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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 50년의 길 김승희 작가
 금속공예 50년의 길 김승희 작가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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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2020'

금속공예로만 쌓아올린 시간이 벌써 50년이다. 미국 유학시절 '대장간 강의실'에서 '막노동'처럼 배웠던 금속공예였지만 그는 항상 전통 위에 현대를 얹는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영역을 구축해왔다. '전통의 현대화'는 그가 평생 부여잡고 있는 화두이자 메시지였다. 고희(70세)를 넘어선 최근에는 가장 까다롭다는 '채색 옻칠'에도 도전해 초대전(갤러리 두가헌, 11월 12일~11월 29일)까지 열었다. 

김승희 금속공예작가(73, 현 국민대 명예교수, 장신구 브랜드 '소연' 대표)가 이름붙인 '채색 옻칠'은 옻칠에 안료를 혼합해 다양한 색을 만들어 칠면에 그림을 그리는 전통공예기법('채화칠')을 가리킨다. 지난 2019년 12월 성탄절에 채화칠 장인 최종관 작가를 만나 스스로 색을 변화시키고,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옻칠의 마력적인 색감'에 빠져들었다.

갤러리 두가헌 초대전에 나온 그의 작품들은 먼저 옻칠의 마력적인 색감에 빠져든 작가가 한국공예에 던지는 메시지였다. 그동안 금속산화기법(patination)으로 착색해오던 것을 금속판재 표면에 채색 옻칠을 시도한 것은 '전통기법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 한국의 전통공예영역을 더욱 확장하고 싶다'는 바람과 의지였다. 

동시에 보수-진보 진영 간 다툼으로 분열하는 한국사회에 던지는 고언이기도 했다. 작품에서 노랑 저고리와 빨간 치마를 표현한 두 그릇처럼 '세상의 아름다운 조화'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었다. 전시회 제목이 '너와 나의 풍경 2020'인 이유다.  

지난 19일 노란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던 갤러리 두가헌에서 옻칠의 마력적인 색감에 빠진 김승희 작가를 만났다.

"'옻칠에서도 모든 색깔이 나온다'는 말에 꽂혔어요"
  
갤러리 두가헌 김승희 작가 초대전 작품
 갤러리 두가헌 김승희 작가 초대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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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속공예 1세대인 거죠?
"맞아요. 전통금속공예가 아닌 현대금속공예 1세대죠. 현대금속공예는 서구적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 그런데 어떻게 옻칠을 하게 됐나요?
"
금속 자체의 부식이나 산화막의 색깔이 다양해요. 빨강색부터 노란색, 초록색이 다 나와요. 그런 것만 하다가 채도를 더 밝게 하고 싶더라구요. 아무래도 금속은 채색화와 차이가 나요. 금속으로 하면 가라앉은 색이 나와요. 더 화려한 채색을 하고 싶어서 재료를 찾고 있었어요. 그런던 중에 최종관 선생님(채화칠 장인)을 우연히 만났어요. 그분이 나전칠기를 했다면 그냥 지나쳤을 거예요. 제가 나전을 할 생각은 없었거든요. 채색을 하고 싶었어요. 최종관 선생님이 자기는 '채화칠기장'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채화칠지장이 뭐냐고 내가 물었더니 '옻칠이면 까만색만 있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고 모든 색깔이 나온다'고 했어요. 그 말에 딱 꽂혔죠."

- 보통 옻칠 하면 까만색만 생각하죠.
"보통 그렇게 알고 있는데 최종관 선생님은 자기는 화려한, 여러 가지 색상을 할 수 있는 채화칠(옻칠에 안료를 혼합해 다양한 색을 만들이 칠면에 그림을 그리는 전통공예기법)이래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찾고 있는 사람 아닌가' 싶어서 선생님에게 '선생님한테 배우면 안될까요?' 했더니 할 수 있대요. 바로 그 다음날 (최종관 선생님의 작업실에) 갔어요. (옻칠과의 만남이) 그렇게 시작됐어요."

- 그때가 언제인가요?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때엔가 선생님을 처음 만났고, 그 다음날 (작업실에) 간 것 같아요. 그 때부터부터 바로 시작했어요. 작업실에 가서 보니까 회원들이 전부 예쁜 문양 같은 걸 그리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저런 문양은 못할 것 같았어요. 선생님한테 '저런 문양을 꼭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된대요. 제가 하고 싶은 액자가 있어서 10개쯤 만들어서 갔어요. 거기에서는 이걸 '백골'(옻칠을 하기 전의 목기)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제가 백골을 가져간 거죠.

