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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오마이뉴스>에 글을 싣는 무명의 시민기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포털에 '코로나19 확진자'를 검색해 추가 확진자가 몇 명 나왔는지 알아보는 것이 어느덧 저에게는 평범한 일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100명대 이하면 조금 안심했다가, 지금처럼 300명을 넘어 500명이 넘는 인원이 나오면 가슴 졸이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하지만 한국 상황을 다른 나라에서 본다면 배부른 소리한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추가 확진자 수가 다른 나라에서는 사망자 수가 되는 팬데믹의 현장을 우리는 몇 개월째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떻게든 인류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태연한' 프랑스인들?
 
 CDC에서 제공한 코로나 바이러스 이미지
 CDC에서 제공한 코로나 바이러스 이미지
ⓒ 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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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기획됐다"... 프랑스 뒤흔든 문제적 다큐' http://omn.kr/1qm2m (2020년 11월 23일)
'"이건 보건 독재"... '코로나 160만' 프랑스의 이유 있는 반란' http://omn.kr/1qbhc (2020년 11월 6일)
'1일 확진자 7천명,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이 태연한 이유' http://omn.kr/1ostf (2020년 9월 3일) 


저는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에 실린 코로나19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제가 아는 한 유럽과 미국은 방역에 실패한 게 분명한 데, '국뽕'(국수주의)에 빠져 현실을 못 보는 건 아닐까 싶었거든요. 

하지만 25일 기준으로 프랑스 확진자는 210만여 명이고, 누적 사망자는 4만 8883명으로 사망률은 2.3%더군요. 이 수치 앞에서 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프랑스의 방역이 실패했다는 말은 해석의 영역이 아니라 그저 현실을 '건조하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연한 프랑스 사람들이 오히려 이해 되지 않더군요.


특히 코로나19가 기획되었다고 주장한 '문제적 다큐'를 인용한 작가님의 23일 기사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사실 기사에서 언급하신 다큐멘터리 <홀드업>의 경우 이미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반박한 바 있는데요, 프랑스의 대표적인 언론 <르몽드>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홀드업>의 서사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질문, 마스크 착용의 유용성에 대한 보건당국의 변덕스러운 언변 등 대유행을 둘러싼 몇 가지 매우 현실적인 논쟁에서 번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에 더 깊이 파고들기는커녕, <홀드업>은 근사해 보이지만 완전히 잘못된 주장들을 겹쳐 놓는다."

프랑스의 방역 당국이 초반에 보였던 아마추어리즘이나, 코로나19를 둘러싸고 진행된 다양한 토론들에 대해서는 논의할 여지가 존재하지만, <홀드업>이 잘못된 혹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교묘히 끼워 넣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프랑스의 국제 보도전문채널인 '프랑스24(France24)'에 따르면 실비안 델루베(Sylvain Delouvée) 르네2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홀드업>에 대해 "처음에는 건강한 회의주의와 비판적인 논조를 제시하는 어조를 유지한다"고 보였지만, "그릇된 해석과 불완전한 결과물, 그리고 명백한 거짓말을 사실과 섞는 것은 음모론의 특징"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과학적 사실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반박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그저 공허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이런 주장도 던져보고, 저런 주장도 던져보는 것, 그러나 반박되더라도 책임지지 않는 태도는 팬데믹 시기에 사회를 더 큰 위험에 빠지게 할 뿐입니다. 이런 비판이 있음에도 음모론을 믿을 사람들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정말로 비극 아닐까요? 믿든 안믿든, 오늘도 프랑스에서는 수만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되고, 수백 명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신뢰가 방역 성공의 조건인 이유

사실 사람들이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방역 당국의 지침에 최대한 따르려고 노력하는 건 자신의 생명과 일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고, 되돌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뉴노멀'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훗날 백신을 통해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그들은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참극입니다. 저는 슬퍼하는 사람들과 오늘도 쉬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의료진들의 얼굴이 떠올라 감히 코로나19가 기획되었다고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방역 독재'라는 단어도 동료 시민들을 위해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만나기 위해 지금 흩어지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정부 정책에 양처럼 온순하게 따르는 국민이어서가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확진 판정을 받아도 잘 치료받으면 쉽게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병상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불평등한 재난 앞에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동체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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