귀가하자는 것도 모두 학생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귀한 의견들이었다.

결국 우리는 원안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을 모아놓고 취침 및 야간 행동 지침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오후 8시, 수은주는 이미 영하 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때 아닌 혹한기 체험 및 백패킹 노작기행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태그:#백패킹, #노작기행, #대안학교, #필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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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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