그런데 다들 '왜 금속에다 하세요? 나무로 하면 편해요'라며 나무틀(백골)로 하래요. 하지만 저는 금속공예가라 금속밖에 몰라요. 나무로 잘 안해봐서 나무로 하면 (예술적) 생각이 잘 안떠올라요. 그래서 금속틀을 가져왔더니 그 사람들이 전부 이상하다는 듯이 '왜 나무로 안하냐?'고 자꾸 물어보더라구요. 선생님도 나무로 하면 편할 거라며 나무로 해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평생 금속에다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갑자기 나무로 바꿀 수가 없어서 그냥 진행했어요. 결국 선생님도 그냥 하라고 했고, 먼저 삼베를 (금속이나 나무에) 붙일 때 옻칠을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금속 등을) 구워내는지부터 가르쳐줬어요. 금속에다 할 때에는 옻칠을 구워야 한대요."


- 금속을 굽는 건가요?
"처음에는 금속만 구워요. 금속은 나무보다 옻을 붙기가 어렵대요. 선생님이 금속에다 뻬빠질(사포질) 등을 해서 거친 질감을 만들어 오래요. 그 다음에 거기다 옻칠을 하고, 옻건조장에서 옻을 하루이틀 말려요. 제가 일주일에 한번 갔으니까 일주일 동안 말리는 거죠. 그리고 그 다음주에 가면 뜨겁게 달구어서 열처리를 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 옻의 색깔이 짙어져요. 옻의 색깔이 짙어지면서 확고하게 금속에 붙어요. 이런 과정이 다 끝나면 삼베칠 하는 걸 가르쳐줬어요. 삼베를 찹쌀풀로 붙으면 안전하다고 해요. 작업순서가 그렇고, 처음으로 액자에 그렇게 한 결과물이 (이번 전시회에) 다 나온 거예요."

- 그때 최종관 선생님에게 어떤 영감을 받았나요?
"작업실에 가서 너무 놀랐죠. 빨간색, 노란색 다 있더라구요. 그것이 제가 하고 싶었던 거잖아요. 선생님의 집('옻칠갤러리') 2층과 3층에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그 색깔이 다 있더라구요. '못보던 색낄인데 이게 옻칠로 되나요?'라고 제가 선생님에게 자꾸 물어봤어요. 그렇게 해서 제가 (옻칠에) 도전하게 된 거죠. 선생님은 일주일에 하루를 정해서 저를 교육했어요. 옻칠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요. 돈벌이로 생각했다면 시간 낭비였을 거예요. 선생님은 '사람들이 옻을 너무 몰라서 안타깝다, 이것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교육한 거죠. 그런 의지를 가지고 교육한 것 같았어요."

- 금속과 옻칠을 결합시킬 생각을 어떻게 했나요?
"자연스러웠어요. 제가 채색을 하고 싶어했잖아요. 그래서 2006년도 폴리코트(공예용 재료)를 사용해 색깔있는 작품을 했어요. 그런데 그것 한번 하고 손을 뗐어요. 그것으로 작업하면 공기가 나빠져서 머리가 아팠어요. 건강에 이상이 올 것 같아서 안하기로 결심했어요. 폴리코트는 조각가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그것을 사용하던 조각가들이 병에 걸려 죽는 경우도 있어서 아마도 지금은 사용 금지령이 내려졌을 거예요. 합성하는 과정에서 나쁜 가스가 나왔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더 건강하고 좋은 소재를 찾고 있다가 옻을 만난 거예요. 처음에는 옻이 안올랐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오르더라구요. 최종관 선생님한테 '왜 옻이 오르냐?'고 물어봤어요. 본인도 처음에는 안오르는 듯하다가 (옻칠을) 너무 많이 하면 오른대요."

- 옻이 좀 쉬라고 한 거네요.
"선생님이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내가 50년 옻칠을 했어도 너무 무리하게 하면 옻이 오른다, 원래 그런 거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좀 쉬면 된다.' 옻이 오르면 작업을 그만하라는 메시지라고 했어요. 무조건 쉬면 된다구요."
  
"제가 '옻칠의 마력적인 색감에 끌렸다'고 한 이유"
   
갤러리 두가헌 김승희 작가 초대전 작품
 갤러리 두가헌 김승희 작가 초대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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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을 1년 정도 한 건가요?
"10개월 정도 했어요."

- 작업을 해보니 금속과 옻칠의 장점이 어떻게 결합되던가요?
"저는 나무를 많이 안해서 잘은 모르지만 나무는 좀 쉬운데 금속은 어려워요. 옻칠이 잘 안붙어요. 까다롭죠. 물론 그것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금속으로 할 것 같아요."

- 특히 금속은 평생 다뤄왔던 재료인 데 반해 옻칠은 처음으로 하는 것인데 장점이 있나요?
"어렵지만 장점이 있어요. 다만 제가 나무로는 안해봐서 비교하기는 어렵네요."

- 옻에 기반한 채화칠을 금속에다 해보니까 어떤 느낌이었나요? 일반 칠과는 달랐을텐데요.
"많이 달라요. 얘네들은 까다롭고, 사람처럼 신경적이랄까요. (웃음)"

- 보통은 '채화칠'이라고 부르는데 왜 '채색 옻칠' 혹은 '채색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지요?
"제가 '채화칠'이 아니라 '채색칠'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왜나하면 제가 하는 작업에는 문양이 없기 때문이죠. 채화칠은 문양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색만 있잖아요."

- 서양 채색작업은 해봤나요?
"어렸을 때 수업시간에 유화 물감은 해본 적이 있어요"

- 서양의 채색작업과 한국의 채화칠은 어떻게 다른가요?
"많이 달라요. 유화물감으로 하면 칠하면 칠하는 대로 바로 그 느낌이 살아나요. 칠하고 보이는 그대로예요. 색깔도 반짝반짝하면서 바로 보여요. 하지만 이것(옻칠)은 그렇지 않아요. 처음에는 색이 안보여요. 컴컴해요. 그러고 며칠 지나서 보면 색깔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해요. 한달 정도 지나면 색이 나와요. 그러니까 한달은 보통 기다려야 해요. 인내심을 엄청 요구하죠. 그런데 그 다음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신비하고 마력적인 일이 벌어지는 거죠. 내가 칠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림이 보이는 거예요. 제가 모르는 그림이 나와요. 이건 어떻게 얘기할 수가 없어요. 해본 사람만이 하는 얘기예요. 제가 최종관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네들이 그림을 그려요, 제가 안그렸어요.' 그랬더니 선생님도 '그게 무슨 말이지 해본 사람만 알아요'라고 해요. 진짜로 해본 사람만이 아는 얘기예요."

- 그래서 "옻칠의 마력적인 색감에 끌렸다"라고 표현한 건가요?
"맞아요. 지네들이 그림을 그린다니까요. 제가 그린 적이 없는 그림을요. 얘네들이 왜 그러지? 왜 지가 그리지? 지가 그리는데 저보다 더 잘 그려요. (웃음) 그러니 이상한 거 아니에요? 저만 혼자 생각하는 게 아니고, 그 얘기를 최종관 선생님에게 했더니 선생님도 늘 그걸 느낀대요. 이거 아니다 하고 돌아섰는데 그림이 돼서 나온대요. 이건 정말 해본 사람만이 알지 제가 말한다고 누가 그걸 이해할 수도 없어요. 저는 이런 그림을 그린 적이 없어요. 지가 그렸어요. 이거 보세요. 저 노란색도 제가 칠한 적이 없어요.. 정말 신기하고 진짜 이상해요. 이런 말밖에 안나와요."

- 그런데 서양의 채색작업에 비해 옻칠은 비효율적이지 않나요?
"비효율적이죠. 힘들고 까다롭구요. 시간으로 따지면 할 일이 아니죠. 그런데 이거에 한번 빠지면 못빠져나와요. 제가 그것을 너무 많이 느꼈어요. 자기가 그림을 그린다니까요. 그러니 무슨 말을 하겠어요? 게다가 그림을 저보다 잘 그린다니까요. 저보다 잘 그리는데 제가 그걸 안 따라가겠어요? 이건 아주 감각적인 얘기라서, 해본 사람만 아는 얘기라서 (제 얘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통할까요?"
 
갤러리 두가헌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김승희 금속공예작가
 갤러리 두가헌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김승희 금속공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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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그릇'이 의미하는 것"

- 채화칠의 핵심인 옻칠이 엄청 까다로운데 작업하면서 제일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처음에는 옻칠하는 게 어렵죠. 옻이 돼야 그 다음 게(단계) 되니까요. 옻을 잘못 다뤄서 잘못된 것도 많아요. 금속판을 잘못 칠하면 떨어져요. 한달쯤 있다가 떨어지던데 떨어질 때 보스슥 보스슥 소리를 내면서 쫙쫙 갈라지더라구요. 맘에 안맞았나 봐요. 안 붙은 걸 모르고 제가 진행한 거예요."

- 잘못 칠한 건가요?
"잘못 칠한 거죠. 처음에 붙지 않았는데 그걸 모르고 한 거죠."

- 결국 수정했나요?
"다 뜯어내고 새로 했어요. 뜯어내는 것도 시간 걸리고 귀찮아서 새로 했어요. 오히려 금속 만드는 거는 쉬워서요."

- 그러면서 옻칠이 금속에 딱 안착하는 최적의 조건을 파악한 건가요?
"이거 함부로 하면 안된다, 이것을 배웠죠. 실패하면서 배운 거죠. 그런데 다 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경우도 많았어요. 앞으로 더 많이 하면 (그 최적의 조건을) 알 것 같아요. 저는 불로 금속을 구워내는 오븐이 없어서 구멍이 네 개인 부엌의 가스렌지에 석쇠을 올려놓고, 그 위에 옻칠을 한 금속을 올려놓고 계속 살폈어요. 어떻게 변하나 살피면서 변한다는 느낌이 오면 불을 끈 뒤 식기를 기다렸다고 다시 구워요. 이렇게 시간을 장기적으로 두면서 색깔을 만들어 갔어요."

- 옻칠은 독특한 광택이 나는 것이 특징이죠. 그런데 선생님은 광택이 나지 않는 교칠, 즉 두부와 생옻칠과 안료를 섞어서 썼는데 왜 그렇게 한 건가요?
"저는 금속이 주재료잖아요. 금속은 반짝이게 하는데 옻칠은 반짝거리면 안 될 것 같더라구요. 오히려 뿌여니까 좋은 것 같아요. 유화작가들이 볼 때는 옻칠의 색이 (일반 채색의 색과) 좀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달항아리, 밥그릇, 막사발 등을 모티브로 했는데 그렇게 한 특별한 의미나 의도가 있나요?
"전부 그릇이에요. 그릇으로 작품을 시작했고, 제 모든 작품에 그릇이 있어요. 그릇이 몸에 익어 있어요. 그릇을 만들면서 공예가로 출발했고, 주문을 많이 받아서 그릇을 많이 만든 작가였어요. 그릇을 떠났을 때에도 그릇을 완전히 못 떠나서 '그릇이 있는 풍경'을 만들었잖아요. 그것은 그릇이라고 할 수 없고 작품으로 보이죠."

- 그릇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릇에는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그릇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작품을 한 게 있어요. 2m 높이의 그릇 속에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 아트를 넣은 작품이죠. 이 그릇은 신석기 시대에 받침은 없고 뾰족하게 모래에 꽂은 그릇이에요. 그 작품을 시리즈로 만들었어요. 그 작품들의 제목이 '그릇에 문화를 담다', '그릇에 비디오아트를 담다'예요. 그릇에 모든 문화가 들어간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불교문화인 고려시대의 꽃이 뭔지 아세요? 향로에요. 향로가 그 시대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거죠. 그런 것처럼 현대미술이 비디오아트라면 그것도 그릇에 들어갈 수 있는 거죠. 그릇에다 마음과 문화를 담다, 이게 지금 제 마음이죠. '너와 나' 두 사람의 관계가 있어요. '너와 나'는 마음 아닐까요?

이 작품 하나 설명해 드릴게요. 여기 그릇이 두 개가 뚜렷하게 있잖아요. 이게 노랑 저고리와 빨간 치마에요. (옛날) 설날에 노랑 저고리와 빨간 치마를 입었잖아요. 가장 좋은 것의 만남이죠. 설날을 맞이하는 마음이 두 개의 그릇으로 표현되는 거예요. 노랑 저고리와 빨간 치마를 입는 것은 마음이에요. 즉 그릇은 마음이에요. 마음이고 문화에요. 사람들이 달항아리를 왜 그렇게 좋아할까요? 달항아리가 복을 담고 있는 것 같잖아요. 결국 복이나 자기 마음을 담는 거 아닐까요? 담는다는 것은 마음가짐이에요. 그릇은 그런 마음가짐이고 희망이고 그래요. '마음에 품는다', '그릇에 품는다', 뭔가 통하나요?


- 그릇이 마음이라고 하면 그릇은 뭐든지 품잖아요. 곡식을 담을 수 있고 밥을 담을 수 있고 국을 담을 수 있고...
"생각도 담고, 비디오아트도 담구요."

"전통에 관심이 없어요... 세대차를 너무 느껴 얼떨떨해요"


- 이번 초대전을 통해 '전통의 현대화'라는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 '전통의 현대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는 (전통)기법을 많이 연구했어요. 전통공예가들을 따라다니면서 (전통)기법을 연구한 거죠. 그리고 제가 기법을 현대화시켰어요. 금부기법이 제가 현대화시킨 기법이에요. '금부'는 수저에 금을 붙이는 것인데 그 기법을 수저아저씨한테 배웠어요. (금부기법으로 만든 수저를 가리키며) 이게 뭐냐하면 은에다가 금을 붙인 것인데 이 금이 금박이 아니에요. 금박보다 천배나 두꺼워요. 얕은 금판을 밀어서 은에다 열처리를 해서 부착시키는데 절대 안떨어져요. 상감기법처럼요. 이게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어요. 옛날에 수저를 만드는 사람들이 수저 가운데에 금으로 숫자도 복자도 넣고 문양도 넣어요. 금을 먹으면 좋다 이거죠."

- 금부기법이라는 전통공예기법을 현대화한 거군요.
"수저아저씨에게 배웠어요. 전통공예가들한테 배운 게 많아요. 제가 그걸 장신구에 쓰면서 세계화까지 된 거예요. 금부기법의 세계화가 어떻게 됐냐 하면요, 1989년에 미국에 가서 그 기법을 가르쳤어요. 미국 학교에서 저를 초대했죠. 그 사람들이 '무슨 기법이냐?'고 물어서 한국말로 '금부다'고 가르쳤어요. 그랬더니 미국에서 전부 (한국말로) '금부'라고 해요. 미국과 유럽은 통하니까 유럽에서도 다 '금부'라고 해요. 더 재미있는 것은 미국이 먼저 금부기법으로 디자인해서 책을 만든 거였어요. 금부에 대한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안나오고 미국과 이태리에서 나왔어요. 금부기법으로 만든(디자인한) 다양한 장신구와 그릇을 책으로 만들었어요. '코리안 금부'를 배워서 우리보다 먼저 책을 만든 거죠. 제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요. '우리는 이렇게 못하는데 얘네가 더 잘 만들었네.' 그리고 (외국의) 일반 대중들이 금부를 더 잘 알아요. 한국사람들은 제가 설명해도 모르는데...

한국에는 안 알려졌어요. 저만 하고, 우리 제자들도 안 해요. 금이 비싸긴 하죠. 미국에 가서 전시하는데 걔네들은 다 알아요. 금속공예도 안하는 보통사람들이 금부를 알아요. "금부, 금부" 그러더라구요. 제가 깜짝 놀랐어요. 이럴 정도로 퍼졌는데 우리나라에는 안 퍼졌어요. 그렇게 많은 (금속공예) 작가들 중에서도 저밖에 하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안 해요. 가르치려고 해도 안 배워요. 딴 것만 해요. 서양것만 좋아해요. 제가 굉장히 노력했는데 제 노력은 한계가 있더라구요. 손을 들었어요. 이것을 하는 애들이 없어요. 이상한 것만 하죠."


- 지금 한국에서 그 '전통의 현대화'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매우 중요한데도 안 하고 있으니까 안타깝죠. 저는 막 소리 지르고 싶어요. '이거 좀 하라'고. 이거 하면 그만큼 인정받는데 왜 안하는지 몰라요."

- 안하는 이유가 뭘까요?
"일단 금이 비싸요. 그리고 걔네들이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더라구요. 재료도 실리콘이나 헝겁 등을 쓰더라구요. 제가 볼 때에는 별 볼일 없는 걸 계속 해요. 제 눈에는 안 좋아 보이는데 걔네들은 좋다고 하더라구요. 생각이 달라서 그렇겠지요. 걔네가 원하는 게 따로 있고, 전통에는 관심이 없어요."

- 전통은 낡고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가요?
"전통에 관심도 없고, 전통을 하는 것에 자신도 없어요. 저는 너무 세대차를 느껴서 얼떨떨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열심히 하는 애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 되겠어요?"

- 그런 학생들에게 '전통을 현대화해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열심히 했어요. 그걸 가르치려고 과목도 만들었어요. 그런데도 안되더라구요. 저는 굉장히 노력했는데 한계점이 있어요. 얘들은 관심사가 딴 데 있어서 제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아요. 강의도 열심히 했고, 설득력도 있다고 생각했지만요. 반면에 일반대중들은 다 좋아해요. 제가 대학에서 했던 강의를 일반대중들에게 그대로 했더니 열광해요. 50대부터는 전통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는 제 강의가 재밌대요. 그런데 학생들은 딴 생각을 하고 있더라구요. 목표가 따로 있어요."

- 이러하다 전통이 사라지면....
"사라지겠죠. 우리나라는 (금부에 관한) 책을 안 만들고 미국애들이 만드는데..."
 
갤러리 두가헌의 김승희 작가 초대전 작품
 갤러리 두가헌의 김승희 작가 초대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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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저고리-빨간 치마처럼 아름답게 화합했으면..."

- 이번 초대전의 타이틀을 '너와 나의 풍경 2020'으로 붙였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너와 나'라는 게 전통과 현대일 수도 있고, 부부 사이나 친구 사이일 수도 있어요. 지금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가 싸우고 있잖아요. 굉장히 심각하잖아요. 저는 노랑 저고리와 빨간 치마처럼 아름답게 화합했으면 좋겠다, 서로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죠. 안되니까 바람하는 게 아닐까요? 안되는게 많아서 바람도 많아요. 작가는 꿈을 꾸잖아요. 현실에서는 안되지만 이것(작품)은 내맘대로 할 수 있잖아요."

- '너'는 새롭게 시도하는 옻칠이고, '나'는 그동안 천착해온 금속공예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것도 돼요. 금속와 채화칠이 '너와 나'가 되죠. 그 둘이 만난 거니까요. 채화칠하는 최종관 선생님과 저를 표현한 것이기도 해요.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이죠."

- 앞으로 금속공예와 옻칠의 만남 작업을 계속 이어갈 생각인가요?
"네. 이게 이상한 재료라서 좀더 다뤄보고 싶어요."

-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을 만큼의 '마력'을 확실하게 느낀 건가요?
"지가 그림을 그리니까 제가 기다려져요. 얘가 또 무슨 그림을 그릴까 하구요. 스스로 알아서 변해요. 더 밝아지고 다양해지고, 색깔도 단순하지 않고 뭔가 스토리가 있는 것 같아요. 제 남편이 수학자인데 미술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제가 작업한 걸 거실에서 말렸는데 남편이 '하루하루 바뀌네 갈수록 색깔이 예뻐지네' 그래요. 남편이 그런 말을 해서 깜짝 놀랐어요."
 
김승희 작가의 금속공예 50년

▲ 숙명여자 중, 고등학교 졸업

▲ 서울 대학교 미술대학 응용 미술학과 졸업

▲ 미국 크랜브룩 미술대학 수학

▲ 미국 인디아나대학교 미술대학원 금속공예 전공(M.F.A 취득)

▲ 국민대학교 전임교수 / 조형대학 금속공예 전공 개설(36년 재직)

▲ 현 국민대 명예교수, 작가 장신구 브랜드 '소연' 대표작가

▲ 개인전(21회) : 일본 도쿄 교갤러리 초대전, JJF 일본 국제 주얼리페어 초대 출품, 김승희의 풍경 30년, 김승희 브로치전 동행, 김승희-다시보는 풍경전 김승희-금속으로 그린 풍경, 김승희7080전 등

▲ 그룹 초대전 (200여 회): 한-호 수교 50주년 기념전-장인 정신, 한국의 금속공예, 여성, 그 다름과 힘-그리고 20년, Power of Gentleness(선화랑 40 주년 기념전)

▲ 수상 : 전미 은기공모전 입상, 88 한국공예가협회상, 제6회 석주미술상, 제18회 목양공예상 수상대한민국 디자인 대상(대통령 표창상), 알마 아이커만상(미국)

태그:#김승희, #채색 옻칠, #금속공예, #너와 나의 풍경 2020, #최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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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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